10대 미혼모들 "학교에서 다시 공부하고 싶어요"

2009. 4. 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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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살이하 미혼모 한해 3천여명육아 허덕이다 대부분 자퇴따가운 주변 시선도 부담

중·고생 출산휴가제 도입 등교육권 폭넓은 허용 고민할때

김아무개(13)양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지난 2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됐다. 자꾸 구토가 나와 병원을 찾았더니, 벌써 임신 7개월째였다. 동네 아는 오빠의 성폭행 때문이었다. 김양은 현재 서울의 한 미혼모 쉼터에 들어가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한참 앳된 얼굴인 그는 아기를 입양 보내는 대신 직접 키울 작정이다.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그는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한다'고 여긴다고 했다. 이혼한 뒤로 몸이 아픈 어머니, 두 동생과 함께 기초생활수급 지원비 110만여원으로 지내 왔다.

출산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김양은 8일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가 받아 줄지,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쉼터에 와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공부하고 싶은데, 애도 키워야 해 걱정이에요. 학교에 못 가면 검정고시라도 볼 생각이에요."

김양처럼 미혼모 시설에 들어간 10대 청소년은 2007년 전체 시설 입소자의 30%(657명)를 차지했다. 출산하는 19살 이하 청소년은 한 해 3천여명에 이른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을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란 어렵다. 김은영 한신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양육 미혼모들은 학교의 강요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 뒤 학교를 다니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이미 자신들이 강하게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혼모를 냉대하는 사회적 인식 탓이다. 학교나 학부모들은 대개 청소년 미혼모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걸 꺼린다. 대부분의 청소년 미혼모들은 다시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 서울여대 교육복지연구센터가 2007년 청소년 미혼모 63명을 심층면접한 조사 결과를 보면, 87.6%(50명)가 학업을 지속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그 이유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싶어서', '학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을 가장 많이 꼽았다. '10대 엄마'들도 취업을 하려면 졸업장이 필요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주로 선택하는 검정고시도 쉽지만은 않다. 최근 딸을 낳은 신아무개(17)양은 "아이를 돌보려고 학교 대신 검정고시를 택했지만, 공부할 시간이 생길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안학교 등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강영실 애란원 사무국장은 "미혼모가 스스로 선택할 길이 없어 다른 방법을 찾게 하는 건, 이들을 다시 낙인찍고 소외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처럼 낮은 출산율을 겪는 대만은 2007년 '중·고등학생 출산휴가제'를 도입했다. 임신한 학생들에게 56일 동안의 출산휴가와 최고 2년의 육아휴가를 보장하는 것이다. 격렬한 찬반 논란을 일으켰지만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독일도 임신·출산으로 인한 학업 중단을 '질병'으로 인한 학업 중단과 똑같이 여겨 출석으로 인정하거나 휴학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해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혼모를 이탈이나 방종이라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학교를 떠난 이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들이 먼저 학교에서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순혜 서울여대 교수는 7일 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청소년 미혼모와 학습권' 포럼에서 "집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미혼모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결국 저임금 일자리밖에 얻지 못하거나, 기초생활 수급 지원 등 공적 부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돼, '빈곤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미혼모들의 사회복지 문제를 논의해 온 데 머물렀다면, 이제는 청소년 미혼모들이 사회에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교육권' 문제에 접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곧 아기를 낳을 '10대 미혼모' 김양의 꿈은 공예사가 되는 것이다. 가족과 사회가 함께 거들어야 할 짐을 홀로 어깨에 진 김양은 "돈 달라고 누구에게 손벌리기 싫지만, 공부는 누가 도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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