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들은 왜 옆집딸보다 공부를 못할까-下(끝)

강훈상 2011. 9. 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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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유혹'에 잘 빠지고, 시험은 본질적으로 여성에 유리

여교사 많고 아버지 바쁜 것도..원인 진단 제각각

(서울=연합뉴스) 기획취재팀 = 남학생들의 경쟁력이 여학생에 비해 급격히 떨어졌다는 데엔 교육 현장에서는 물론 전문가나 학부모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은 제각각이다.

남녀 차이에 따른 생물학적 요소, 사회·교육 환경과 성별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이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뜻이다.

그만큼 '아들 가진 부모'가 걱정을 덜 수 있는 해법도 복잡다단할 수밖에 없다.

◇ '유혹'에 쉽게 빠지는 남학생

연합뉴스가 8월 말 서울시내 중·고교에 다니는 남학생 7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게임(58명. 이하 복수응답)이었다.

설문에 응한 정성현(중3)군은 "'문명' 같은 게임은 한 번 빠지게 되면 4∼5개월 동안 하루에 몇 시간씩 하는 친구들이 있다"며 "온라인 게임도 레벨을 높이려면 꾸준히 게임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남학생의 경우 77명 중 11명으로 14.3%였으나, 같은 학년의 여학생은 112명 중 45명으로 40.2%에 달했다.

아이온, 서든어택, 피파온라인2 등 인기 온라인 게임의 회원 가운데 남성의 비율은 70%가 넘는다.

신정민(고2)양은 "여학생도 게임을 하지 않는 건 아닌데 현실을 깨닫고 곧 빠져나온다"며 "남학생들은 게임뿐 아니라 어느 한 분야에 '꽂히면' 한동안 중독돼 공부를 안 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봤다"고 말했다.

중학교 교사 김성호(48)씨는 "중독 현상을 다르게 보면 몰입도나 집중력이 좋다고 할 수 있는데 최상위권에 남학생이 많은 것은 집중력이 좋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요즘 성(性) 콘텐츠, 게임과 같이 남학생이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예전보다 만연해졌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어른들 돈벌이'의 1차 희생자가 사춘기 남학생이라는 해석이다.

게임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성적과 상관관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은 구체적인 자료로 드러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료에 따르면 게임을 하지 않는 학생과 하루 3시간 이상 하는 학생의 2010년 중3 성취도 평가 척도점수의 평균은 과목별로 6.45∼8.72점씩 벌어졌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한국 사회에선 전통적으로 딸은 어릴 때부터 언행에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가정교육을 받아왔지만 아들에겐 상대적으로 사생활에 관대했다"며 "게임, 술, 담배 등에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더 쉽게 빠지는 것은 이런 성장 과정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여학생 전성시대

남학생의 부진은 여학생이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할 시대적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남성에 유리했던 우리 사회의 관습이 최근 급격히 붕괴했다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남녀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우리 학교의 시험과 같이 정해진 정답을 찾고 실수를 적게 하는 게 목적인 과제는 여성이 남성보다 성과가 훨씬 낫고 불확실하고 모험적인 상황은 남성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예전에는 신분제나 제도화한 권위가 남성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면 지금처럼 동등한 경쟁조건하에서 시험제도는 여성이 앞서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0여년 전보다 오히려 지금이 성적으로만 일률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본능적으로 여학생보다 더 엉뚱하고 모험적인 일을 하려는 남학생의 다양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성적만을 절대적인 잣대로 들이대면서 마찰이 생겼다고 황 교수는 말했다.

문제아 취급된 남학생이 지레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수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여학생의 선전은 수행평가에서 압도적이다.

수행평가는 시험 외에 평소 수업태도, 과제물 제출, 발표 능력 등에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성실성과 꼼꼼함의 척도가 된다.

이번 중·고교생 설문조사에서 여학생 76.8%, 남학생의 61.0%가 '수행평가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에 뒤진다'고 답했다.

중학교 교사인 최명선씨는 "여학생은 과제물을 빠뜨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내려고 하는 반면 남학생은 '점수 좀 깎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학생 특유의 꼼꼼함과 준비성이 수행평가엔 상당히 강점이 된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문용린 교수는 "여학생은 어릴 때부터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사회의 유혹에 저항성이 강하다"며 "예전인 이런 자기관리 능력이 현모양처가 되는 데만 필요했다면 지금은 집 밖으로 확장해 학교에서 이런 특성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면서 남학생을 앞서게 됐다"고 말했다.

입시전문 회사 메가스터디 손은진 전무는 "성장과정상 남자가 사춘기에 대한 혼돈과 방황의 정도가 더 센 데 예전엔 대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관습이 엄해 이런 혼돈을 압박했던 것"이라며 "딸이라도 우수하면 투자 우선순위가 되는 시대가 되면서 남학생이 뒤처지게 됐다"고 말했다.

취업시장에서 여성이 유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예전엔 서류와 간단한 면접으로만 선발했는데 요즘 소통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입사 시험이 바뀌었다"며 "여성은 상대의 감정을 읽고 이에 공감하면서 의사소통하는 능력이 전체적으로 남성보다 좋다"고 말했다.

여성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변화에다 이런 의사소통 능력의 차이가 취업시장에서 '여풍'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빠의 부재+엄마표 교육'이 아들 망친다

자녀의 교육을 어머니가 전담하면서 남학생이 '퇴화'하기 시작했다는 지적도 있다.

황상민 교수는 "어머니들은 딸은 독립성 있게 키우면서 아들은 애완동물처럼 보호하려고만 하는 이중성이 있다"며 "어머니가 정답을 찾고 안전성을 추구하는 여성의 방식을 아들에게 적용하려다 보니 마찰이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머니가 아들의 엉뚱함과 장난기를 여성과 다른 특성으로 보지 않고 일탈행위라고 단정해 이를 억누르면 안 된다고 황 교수는 조언했다.

중학교 교사 강정호(44)씨는 "공부 잘하는 여학생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자 우등생은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참견하고 관리하는 수가 꽤 있다"며 "그런 남학생이 성적이 좋아 봐야 사회에 가서 무엇을 하겠나"라고 말했다.

남학생이 진로나 성장 시기의 고민을 털어놓을 만한 '멘토'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남학생 수에 비해 여교사가 많고, 아버지는 지나치게 바빠졌다는 주장이다.

서울시내 남녀공학 고교의 이모 교장은 "여교사는 아무래도 남학생과 교감하기 쉽지 않고 남학생의 일탈행위를 남교사보다 포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학업에 뒤처진 남학생을 지도하기보다 '수업만 방해하지 마라'는 식으로 방치하는 모습도 흔하다"고 말했다.

고교 교사 이수정(49)씨는 "여학생은 동성 간 연대감을 바탕으로 여교사를 어머니나 언니의 대역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진로나 고민을 상담하려고 한다"며 "남학생이 여교사와 상담하는 것은 드문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기준 각급 학교별 남교사 비율은 초등학교가 24.9%, 중학교 34.3%, 고등학교(일반계)가 54.3%인데 남학생의 비중은 52%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 교육 선진국의 경우 여교사가 많다는 점에서 이런 분석이 또다른 남성 우월적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문용린 교수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아들 간 갈등을 조정하는 게 두려워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 교육에서 빠지면 안된다"며 "아버지는 뭐라도 계기를 만들어 아들과 접촉 면을 더 넓혀 남성의 장점을 살리는 교육을 직접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중·고교 남녀 학생의 성적 격차는 한동안 더 벌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고교 교사 김현국(41)씨는 "성별 성적의 우열이 쉽게 변하지 않고 여성의 입지가 커지는 사회 분위기와 딸에 대한 교육 투자가 맞물리면서 여학생이 계속 앞설 것"이라며 "선진국에서도 여학생 성적이 더 좋다"고 전망했다.

황 교수는 "애초부터 여성의 본성에 유리한 현대의 시험 제도를 고려하면 남학생이 압도적인 우위였던 예전이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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