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 3조-기성회비 1조..정부 '자율화'로 대학만 배불려

2011. 6. 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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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등록금 1천만원 시대 '3대 주범'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등록금이 세계에서 둘째로 비싸다는 건 분명 불명예다. 게다가 우리나라 가계의 대학교육비 부담률(52.8%)은 등록금이 가장 비싼 미국(34.2%)보다도 높다. 실제 우리나라 등록금은 10년 새 갑절 가까이(국립대 1.82배, 사립대 1.57배) 올랐다. 이렇게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사립대의 '적립금 축적'과 국공립대의 '기성회비 의존', 그리고 정부의 '대학 자율화' 정책을 꼽는다.사립대 적립금이대 6568억 최다…수천억씩 쌓아 부동산 매입

■ 21개 사립대 적립금만 3조원

9일 <한겨레>가 한국대학교육연구소와 함께 재학생 1만명 이상 서울지역 사립대 21곳이 각 대학 누리집에 지난달 말 공개한 2010년 교비회계 결산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 대학들이 쌓아둔 적립금 총액은 3조2265억여원에 이르렀다. 2007년의 2조2525억여원에 견줘 43.2%나 늘었다.

대학별로 보면, 이화여대는 지난해 57억여원을 보태 누적 적립금이 6568억여원이나 돼 1위를 기록했다. 2007년보다 28.4% 늘었다. 홍익대는 지난해 21개 대학 가운데 가장 많은 466억여원을 쌓아 누적 적립금이 5537억여원이나 됐다. 2007년과 비교하면 무려 49.8%나 뛰었다. 연세대는 누적 적립금이 4528억여원으로 2007년보다 26.4% 늘었고, 고려대도 2424억여원으로 58.9% 불어났다.

하지만 주요 대학 총장들은 "적립금을 등록금 인하를 위해 쓰면 다른 데 투입할 예산이 없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적립금을 어디에 쓰고 있는 것일까?

한국대학교육연구소의 분석 결과를 보면, 2009년 한해 동안 전국 사립대가 땅 또는 건물을 사들이거나 공사를 하는 데 쓴 비용은 모두 1조2668억원에 이른다. 이를 위해 사립대 법인이 낸 돈은 1366억원(10.8%)에 불과했다.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교비회계에서 총장들이 말한 '투입할 예산'의 사용처는 교육이 아니라 대학의 자산 불리기였던 셈이다. 교비회계를 기준으로 전국 사립대의 2008년 등록금 의존율은 1999년에 견줘 6.8%포인트 높아진 65.2%였으나, 같은 기간 법인에서 전입된 돈은 2.2%포인트 줄어든 4.1%에 불과했다.

국공립대 기성회비4년새 15% 급증…교직원 임금까지 회비로 지급

■ 국공립대 1년 기성회비 1조원대

국공립대의 올해 연간 평균 등록금은 444만여원이다. 2001년(243만여원)에 견줘 82.8% 올랐다. 국공립대 등록금은 수업료와 기성회비로 구성되는데, 국공립대는 총장과 부총장,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기성회 이사회를 통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돼 있다. 국공립대는 이런 점을 이용해 기성회비를 계속 올려 등록금을 인상했다. 올해 등록금에서 기성회비(평균 342만원)가 차지하는 비중은 77%에 이르렀다.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률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대학 정보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를 통해 전국 국공립대 26곳의 4년간 기성회비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0년 예산 기준으로 26개 대학이 지난해 거두기로 한 기성회비는 1조2778억여원이었다. 2007년(결산 기준)에 거둔 1조1134억여원에 견줘 14.7%나 늘었다. 26곳 가운데 3년 동안 기성회비를 올리지 않은 국공립대는 3군데뿐이었다.

대학별로 보면, 서울대의 지난해 기성회비 총액은 1650억여원으로 2007년(1442억여원)에 견줘 16%나 인상됐다. 경북대는 1018억여원으로 25.3%, 부산대도 1005억여원으로 12.2%, 전북대는 778억여원으로 24.9%나 인상했다. 이는 고스란히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졌다. 서울대는 올해 연간 등록금이 628만여원으로 2008년에 견줘 6% 올랐고, 경북대는 449만여원으로 5.2%, 한국교원대는 318만여원으로 무려 11.5%나 인상됐다.

하지만 전국 국공립대들이 2002년부터 2008년까지 7년 동안 기성회계에서 교직원 인건비로 지급한 액수는 모두 2조원이 넘었다. 교육공무원 신분으로 정부의 일반회계에서 지급해야 할 국공립대 교직원 임금이 학생과 학부모가 낸 기성회비에서 지급된 셈이다.

정부 '자율화' 기조사립대 비리 감독 손놔…'기부입학제' 부채질만

■ 정부의 '대학 자율화'가 근본 원인

하지만 역대 정부는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대학 자율화'만 내세우며 대학들의 등록금 인상을 사실상 방치했다. 정부의 이런 자율화 기조는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9월 '등록금 자율화 정책'으로 사립대들이 등록금을 맘껏 인상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국공립대는 이때 기성회비 책정의 자율화를 얻어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에는 수업료와 입학금 책정도 자율화됐다. '국가의 통제'가 '거악'이던 군부독재 시절에 대항해 '자율화'가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면서 대학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고, 노태우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까지 모든 정권이 한결같이 자율화란 명목으로 대학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했다.

이번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립대의 공공성보다 설립자의 소유권을 중시해 비리 재단을 연이어 복귀시킨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도, 등록금 인상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는 국공립대 법인화도 모두 자율화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야당 시절 '등록금 부담 절반'을 약속한 현 정부는 출범 뒤 이런저런 등록금 대책을 내놨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결국 높은 등록금 부담을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제도다. 높은 금리(올해 4.9%)와 학점 제한(직전 학기 12학점 이상 이수와 B학점 이상) 등의 이유로 신청률조차 미미한 실정이다. 지난해 1월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 이내로 등록금 인상률을 제한하기로 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등록금 대책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자율화는 사립대 비율이 80%를 넘는 기형적인 한국의 대학교육 체제에서 사학들의 방만한 운영과 함께 결국 시장주의로 귀결됐다"며 "대학들의 교육여건 내실화와 학교 운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제는 자율화 기조를 버리고 일정한 사회적 규제를 통해 장기적으로 정부가 책임지는 고등교육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김민경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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