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도 공개' 꼴찌지역 낙인.. 학교 불신.. 사교육 부채질

2009. 2. 17. 0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학력차 고착' 우려 목소리

'기초 미달' 비율 높은 지역 '격앙'…"이사도 고민"

교육청·학교 평가 연계로 경쟁심화 부작용 클 듯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지역교육청(고교는 시·도교육청) 단위로 공개함에 따라 일제고사 성적으로 전국 180개 '학군'의 줄 세우기가 가능해졌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높은 지역은 공부 못하는 곳으로 각인되는 '낙인효과'가 현실화해, 해당 지역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교과부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시·도교육청과 학교평가에 연계할 방침이어서 경쟁 심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16일 교과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5개 과목별로 '보통학력 이상' '기초학력'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이 공개돼 1등부터 180등까지 전국 학군별로 서열화가 가능해졌다. 성적이 낮은 지역은 평가 결과가 나오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기초미달 비율이 전국 최하위권으로 나타난 전북의 한 군 지역에 사는 학부모 정아무개(38)씨는 "7년 전에 이곳으로 내려와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 지역 학력 수준이 꼴찌라는 소식을 듣고 불쾌했다"며 "초등 3·5학년 자녀가 있는데 이사를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초6 자녀를 둔 이아무개(41)씨는 "도시보다 전반적으로 교육여건이 열악한 상황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고, 우리 지역이 공부 못하는 곳으로 찍혀 속상하다"고 말했다.

학력 수준이 낮게 나온 경남지역 교육단체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구용회 경남교총 사무총장은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갑자기 결과를 발표하면 성적이 낮은 학교의 경우 신입생들이 지원을 기피하고 학교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등 혼란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숙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도 "성적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은 이제 겨우 초·중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에게 시험 점수만으로 사회적 낙인을 찍는 처사"라며 "능력이 되는 부모들은 이사를 해서라도 좋은 학군으로 옮기려 할 테고,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부모는 점수를 올리기 위해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고 말했다.

학력평가 결과에 따라 교육청의 반응도 엇갈렸다. 중하위권에 머문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전수평가를 한 것은 학력을 정확히 진단해 지원 대책을 마련하자는 것이지, 이렇게 공개해 서열화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반면 5개 교과에서 고루 상위권을 차지한 제주시교육청 관계자는 "도교육청이 학생들에게 직접 논술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현장 지원을 강화한 것이 좋은 결과를 맺은 것 같다"며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아울러 교과부가 2011년부터 학업성취 향상 정도를 시·도교육청과 학교평가에 연계할 방침이어서 학교·학군 사이에 점수 올리기 경쟁도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과학을 가르치는 서울 ㄱ중 박아무개 교사는 "시험점수로 경쟁이 붙으면, 누가 얼마나 문제를 많이 풀었느냐가 성적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며 "과학 같은 경우는 실험 등이 중요한데, 일제고사를 앞두고는 0교시 부활은 물론 정규 수업시간에도 문제풀이를 할 가능성이 높아 교육과정이 파행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를 대비한 시험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정부가 초등학교 대상의 전국 일제고사를 부활하자, 서울 동부교육청은 초등 1~3학년을 대상으로 6·7·10·11월에 학교별로 국어·수학시험을 치르라는 공문을 관내 초등학교 43곳에 보냈다. 이 지역 초등학교 3학년은 지난 1년 동안 무려 아홉 차례나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전교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시험 점수 1점을 올리기 위한 무한경쟁이 시작됐다"며 "인성이 중요한 초등학생까지 획일적 답을 원하는 시험기계로 만들려고 하는 등 학교가 시험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연 기자, 전국종합 dandy@hani.co.kr

[한겨레 관련기사] ▶학업 성취도 공개, 꼴찌지역 낙인…학교 불신…사교육 부채질▶김수환 추기경 선종…민주주의·인권 위해 싸웠던 '우리시대의 목자'▶동아일보 "'미네르바 기고문·인터뷰' 오보 사과"▶'사랑의 작대기'도 쇼핑이 되나요▶김병현 은퇴 '기로?'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