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나와봤자.. 차라리 의사 될까"

2008. 10. 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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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세희 기자]

KAIST 로고

ⓒ 카이스트홍보동아리카이누리

1999년 첫 방영되었던 <카이스트(SBS)>란 드라마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카이스트>에 나왔던 지성·김민정·김명민 이 세 명의 탤런트가 MBC 메디컬 드라마 <뉴하트>와 <하얀거탑>에서 주연을 맡았다. 누리꾼들은 이 사실을 카이스트 학생들이 의대에 가는 현실에 빗대어 풍자했고, 이는 한동안 인터넷 유머로 유행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그냥 웃어넘길 일만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카이스트에서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졸업생의 비율이 전국 대학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교과위)은 9일 국감자료를 통해, 지난 4년 동안 카이스트 졸업생 2150명 중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은 총 166명(7.73%)이라고 밝혔다. '100명 중 8명' 꼴이다. 그 수도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이 생긴 해인 2005년부터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관심 없던 나부터 '의사 해볼까?'

카이스트 전자동 로비

ⓒ KAIST admission website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봤을 때, 실제 학교의 분위기도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체 학부생들의 상황을 전부 다 알지 않고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라는 일부분만 보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화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전혀 의대 진학에 관심이 없었던 나부터 한 때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이하 의전) 진학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니, 이 문제가 그리 남의 얘기인 것만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카이스트 학생들이 왜 의전에 진학하려는 걸까.

물론 의학에 뜻이 생겨서 가는 경우도 있다. 특히 생물학을 공부하는 학생인 경우 충분히 관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굳이 의전이 생기지 않았어도 의대를 진학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해서 어떻게든 의학을 공부했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뜻이 있어서 진학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카이스트 졸업생들이 의전에 진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지금 여기서 이공학을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것보다 의사가 되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능력이 높아질 확률이 더 크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졸업 후 학문 연구에 정진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연구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같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공 계열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비단 연구만도 아니다. 흔한 말처럼 사회로 진출해서 인간의 삶을 유익하게 하는 데에 기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명성과 부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진출하는 문도 좁을뿐더러 내 능력만큼 대가를 기대하기 힘들다. 대기업에 취직하면 연봉은 높지 않느냐고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결코 큰 대가는 아니다. 창업은 더더욱 어렵다.

6년 이상의 시간과 피나는 노력을 투자해 석사·박사과정을 지내고 나니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세상, 심지어 박사과정을 마치고 의대로 다시 입학했다는 사람도 있으니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밤새 실험하고 연구하고 석·박사 마쳐봤자, 누가 나를 알아주나

카이스트 과학도서관 야경

ⓒ KAIST admission website

이런 현실 앞에 의전이라는 돌파구가 생겼다. 고등학교 때 의대와 공대 진학을 두고 고민했던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이제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의전과 카이스트 대학원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좀 더 미련이 남는 사람들이라면 유학을 준비한다. 이걸 두고 또 세상 사람들은 인재 해외유출이라고 얘기한다.

해외 유출이든 의전 외도든 이런 사회적 현상에 대해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마땅치 않다. 학생들은 충분히 자신의 본분을 다 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의도한 대로 우리나라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말이 많지만, 어찌 됐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카이스트가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공 계열에 소질을 보인 학생들은 카이스트에 진학하고 국민들의 세금이라는 엄청난 후원 아래 고급 교육을 받는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여기 학생들은 일반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다른 대학생들보다 적게 놀고 책 한 장이라도 더 보고 밤새 실험하고 어떻게 하면 지식을 더 내 것으로 만들까 고민하고 또 한다. 국가는 아낌없는 투자로 나라를 위해, 사회발전을 위해 이렇게 애써 인재들을 기르지만, 정작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그 능력을 발휘하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이런 아이러니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현실에 맞닥뜨린 학생들은 여태 자신이 해왔던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해외로 나가거나 그게 여의치 못하면 우리나라에서 돈 잘 벌고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직업 중 하나인 의사가 되기 위해 그 열정으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최근 카이스트에선 안부 인사로 "너도 미트(MEET·의학 교육입문검사) 보니?"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의전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는 비단 우리학교 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이공계 대학의 현실도 비슷하다.

훌륭한 인재들을 다른 나라에게 뺏기거나 혹은 엉뚱한 곳에 보내는 그 현상만 보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방법은 그렇게 복잡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그저 그들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주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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