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도 '입시 일급기밀' 열공중

2008. 8.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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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교사들끼리 여는 '유니드림 설명회'성황

"아침에 애들 자율학습 감독하고 부랴부랴 왔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네요."

지난 8월23일 낮 1시 동국대 본관 앞. 김응하 경기 하남고 교사는 망연자실 혼잡한 입구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김 교사가 참석하고자 했던 행사가 열리는 700석 규모의 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오전 11시부터 자리를 선점한 참석자들은 자리를 비우지 못해 햄버거나 김밥 등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결국 계단에 걸터앉거나 강사가 서는 연단에 쪼그리고 앉기도 했다. 2시 무렵, 강당에는 1400여명이 들어찼다. 전국 각지에서 고3 담임교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유니드림 주최 2009학년도 수시 2학기 전국 진학담당교사 연수'를 위해서였다.

올해로 여섯 해째를 맞은 행사는 교사의, 교사에 의한, 교사를 위한 '입시설명회'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수시모집 정보공유 모임 '유니드림'(www.unidream.co.kr)은 현직 교사들의 자발적인 봉사동아리다. 다섯 시간 동안 진행되는 연수에 강사로 서는 이도 저명한 입시전문가가 아닌 공교육 교사다.

"ㄱ대 우선선발은 지난해 경쟁률이 30 대 1까지 치솟았는데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높아서 몇몇 학과는 미달되는 일이 많답니다. ㄱ대의 몇몇 학과에 원서 쓰실 때는 경쟁률에 기죽지 말고 수능이 괜찮으면 무조건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강사로 나선 박권우 인천 숭덕여고 입시전략부장의 입에서는 진학지도 교사라면 귀가 번쩍 뜨일 고급 정보가 터져나왔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고도 법과대학 신입생 선발을 고심하던 서울의 한 대학이 결국 법대에 정원을 배정하지 않았다는 '특종'도 있었다. 그 밖에 대학들이 잘 공개하지 않는 지난해 합격 커트라인도 공개됐다. 대학들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입시요강에는 없는 정보다. 박권우 교사가 전국의 진학담당교사들을 대신해 대학 입학처에서 얻어낸 '일급 기밀'이다. 이날 자료집으로 쓰인 박권우 교사의 책 <수박 먹고 대학 간다-수시 지원 전략서>는 참석자들이 추가로 구입한 것을 더해 3300여권이 나갔다.

'미달현황·정원배정' 고급정보 흘러나와'목마른' 진학담당들 성과 안고 학교로

연수에 참여한 교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두꺼운 자료집이 세 권씩 든 가방 두 개를 양쪽 어깨에 메고 광주로 돌아가는 한 교사는 "택배로 보내준다고 하는데 이틀 이상 걸릴 것 같아 내가 직접 갖고 간다"며 "하루 빨리 수시 2학기 진학상담을 시작해야 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연수에 참여하고 나오는 교사들은 한결같이 급한 갈증을 해소한 분위기였다. 김동희 과천 중앙고 교사는 "학교에 돌아가면 곧바로 제자들 대상으로 '수시 2학기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입시 전반을 이해하고 각 대학 전형의 특징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교사에게 진학지도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고 '입시개론'을 강의하는 입시설명회 형태의 연수에 교사들이 몰리는 이유는 입시의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이다. 학부모 대상 입시설명회가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학들의 학생 선발 방식은 해마다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2009학년도 수시 2학기에 '대학 독자적 기준에 의한 특별전형'으로 뽑히는 인원이 전체 특별전형 모집정원의 67.3%에 달한다. 한 대학이 대여섯개 전형을 실시하는 게 보통인데 학생 하나가 네다섯 곳에 원서를 넣는다고 하면 교사가 제자 하나를 제대로 상담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전형의 수는 많게는 30가지다. 김덕년 수원여고 교사는 "대학들이 수시 2학기 모집요강이라며 올린 게 8월 중순"이라며 "확인해야 할 내용은 점점 많아지는데 원서접수 한달 전에 확정된 입시요강이 나오니 교사들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학지도 교사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입시설명회가 드문 탓에 유니드림 교사 연수의 자리 경쟁은 해마다 치열해진다. 첫해 300여명이 모였던 연수에 지난해에는 1200명이 넘는 교사가 참석했다. 올해는 1471명이 신청했고 현장에 참석한 교사가 1388명이다. 94%에 이르는 높은 참석률이다. 2007년 전국의 고3 학급이 1만2608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 고3 담임교사의 10%가 모인 셈이다. 강원 홍천에서부터 전남 여수까지 제주를 뺀 모든 시도의 교사들이 모였다는 점도 놀랍다.

교사들은 연수를 통해 입시에 대한 전문성을 키운다. 이호형 서울 서라벌고 교사는 "연수를 통해 적성검사의 중요성을 안 뒤에 내신 7.3등급 제자를 적성검사로 서울 중위권 대학에 합격시키기도 했다"며 "교사가 입시를 공부하면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유니드림을 처음 만든 임근수 한국교원대부속고 교사는 "공교육이 학부모와 학생의 신뢰를 잃은 것은 변화하는 입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교사 연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교사들의 열기를 보면 공교육에도 새바람이 불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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