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학교, 곱슬·갈색머리 학생에 '자연머리 확인증'

입력 2008. 3. 20. 12:16 수정 2008. 3. 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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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서울 ㄷ여고 1학년 전아무개(16)양은 등교 첫날을 잊을 수 없다. 전양은 입학식이 있던 지난 3일, 교문을 바로 통과할 수 없었다. 40여분간 교문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원래 머리칼이 갈색인 전양은 머리염색을 한 것으로 '오인'돼 '특별지도'를 받은 것이다. 전양은 "원래 제 머리색"이라며 단속교사에게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딸 문제로 학교를 찾은 전양 어머니에게 학교쪽은 "'자연머리 확인증'을 끊어줄테니 갖고 다니게 하라"고 말했다. 신입생이라 확인증을 갖고 있을 리 없는 전양은 입학식 날부터 단속에 걸린 것이다.

곱슬머리도 마찬가지다. 거제시 ㄱ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아무개(17)군은 얼마 전 학교에서 머리를 자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군은 "선천적으로 곱슬이라고 설명해도 선생님이 퍼머는 허용할 수 없다고 해, 결국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말했다. 이군은 "우리 학교엔 확인증 제도가 없어 무조건 머리를 짧게 잘라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확인증' 도입학교 "불필요한 시비 거리 줄일 수 있어, 오래전 도입"

'자연머리 확인증'은 최근 일부 학교들이 선천적으로 갈색머리, 곱슬머리인 학생들에게 발급해주는 '증명서'다. '자연머리' 학생들은 부모와 교사의 확인을 받아 이 증을 갖고 다녀야 한다. 일신여상, 경기여고, 대원여고, 동명여고, 서문여고 등 '자연머리 확인증'을 발급한 학교는 서울에만도 여럿이다.

박아무개 대원여고 생활지도부장교사는 "시비 대상이 될 수 있어 오래전에 도입했다"며 "학생증이랑 함께 갖고 다녀야 하는데 깜박 잊고 안가져 오면 다음에 확인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해당' 학생들은 이 확인증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불필요한 시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불쾌하게 여겨 거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서울 ㄷ여고에 다니는 박아무개(16)양은 "머리가 검지 않다고 무조건 이상하게 보는 시선도 싫다. 학생증을 두개나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일부 학교의 '자연머리 확인증'은 '교육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조처'라는 지적이 있다. 배경내 인권교육센터들 활동가는 "검은머리에 직모가 아닌 학생은 일종의 특이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라며 "확인 과정에서 본인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교사에게 이야기 해야 하는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인증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교사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머리모양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학생에게 심어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현인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확인증을 발급해 아이들을 특별 관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획일화된 사고에 매몰돼 있다는 징표"라고 말하며 "세계화는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인데 학교가 아이들의 다양한 머리 모양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확인증 없는 학교 "학생에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구분 가능…필요 없어 "

그러면 '자연머리 확인증'이 없으면 일부 학교의 우려처럼 수시로 교문에서 '불필요한 시비'가 생겨날까?

확인증을 발급하지 않는 학교들의 답변은 간단했다. "학생에게 조금만 관심을 쏟으면 금방 구분할 수 있으므로 필요없다"는 게 이들 학교의 말이다. 최정열 여의도여고 생활지도부장교사는 "보호자와 일일이 통화해 곱슬머리인 친구들을 기억해 둔다. 머리색이나 모양이 독특한 친구들이 30명 정도 되는데, 구별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전양의 어머니는 선생님이 좀 더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해주기를 바랐다. 그는 "선생님들이 학생의 특징들을 잘 기억해준다면 확인증을 발급하는 일은 필요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청은 학교에서 두발 규정을 만들 때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심현각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는 "개학 첫날부터 벌을 주거나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정 정도 계도 기간을 갖고 지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지난 2005년 각 학교에 '두발 지도 개정 지침'을 보내 일방적으로 두발규정을 만들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 지침에는 '학교 운영위원회가 두발 규정을 심의할 때 학생 대표가 참관인으로 참여하여 참고 발언을 통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학생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박신형(단대부고 2학년)군은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면 두발규정을 만들 때 학생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학교를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교사가 학생회 의견을 학교운영위원회에 대신 전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 ㄷ여고 교감은 "학생대표가 운영위에 들어오면 주눅 들어 오히려 자기 발언을 못한다. 담당교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견을 전하게 한다"고 말했다. 상일여고 박태윤 생활지도부 교사는 "학교 운영위원회는 밤에 열리기 때문에 참여하라 하면 학생들이 싫어한다"며 "학생의 직접 참여는 없다"고 말했다.

새로 결혼한 부부 8쌍중 1명이 국제결혼인 시대에 '자연머리 확인증'?

'자연머리 확인증'은 일부 학교가 학생 두발지도 현장에서 보인 고육지책 '해결책'이다. 하지만 '확인증'이 없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다수의 학교에서 보듯, '자연머리 확인증'을 통해서만 '머리색의 차이'를 '공식 허용'하는 효과는 커보이지 않는다. 학교 당국의 두발 단속기준이 타고난 '곱슬머리와 갈색머리'에도 확인증을 요구할 정도로, 옹색함과 획일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새로 결혼하는 부부 8쌍중 1쌍이 국제결혼인 사회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학생들에게 '자연머리 확인증'과 함께 '자연피부 확인증' '자연눈동자 확인증'이 발급되는 날이 올 것인지, 의문스럽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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