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 '폭탄' 맞은 아이들.. "제가 갈 중학교가 사라졌어요"

2008. 9. 19. 13:4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윤근혁 기자]

서울송천초 운동장 한복판에서 학생들이 공차기를 하고 있다.

ⓒ 윤근혁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동 송천초등학교. 이 학교에 다니는 진호(6학년)가 학교 운동장에서 톱질을 하고 있었다. 실과 실습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다.

"누나가 영훈중 1학년이에요. 내년엔 저도 누나랑 같은 학교 다닐 거에요."

이 얘기를 듣던 두 명의 여학생이 진호를 쏘아붙였다.

"야! 영훈중 없어지는 것 몰라?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없어…."

이 소리를 들은 진호는 물끄러미 학교 정문을 쳐다보았다. 정문 밖엔 노점상과 '노가다'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 학교 상당수 학부모들이 사는 낡은 집들이 비탈을 따라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송천초교에 따르면 무상 급식 대상자가 다른 서울 소재 학교보다 두 배 이상이나 높은, 전체 학생의 11%다. 가난한 '서민의 자식'들이 몰려있는 곳이 바로 이 학교인 셈이다. 사립학교인 영훈중은 원래 내년 신입생 200명 가운데 80% 정도인 160명을 송천초 학생으로 뽑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당선 이후 갑자기 '폭탄'이 터졌다. 송천초 학생들이 가도록 약속된 영훈중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대신 강남 학생들이 많이 몰린다는 '귀족학교', 영훈국제중이 생겨나게 됐다.

이렇듯 갈 중학교가 없어지는 '황당한 일'을 당해야 하는 학생은 진호를 포함한 송천초 6학년생들 만이 아니다. 또 다른 국제중이 될 대원중 주변 초등학교도 사정은 비슷하다.

걸어서 10분 거리 학교 놔두고 버스 타고 20분 가야...

다음은 송천초 6학년생들의 말을 옮긴 것이다.

"거기 가고 싶은데 우리는 못 간데요."

"국제중이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중학교인데 왜 돈 내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영훈중은 수업료만 한해 550만 원(입학금 포함)이다. 여기에 방과후 학교비, 해외 어학연수비용까지 따지면 년간 1000만 원 이상이 들 것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걱정이 태산이기는 진호 담임인 이 학교 양아무개 교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장 11월부터 '중학교 입학 배정'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상당수 아이들은 아직 영훈중이 없어지는 것을 몰라요. 눈치 빠른 어떤 아이들은 일기장에 '중학교가 없어져서 슬프다'라고 글을 쓰기도 하지요."

송천초 근처에서 요구르트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는 한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거기는 잘 사는 아이들 모일 거잖아. 우리 애들은 못 가요. 세상이 다 그런 거잖아."

이 학교 정문 옆 송천식당 주인도 한마디 거든다.

"영훈중 없어지면 버스 20분 타고 삼각산중으로 가는 거지 뭐."

송천초에서 영훈중까지는 아이 걸음으로 10분이면 되는데, 이제는 고생문이 열린 것이다.

"우리 애들 갈 데 없어졌는데 교육청은 아무 소리 없어요"

송천초 김종철 교감도 17일 서울시교육청에 섭섭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 애들 갈 데가 없어졌는데, 교육청은 아무 소리도 없어요. 이곳 학부모들은 먹고살기 바빠 반대 목소리도 낼 수 없고요."

사정이 이런데도 서울시 교육청은 '인근 학교에 배정하면 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시 교육청의 중견관리는 18일 "국제중이 생겨도 인근 초등생들은 같은 학구에 있는 중학교에 배정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민 자녀들을 위한 서울시 교육청의 대책은 '무대책이 대책'인 것이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촛불문화제 특별면]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