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느껴지는데 학교는 '야자' 계속 강제했다"

2016. 9. 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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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페친 대담: 2016년 9월13일

13일 오전 10시44분 <한겨레> 페이스북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부산에 있는 한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페친’이 보낸 메시지. 경주에서 발생한 기상 관측 이후 사상 최대 규모 지진 중에도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계속하라는 지시 받았다는 페친은 학교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며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을 걸었다.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다.
포항의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한겨레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낸 지진 이후 교실 모습

[페친] 부산의 고등학생입니다. 어제(12일) 야자를 하던 중 지진을 느꼈습니다. 운동장으로 나가려 했으나 선생님들은 다시 교실에서 야자를 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안전불감증입니다. 우리 학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잘못된 대처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겨레>에서 그 방안을 마련해주길 기대합니다.

식은땀이 났다. 지진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학교 안전 대처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말. 그러나 <한겨레> 페이스북의 독자 소통은 계속돼야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겨레 페북] 당시 상황과 학교 대처가 어떠하였는지 자세한 이야기 가능하신지요.

[페친] 선생님에게 (밖으로)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교실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잠시 애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선생님들이 진정시키고 야자를 강행했습니다. 방송을 했는데 정확히는 못 들었습니다만, 나중에 애들이 하는 말 들어보니깐 ‘더 이상의 지진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더군요. 그리고 난 뒤 2차 지진이 발생했고 (그제야) 운동장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정말 다친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이게 말이 되는 것입니까? 화가 나네요.

교육부가 배포한 지진대피 요령 매뉴얼을 보면, 1차 지진 발생 때는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책상 밑으로 대피를, 1차 지진 종료 이후부터 여진 발생 전까지는 운동장으로 대피하도록 돼 있다. 페친의 학교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교육부가 각급 학교에 배포한 지진대피 요령 매뉴얼

[한겨레] 선생님은 왜 학생에게 야자를 강행했을까요?

[페친] 글쎄요? 야자를 취소하고 분위기를 흩트릴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했겠죠. 야자는 중요하니깐요.

그렇다. 야자가 중요하긴 하다. 그래도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대형 재난이 발생할 수 있는데….

[한겨레]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세월호도 생각나셨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페친] 당연하죠.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도망친 선장은 위험을 알았는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위험조차 감지하지 못했다는 거죠.

[한겨레] 야자를 해도 공부에 집중이 안 됐을 것 같은데.

[페친] 당연히 안됐습니다. 애들하고는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대처가 안전불감증의 일부라고도 말했고요.

[한겨레] 자, 그럼 이후 상황의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2차 지진이 발생하고 나서요.

[페친] 2차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애들이 1차 때보다 더 동요했습니다. 2차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애들도 보였고요. 건물 밖으로 나가서는 딱히 특별한 지시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짐 챙겨서 집으로 가라는 귀가 조처를 내렸습니다. 운동장에서 귀가 조처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정도였습니다.

[한겨레] 학교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페친] 제가 원하는 건 단순히 학교의 변화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국민안전처에서 빠르고 정확한 지시를 학교에 내렸다면 큰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조금 답답한 마음이 있었지만 글쎄요, 그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한 국가 만들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습니다.

[한겨레] 오늘은 학교에서 어제 상황에 관해 이야기가 없던가요.

[페친] 제가 어제의 조처에 대해 잘못됐다고 은연중에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는 5개 학교 중에 4개 학교가 학생들을 교실에 남겨두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선생님이 저에게 하신 변명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육부가 각급 학교에 배포한 지진대피 요령 매뉴얼

선생님들은 교육부의 지진대피 매뉴얼을 왜 숙지하지 못할까. 매뉴얼이 학교에서 지켜지지 않은 이유를 문의했다. 교육부 학교안전총괄과 관계자는 “교사들이 3년마다 안전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했는데, 아직 교사 40%만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언제 안전 교육 의무화를 했냐고 질의하니 “지난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겨레]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페친] 만약 기사로 써지면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엄지 척 이모티콘을 날림.)

페친은 인터뷰가 끝난 이후인 이날 오후 1시35분에 한 번 더 말을 걸어왔다. 인터뷰 때 말했던 내용에 대한 일부 정정이다. “방금 알았는데요. 2학년은 1차 지진 때 대피를 했다고 합니당.” 팩트에 민감한 페친이었다.

이 밖에도 한겨레 페이스북에는 지진 당시 학교에 있었던 학생들의 제보 메시지가 이어졌다.

포항에 있는 한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페친은 “야자 중에 큰 진동을 느낀 뒤 밖으로 대피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많은 학생들이 동요했다. 일부 감독 선생님들도 저희를 밖으로 대피시켰다”며 “그러나 시간이 얼마 지나기도 전에 괜히 혼란만 일어난다며 들어가 자습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그러던 중에 두 번째 진동을 느꼈다. 형광등이 떨어져 자습하던 학생이 다쳐 급히 병원으로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 번째 진동 때 열람실 벽과 천장 등에서 파편이 떨어지는 등 안전 문제가 심각했음에도 이 건물은 안전하니 자습하라고 말하고 한 번 더 크게 지진이 나면 집으로 보내 주겠다는 등의 지시로 더 큰 혼란과 부상자가 발생했던 것”이라며 “비록 경미한 사건이지만 안전보다 학업 분위기를 더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고등학생 페친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유사시 대피시설인 학교가 사실은 지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29개 지자체별 학교시설 내진 설계 현황’ 자료를 보면, 내진 성능을 50% 이상 확보한 지방자치단체는 세종시, 오산시, 부산 기장군, 울산 북구, 경기 화성시 등 5곳에 불과하다. 페친이 성인이 됐을 때 살아갈 나라는 안전할지, 아닐지. 우선 학교 안전이 시급하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한겨레 페이스북 @hankyor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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