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방과후학교 강사 '노예계약'.."수수료 최대 60%"

2015. 1. 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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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출업체 콘텐츠 제공 명목 수수료 폭리
계약 파기 시 월급여 12배 배상 등 족쇄
교육의 질 떨어져 결국 학생들만 피해
교육당국 "일선 학교에서 알아서 걸러야'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사회적 약자를 등치는 ‘갑의 횡포’가 학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초중등학교에 방과후 강사를 파견하는 일부 업체들이 강의료의 절반 이상을 수수료로 떼는 등 폭리를 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강사들은 많게는 월급여의 60%를 수수료 등 각종 명목으로 떼인다. 송출업체들은 학교와 계약을 파기할 경우 강사가 월급여액의 12배를 배상하는 ‘노예계약’을 맺기도 했다. 피해를 입은 방과후 학교 강사들 중 상당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나 재취업에 나선 주부들이다.

◇ 업체가 통장 관리…계약 파기 시 월급 12배 배상
방과후 학교 강사의 정상적인 고용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개인이 직접 학교와 계약을 맺거나 학교가 지정한 위탁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반면 송출업체는 학교·강사와 모두 계약을 맺는다. 학교는 강사에게 직접 강의료를 지급하지만 송출업체가 통장을 대신 관리하는 방법으로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고 강사에게 준다.

‘이데일리’가 입수한 서울 강남구에 있는 H송출업체의 ‘강사 계약서’에 따르면 업체는 강의료의 최대 60%를 콘텐츠 사용료 명목으로 떼갔다. 위탁업체의 일반적인 수수료율(30%)의 두 배다. 예컨대 학생 1인당 강의료 2만5000원짜리 강의를 하면 콘텐츠 사용료로 56%를 뗀다. 강사에게 돌아오는 돈은 1만1000원 남짓이다. 여기에 소득세·학교시설 이용료·교구재 택배비까지 빼면 강사가 손에 쥐는 액수는 더 줄어든다.

이 송출업체에서 일했던 강사 A씨는 “업체가 강사들 명의의 월급통장과 현금카드 등을 직접 관리한다. 학교에서 강의료를 지급하면 자신들이 직접 수수료를 떼고 다시 입금하는 방식”이라며 “다른 지역에 비해 강의료 액수가 많은 서울 강남권 초등학교에 출강 때에는 수수료가 더 높게 책정된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계약서에는 △출강 중인 학교와 계약 해지시 월 수익 12배의 위약금 부과 △계약이 파기됐을 경우 훈련수당 200만원 환불 △계약 해지 후 1년간 계약기간 중 출강한 교육기관에 근무 금지 등 사회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조항들이 적지 않다.

이 업체에서 강사로 일한 B씨는 “계약할 때는 ‘지각이나 결근이 잦은 강사가 있을까봐 만들어 놓은 계약서’라고 안심시킨다”며 “대부분의 강사들이 이 말만 믿고 무심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노예계약을 맺게 된다”고 말했다. H송출업체는 현재 약 50명의 강사를 서울·수도권 초등학교 약 150곳 방과후 학교 수업에 파견하고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송출업체가 아니라 콘텐츠 개발업체”라며 “수수료는 콘텐츠 제공에 대한 대가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송출업체 강사 2만~3만명…교육당국은 뒷짐만
방과후 학교 강사는 해당 학교의 교감과 교원, 그리고 학부모로 구성된 소위원회(5~7명)에서 선정한다. 그러나 대부분 학교에서 방과후 학교 강사 선정은 교감과 방과후 학교 부장교사 등 학교 측 인사들이 사실상 좌우한다. 송출업체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도 교장이나 교감과의 네트워크다.

일부 학교의 방과후 학교는 경력이나 실력이 뛰어난 강사가 아니라 교장·교감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특정업체 소속 강사가 독점하기도 한다. 한 송출업체 소속 강사는 “학교에 면접 보러 가기 전 업체 대표가 ‘교감 선생님께 말 잘 해놨으니 편하게 보고 오라’고 했다”며 “수업 중 교감 선생님을 만났는데 ‘업체대표가 요즘은 잘 안 놀러온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송출업체 강사가 전체 방과후 학교 강사 중 20~30%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교 방과후 학교 외부강사는 10만398명이다. 최소 2만~3만명 사이라는 얘기다. 경기도 지역 송출업체 대표 A씨는 “교구재가 필요한 과학이나 공예 등 개인적으로 콘텐츠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과목의 강사들 대부분은 송출업체에서 파견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교육청에, 교육청은 일선 학교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팔밀이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방과후 학교는 지자체 이관사업이라 가이드 라인 제시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며 “송출업체는 강사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파악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송출업체 강사를 뽑지 말고 중간에 적발되면 계약을 해지하라고 지침을 내리긴 했지만 방과후 학교는 수익자 부담 교육이라서 더 이상의 조치는 어렵다”며 “일선 학교에서 잘 걸러내는 방법 밖에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방과후학교 강사 송출업체가 작성한 ‘프리 강사 계약서’의 일부. 업체는 강의료의 최대 60%를 콘텐츠 사용비 명목으로 떼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용석 (chojur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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