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급식, 밥값 50배 물어내' 학교에 나붙은 무서운 경고장

2014. 11. 1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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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행수 기자]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전교조 등 교육관련 시민단체 회원들은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무상급식-무상보육파탄위기해결과교육재정확대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희훈

경남 홍준표발 '무상급식 중단 논쟁'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경기도 남경필 지사도 무상급식 예산 지원 축소에 나섰고, 울산과 부산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청와대와 새누리당도 한 마디씩 보탰다. '무상급식은 대통령 공약이 아니다'라고...

고등학교 교사인 난, 얼마 전 학생 A의 어머니로부터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아이의 급식비며 학비를 내기 힘드니 학교에서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학생의 가정은 정부 지원 항목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특수한 경우, 즉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메시지를 읽으면서, 차마 전화를 걸지 못하고 문자로 연락을 하며 미안해하는 그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최근엔 B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왔다. A의 어머니와 반대로 "차마 전화로 말씀 드리기 죄송해서 직접 찾아뵙겠다"면서... 혹시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있나 했더니, 이유는 A의 엄마가 연락한 이유와 똑같았다.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학비를 지원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교사들은 절망한다. 꼭 지원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뚜렷한 지원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돈 이야기 하는 걸 꺼린다. 특히 밥값 이야기는 정말 하기 싫다. 아니, 어렵다.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너 왜 돈 안 내?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내야지"라는 말을 해야 하나. 초등학교와 달리 중·고등학교의 무상급식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아, 이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행정실에서 온 애들 명단,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 학교에 급식실 입구에 붙어있는 공지사항. 도식을 하면 급식비의 50배를 납부하게 하겠다는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몇몇 학교에는 '도식(盜食)'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급식비를 안 내거나 못 낸 학생들이 급식을 먹으면 '도식'이란다. '훔쳐 먹었다'는 것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부 학교들은 도식 학생들을 징계하거나 벌점을 준다. 심지어 '밥값의 50배를 물어내야 한다'는 규정을 갖고 있는 학교들도 있다.

교실 배식을 하는 경우,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은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리면 조용히 교실을 빠져 나간다. 급식실이 있는 경우, 입구에 설치된 인식기에 카드나 학생증 등을 갖다 대고 들어가 밥을 먹는다. 급식비를 안 낸 학생이 다른 학생들 사이에 끼어 밥을 먹는 걸 막기 위해 급식담당 직원이나 학생부 교사가 급식실 앞에 서 있기도 한다. 급식비를 내지 못한(않은) 학생들은 교사나 영양사가 지키고 있는지 눈치를 보다가 발길을 돌린다. 몇몇 학생들은 통장에 잔고가 없어 급식비가 미납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급식실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미납된 카드를 찍으면 '삐~' 소리가 난다).

며칠 전에도 행정실에서 교내메신저로 학생들 명단이 첨부된 파일을 보냈다. 급식비, 방과 후 수업비, 등록금 등 납입금 안 낸 학생들 명단이다. 물론 행정실은 미납학생의 학부모에게 전화도 하고, 우편도 보낸다. 그러면서 담임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도 담임교사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상황이다. 불러서 이야기를 해야 하나, 어떻게 이야기를 하나, 부모님께 전화해서 뭐라고 할까... 이런 물음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친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만나 무상급식 시행 이후 나아진 게 뭐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돈 이야기를 덜 하게 돼 좋다고 한다. 2010년 시작된 무상급식 바람으로 인해 현재 거의 모든 지역에서 초등학교 무상 급식이 실시되고 있고 일부에선 중학교로 차츰 확산되던 추세였다.

국민들 더욱 화나게 만드는, 그들만의 '역주행'

▲ 무상급식·무상보육 예산 갈등에 난감한 새누리당

내년도 누리과정 예산 편성 과정에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둘러싼 정파적 갈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와 이완구 원내대표, 김태호 최고위원이 동료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돈 이야기 안 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좋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지금까지 확대되어온 초등학교, 중학교 무상교육의 수준을 유지한 채 이를 고등학교까지 확대한다는 의미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말도 안 꺼내고, 무상급식 예산을 줄여서 미취학 아동들의 보육예산(누리과정)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아닌가? 그냥 안 주는 것보다 약속한 것을 안 주는 것이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든다. 주겠다고 한 것을 안 주는 것보다 주었던 것을 빼앗는 것에 대한 저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선택은 국민을 더욱 화나게 하는 역주행이다.

이전에 주어졌던 것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거나 조금의 변화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상급식이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니, 불필요한 지원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모아지면 없어질 수도 있고 개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명백하게 도교육청의 권한인 급식업무에 대해 도청이 감사를 하겠다니... 이를 곱게 받아들일 교육감은 없다. 진보교육감에 비판적인 한국교총도 도청의 학교 감사에 반대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필요하다면 도청이 아니라 감사원의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입장까지 밝혔지만 홍준표 지사는 "감사 없이 예산 없다"며 고집했고 급기야 무상급식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주민투표를 주장하고 나섰다가 서울시민들에게 퇴짜(투표율 미달)를 맞아 자리에서 물러난 후, 선거에 나선 그 누구도 무상급식 반대를 명시적으로 내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무상급식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새누리당 후보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무상급식이 아닌 무상보육이 자신들의 공약이었다면, 왜 박근혜 대통령은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 그것도 교육청에 떠맡기는가. 국민의 표가 필요할 때는 약속을 했다가 정작 책임은 시도교육감에게 떠맡기는 것은 정치적 도의에도 어긋난다.

정말로 무상보육 예산 때문에 무상급식 예산 지원이 어렵다면 국민들에게 사과 먼저 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할 때까지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뿐 아니라 시도교육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공약은 중앙정부가 정작 실행은 지방정부의 예산으로 하라니, 이건 어불성설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가 국가의 재정 정책이다. 또 이만큼의 정책을 수행하는데 드는 재원을 어디에서 얼마만큼 확보할 것인가가 또 다른 재정 정책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무상급식이냐 무상보육이냐의 논쟁은 일면만 반영한, 반쪽짜리 논쟁인 듯하다.

너무나 형편없는 대한민국의 아동복지 예산

물론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라는 논쟁은 벌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누리과정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므로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맞는다는 점이다. 또 시도교육청은 유치원 단계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그러니까 초중등교육을 주로 책임지고 담당하는 곳이고, 영유아 보육은 보건복지부와 시도자치단체의 주된 업무다.

백보 양보하여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예산 논쟁을 하려면 이 두 가지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해야지,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이 모두 시도교육청의 당연한 책무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면서 논쟁을 유도하면 안 된다.

이 논쟁과 관련하여 우리가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 과연 양립불가능한 양자택일의 논제냐는 것이다. 지금 무상급식 논쟁이 이전투구처럼 진행되는 이유도 이 둘을 양자택일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정치적 시각 때문이다.

여기서 국제 통계를 몇 가지만 인용해 보자.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 회원국 중에서 복지 재정이 가장 적은 나라이다. GDP(국내 총생산) 중에서 복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해보자. OECD 평균은 22%인데 우리는 9.3%로 절반도 안 된다.

아동복지 예산은 더 형편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3년 보고서 'OECD 국가와 한국의 아동가족복지지출 비교'에 의하면, 아동복지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로 OECD 평균 2.3%의 1/3에 불과하다. 34개 회원국 중 32위로 역시 꼴찌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OECD가 통계를 작성한 이래 공교육비 중 사교육부담률, 그러니까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개인적 지출 비중 부분에선 12년째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사교육비부담까지 더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임에 틀림없다.

물론 조세부담률이나 국민부담률 같은 수치도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대단히 낮다. 즉,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저부담-저복지' 유형의 복지정책을 취하는 나라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복지수준, 특히 아동분야의 복지수준과 재정지출 수준은 분명 형편없이 낮은데도 청와대와 여당인 새누리당, 새누리당 소속의 시도지사들은 '아이들의 밥값지원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무상급식이냐, 무상보육이냐 토론의 선행 과제

▲ 최경환 가면 쓴 퍼포먼스 "무상급식 파탄책동 중단하라"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열린 '무상급식-무상보육파탄위기해결과교육재정확대촉구' 기자회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가면을 쓴 한 회원이 "무상급식 파탄책동 중단하라"가 적힌 식판을 던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이희훈

무상급식이냐, 무상보육이냐 논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교육비도 아닌 보육비를 교육기관인 시도교육청에 분담시키기 위해 이런 프레임으로 논쟁 구도를 짜는 것은 비겁한 행태다. 바람직한 논쟁이 되려면 무상보육이냐 무상급식이냐가 아니라, 무상교육이냐 유상교육이냐 혹은 복지예산 확대냐 축소냐를 가지고 논쟁해야 한다.

특히,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아동복지 예산 전체 수준을 늘릴 것이냐 줄일 것이냐를 가지고 논의를 해야 한다. 개발 지출을 늘릴 것인가, 복지 지출을 늘릴 것인가?, 국방 지출을 늘릴 것인가, 교육 지출을 늘릴 것인가?... 이런 식으로 예산 지출 전반에 대한 국가의 비전을 놓고 국민적 토론을 해보자.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도 마찬가지다. 세금 폭탄 어쩌고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나라 중 하나다. 국민의 조세 부담 정도를 나타내는 국민부담률이 선진복지국가보다 낮을 뿐 아니라 OECD 국가 중에서도 거의 꼴찌이다.

이런 객관적 상황, 그러니까 세금은 적게 내고 국방비와 SOC 분야 지출은 높은데, 복지 분야 지출 수준은 낮은, 특히 아동분야 복지 수준은 형편없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정확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실상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채 재정과 조세 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하자. 이것이 무상급식이냐, 무상보육이냐 토론의 선행 과제다.

이런 상황을 모른 척하고 무상보육이 우선이냐, 무상급식이 우선이냐를 놓고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그야말로 대국민 사기극이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청와대와 새누리당 대국민 사기극을 이제 그만 끝내자.스마트하게 오마이뉴스를 이용하는 방법!☞ 오마이뉴스 공식 SNS [ 페이스북] [ 트위터]☞ 오마이뉴스 모바일 앱 [ 아이폰] [ 안드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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