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 후보 친딸 캔디 고 인터뷰 일문일답

2014. 6. 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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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페북 글 공개한 뒤 '한겨레'와 이메일 인터뷰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 캔디 고(27)씨는 1일 <한겨레>의 이메일 인터뷰 요청에 응하면서 "저는 진실을 알리고 싶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겨레>는 이메일로 9가지 질문을 보냈고, 고씨는 2시간 만에 "영어가 더 편한 관계로 영어로 답하겠습니다"는 말과 함께 답신을 보내왔다. 고씨는 1987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 캠버리지 시에서 태어났고, 1991년부터 8년 동안 잠시 한국에 살았으나 이후에 계속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하는 일문일답이다.

1. 우선 어떤 계기로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결심을 하였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언제 무엇을 계기로 글을 쓸 생각을 하시게 된 것인지요?

- I felt and experienced all the things I described in the open letter for most of my life. There were no ears to listen to what I had to say since the person who really needed to hear those words-my own father-was unavailable. I had no choice but to watch as he gave talks at youth camps or was praised as a smart man. Back then, there were no social media platforms as powerful as Facebook. This election, however, particularly motivated me finally to speak publicly because of the absurdity of his running for that particular position, Superintendent of Education. I scan the Korean news sometimes, especially lately because of the Sewol-ho incident, and I came across news that he was actually running for that position. I could not believe it and I thought it would be a sin to stay silent this time. For me not to say anything would be to accept that he is qualified to run for office, when clearly, as a father who had forsaken his own children, he has no right to it at all. I wrote and revised the letter multiple times, wondering if I should do it. But when I finally saw articles on the Internet about his "crying over his son," that made me decide I needed to send my letter out for everyone to see. Those tears were not for a son whom he willingly abandoned.

=저는 공개편지에 설명한 모든 것을 살아오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직접 느끼고 경험했습니다. 저에겐 말하고 싶은 걸 들어줄 귀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저의 아버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고승덕 후보)가 청소년 수련회에서 강연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걸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땐 페이스북처럼 강력한 사회 관계망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그가 교육감 후보로 나왔다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이 특히 저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저는 한국 뉴스를 가끔 봅니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사고 보도 때문에 뉴스를 봤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교육감 선거에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게 됐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조용히 있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제게는 그가 교육감 후보로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니까요. 명백히 그는 자기 자녀들을 버린 아버지임에도 말입니다. 그는 교육감을 할 자격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이걸 꼭 해야 하는지 반문하면서 편지를 여러 번 쓰고 고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가 "자신의 아들 때문에 울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보고는 모든 사람이 보도록 편지를 발표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눈물은 자기가 버리기로 결정한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아버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이 11살이었고, 매년 돌아오는 아버지의 날은 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사람들이 아버지는 어디 계시고, 무얼 하시느냐고 묻는 것이 끔찍하다"고 썼습니다. 그런 기억 중에 혹시 구체적인 에피소드 하나 정도 들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 There are so many times when I felt the pain of a missing father, but I think it was particularly difficult growing up in the U.S. without one. American fathers tend to be very active with their children-I remember that my American friends thought it so strange my father never taught me how to ride a bike or never played catch with me. I also recall times when there would be "Father's Day activities" at school (in the U.S., there are separate days for Mother's Day and Father's Day at different times a year) and everyone made cards and presents for their fathers but I didn't have one to give them to, so I would make them then give them to my mother or just throw it out.

=제게 아버지가 없어 고통을 느낀 적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미국에선 아버지 없이 자라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아버지들은 자신의 자녀들과 매우 많은 활동을 합니다. 제 미국인 친구들은 제 아버지가 제게 어떻게 자전거를 타는지 가르쳐주지 않고, 저와 한 번도 캐치볼을 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학교에서 '아버지의 날' 행사가 있던 날이 기억납니다. 미국에선 한 해 중에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카드를 쓰고 선물을 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드와 선물을 제 어머니에게 드리거나 만든 뒤에 그냥 버리기도 했습니다.

3. 고승덕 후보는 캔디 고씨의 페이스북 글이 공개된 이후 "저는 아픈 가족사에 대해서는 세세한 말씀을 드리기 어렵지만 아버지로서 결별 과정과 재혼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큰 상처에 대해 평생 미안한 마음입니다. 제가 지난 십여 년간 청소년 활동과 봉사에 매진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라고 공식 답변을 했습니다. 이 답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His response has nothing to do with the content of my letter. His personal pain does not justify his absence and lack of contact with his children. If he is so sorry to his children, he should be kind to his own children, not ignore them so that he could teach other kids how to study well. I also found out about his remarriage through the Internet. He should know that if he is so sorry, he should not allow any child to find out about their parent's remarriage through the Internet.

=그의 답변은 제 편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의 개인적 고통이 그의 부재나 자식들에게 연락이 부족했던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느꼈다면, 자신의 자녀들을 무시하지 않고 살갑게 대했어야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른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지 가르쳐야 하는 거죠.

또한 저는 그의 재혼 사실을 인터넷으로 알았습니다. 그가 정말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면, 자기 자식이 인터넷으로 자기 부모의 재혼 사실을 알도록 해서는 안 되다는 것 역시 그는 알아야 합니다.

4. 일부에서는 고승덕 후보의 사적인 가족 내부의 문제에 대한 '폭로'가 서울시교육감이라는 공적 지위의 수행 여부를 따지는 선거 과정에서 제기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s I wrote in my letter, I watched him run for office as governor for many years. People did not know about his dark personal life but I also didn't think his personal life was entirely relevant in context of his political life. The position of a Superintendent of Education, however, I believe is a different story. I believe education begins in a small scale, with the children nearest to a person. Thus I do not think that anyone who is unable and unwilling to educate his own children would be able to apply any kind of educational policy on a larger scale, such as for an entire city.

=제가 편지에도 썼듯이, 지난 몇 년 간 저는 그가 공직에 출마했던 것을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어두운 사생활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저 역시 그의 사생활이 전적으로 그의 정치적 생명을 결정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교육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교육이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자녀와의 관계에서부터요.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할 능력이나 그럴 의지가 없는 사람은 한 도시 전체와 같은 대규모 지역에 어떤 교육정책도 펼칠 수 없다고 봅니다.

5. 애초 캔디 고씨의 남동생에 대한 '이중국적' 문제가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고 후보가 기자회견을 열고 "아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우연히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것", "아들은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잘못을 저질렀으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며 눈물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을 알고 계셨는지요? 남동생 분은 여기에 대해 혹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요? 동생이 논란이 된 것에 대해서 캔디 고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My brother does not know what happened and I cannot speak for him. But as I wrote earlier, seeing that news pushed me to post my letter. I don't ever remember his showing that kind of emotion for me or my brother in real life.

=제 동생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를 대신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썼듯, 그 뉴스를 본 것이 제게 페이스북 글을 포스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고승덕 후보)가 현실의 삶에서 저와 제 동생에게 그런 정도의 감정(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쏟은 일)을 보인 기억이 제겐 없습니다.

6.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뒤에 고승덕 후보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혹시 연락을 해왔는지요? 연락을 해왔다면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 I received a single Kakaotalk message from him, asking me whether I "changed my phone number" because I "was not picking up." My phone never rang. I have had the same phone number since I first got a cellphone around the year 2001. This episode is another proof that he never even bothered to contact me or to make sure that he had my number.

=그(고승덕 후보)로부터 제게 "전화번호를 바꿨니"라고 묻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하나 왔습니다.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요. 제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1년에 휴대전화를 처음 갖게 된 뒤 이제까지 늘 같은 번호를 써왔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그가 제게 연락하려고 전혀 애를 쓰지도 않았고 그가 제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7.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전에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과 상의를 했는지요? 혹시 상의를 하셨다면 어머니나 다른 가족들은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 I wrote the letter because I believed there was no other choice of moral action to take. I was set on making the letter public and no one could convince me otherwise. Just to make sure she knew directly from me rather than the news media or SNS, I did let my mother know before I uploaded the writing.

= 내가 페이스북 글을 쓴 것은 내가 취할 수 있는 도덕적 행동의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글을 대중에게 공개하길 원했고, 다른 누구도 저를 설득할 순 없습니다. 정확히 하자면, 제 어머니가 제가 쓴 글을 SNS나 언론을 통해 알게 되는 것보다 저한테 직접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글을 게재하기 전에 제 어머니에게 먼저 알렸을 뿐입니다.

8. 한 언론에서 캔디 고씨의 외할아버지이신 고 박태준 전 포스코 명예회장님의 아드님, 즉 캔디 고씨의 외삼촌이 또 다른 서울시교육감 후보인 문용린 후보 쪽에 전화를 걸어 "조금 있으면 미국에 있는 조카(캔디 고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다. 고승덕과 싸워줘서 고맙다. 이게 우리 집안의 뜻이다", "고승덕씨의 인륜을 저버린 것에 대한 폭로는 우리 가족의 뜻이다. 자식을 버린 고승덕과 싸워줘서 고맙다. 선전해서 서울시 교육을 잘 이끌어 달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보도가 사실인지요?

사실이 맞다면, 캔디 고님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신 것은 캔디 고씨 개인의 뜻이 아니라 어머니 가족의 뜻이며, 사실상 문용린 후보 지지를 위해서 글을 올린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요?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이 보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보도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을 자유롭게 해주시면 됩니다.

- I informed the relatives on my mother's side as I uploaded my letter that I was going to do this. I only saw later through a news site that my uncle had spoken to Mr. Moon. I assume this was because they have a prior acquaintance. Once they saw my letter online, all the relatives on my mother's side have expressed their full support of my action. However, each have their own political positions so I cannot speak for any one person as a whole.

= 저는 이 글을 올리면서 내 어머니 쪽 친척들에게도 내가 이 글을 올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저는 제 외삼촌이 문용린 후보 쪽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 나중에 봤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들이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제 외가 친척들은 제 글을 온라인에서 보자마자 제 행동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대신해서 그게 전체인양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9. 고승덕 후보 쪽 인사는 페이스북 글 보도 직후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혼하면서 양육권도 가져갔고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했다.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Whatever legal agreement they reached during their divorce, I still don't believe that justifies a parent completely disregarding his own children. The fact is fact: he did not care for his children and he did not educate his own children.

= 그들(부모)이 이혼할 때 어떤 법적 합의를 했는지와 관계없이, 저는 그것이 한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이재훈 김지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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