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할인 규제' 강화하면 출판시장 살아날까요

2014. 3. 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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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NIE 홈스쿨] '도서정가제' 찬반 논란

이르면 올해 후반기부터 온라인 서점가에서 '책값 반값 할인' 등의 홍보문구는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달 2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출판, 서점 업계가 '도서정가제'와 관련해 책 할인 폭을 최대 15%로 하자는 데 잠정 합의했습니다. 합의 내용은 △가격 할인과 각종 마일리지·경품 제공 등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규모가 책 정가의 15%를 넘지 못함(특히 직접적인 가격 할인은 10%를 넘지 못하게 함) △실용, 초등학습서로 분류한 책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도서정가제를 적용함 등입니다.

도서정가제 논란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건 10여년 전입니다. 오프라인 서점만 있었을 때는 가격 할인 경쟁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온라인 서점이 생기면서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출판사들은 오프라인 서점에는 정가의 최대 약 70%로 책을 공급하지만 인터넷 서점에는 한 번에 책을 많이 팔아준다며 심하게는 정가의 50%로 책을 공급합니다. 인터넷 서점의 할인 폭이 클수록 출판사의 마진은 그만큼 줄어듭니다. 이익을 남기려면 책값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가 정한 도서의 가격보다 도서를 싸게 팔 수 없게 하는 도서정가제가 시행됐습니다.

이번 합의안이 나온 데는 배경이 있습니다. 현행 도서정가제에 따르면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나지 않은 책은 19% 이상 할인할 수 없습니다. 단, 실용서는 제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편법'이 등장했습니다. 인문, 사회 분야의 책이 실용서로 둔갑해 대폭 할인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합의안대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소비자는 어떤 분야의 책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든 정가의 15% 안에서만 할인을 받습니다.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쪽과 반대쪽 사이에는 책을 보는 다른 시각이 존재합니다.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책이 여느 일반 상품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결정이 됩니다. 시장경쟁 논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변화되고, 거기에 따라 상품 가격도 달라집니다. 하지만 전기료, 수도료와 같은 경우는 다릅니다. 이런 요금들을 공공요금이라고 하는데 공공요금 가격이 너무 오를 경우,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거라는 뜻에서 정부가 가격을 통제합니다. 공공요금은 국민생활에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성격이 강한 비용으로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 정부가 적절한 개입을 할 수 있습니다.

덤핑 판매 이대로 방치하면영세출판사와 서점 타격받아독자들에게 손해로 돌아와요더 많은 사람이 싸게 살 수 있게정가제 하지 말자는 의견도 나와출판동네 살릴 대안이 필요해요

책을 준공공재로 봤을 때는 정부가 적정 수준의 개입을 해야 합니다. 책을 살 때 부가세 10%를 면제해주고, 세금을 들여 공공도서관을 지어 무상으로 책을 빌릴 수 있게 해주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사용가치는 물건이 가진 유용성 또는 효용 등을 말합니다. 물건의 쓰임새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완전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책을 산 소비자의 사용가치가 책의 종류, 모양 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책 속 콘텐츠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 사용가치는 다른 재화의 사용가치와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콘텐츠들은 인류의 보고이자 지적 자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큰 어려움 없이 공유해야 하고 다른 상품과 달리 문화재, 공공재처럼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도서정가제가 없으면 소비자들에게 손해라고 강조합니다. 책값 할인 경쟁은 출판사 쪽에 더 헐값에 책을 만들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가가 쓴 양질의 원고를 찾아 잘 편집한 책으로 내려면 책값을 자꾸 올리고 싶습니다. 할인판매를 고려한 거품 가격이 형성되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오프라인 서점 수는 급감하고, 서점 수 감소로 판로를 잃어버린 출판사는 경영 악화에 시달리게 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자본이 있는 대형 출판사나 대형 서점보다는 자본이 없는 영세 출판사와 중소 오프라인 서점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 영향이 독자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입니다. 1000곳이었던 출판사가 100곳으로 줄어들면 독자는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를 만날 기회를 놓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쪽은 책 역시 다른 상품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시장에서 활발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하고, 소비자의 판단에 따라 선택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없을 경우, 각종 할인 등이 가능해져서 독자들은 더 많은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도서정가제는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권익을 침해하는 제도다." 도서정가제 반대 입장의 논리입니다.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책이 곧 '문화'이고, '공공재'라면 더 많은 사람이 더 싼 비용을 들여 손쉽게 문화를 만나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으냐고도 반문합니다. 그래야 생활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도 큰 부담 없이 책을 구매해 지식 콘텐츠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도서정가제가 없을 경우, 중소 오프라인 서점이 몰락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도서정가제 반대 입장에서는 여기에 대해서도 다른 논리가 있습니다. 가격 할인은 비용을 가장 덜 들일 수 있는 영업활동인데 도서정가제가 강화될 경우, 중소 오프라인 서점은 가격 할인 대신 각종 경품행사를 진행하거나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장소를 점포로 이용해야 차별화가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자본이 없는 중소 오프라인 서점 입장에서 이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게 반대쪽 논리입니다.

도서정가제 문제는 이렇게 팽팽한 찬반 대립 속에 곧 '강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찬반 논란은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논쟁과 닮았습니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독과점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독과점은 막아야 하지만 기업형 슈퍼마켓이 사라진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날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책값이 모두 똑같다고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을 찾던 사람들이 동네 오프라인 서점을 찾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도서정가제는 무너지고 있는 출판시장을 살리자는 뜻에서 나왔지만 실용서나 참고서 외에는 책을 안 읽는 우리나라에서 근본적으로 출판시장을 살릴 만한 다른 근본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정부의 역할과 의사결정-공공재

정부는 생산 활동에 참가해 공공재를 공급하기도 한다. 공공재는 국방 서비스나 국도처럼 함께 사용할 수 있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를 말한다. 그런데 공공재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도 사용할 수 있으므로 기업이 생산을 통해 이윤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가 기업 대신 생산을 담당한다. 또한, 정부는 왜곡된 시장에 개입해 간접적으로 생산을 촉진하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한다.(<고등학교 경제>, 천재교육, 77쪽)

더 알아보기 | OECD 회원국의 도서정가제

선진국 진입의 주요 척도가 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2013년 기준 34개국입니다. 이 가운데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14곳, 도서정가제 비시행국은 20곳입니다. 오이시디 회원국 기준으로는 4 대 6의 비율로 정가제 비시행국(59%)이 시행국(41%)보다 약간 높은 비율입니다. (그래픽 참조)

표를 보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곳은 보통 비영어권이고, 도서정가제를 시행하지 않는 곳은 보통 영어권 국가들입니다. 영어권 나라들이 도서정가제를 실시하지 않는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대표적인 국가인 영국, 미국은 해외 수출 등의 문제 때문에 도서정가제를 시행하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가제가 있으면 수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와는 출판 규모, 언어권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미국도 전체 출판 매출의 97%가 20개 상위 대형출판사에 집중될 정도로 독과점 문제에 시달리고 있어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반면 독일, 프랑스의 경우는 비교적 엄격하게 도서정가제를 시행합니다. 1970년대까지 자유경쟁 가격제도를 유지하던 프랑스는 1981년 좌파 사회당이 집권한 이후 중소 출판사들을 육성하자는 뜻에서 '랑법'(당시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의 성을 따 붙여진 이름의 완전도서정가제)을 도입했습니다. 대형 서점의 할인 경쟁으로 작은 서점들이 위기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독일 역시 1988년부터 도서정가제를 강력히 시행하고 있습니다.

논제로 정리하기 | 시장경제 원리와 가치

1998년 한양대 정시 논술에서는 모든 가치가 시장경제 원리로 일원화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 글을 지문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시장경제 원리로만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가치척도의 일원화 현상을 비판하라"는 논제가 주어졌습니다. 시장의 경쟁원리가 적용될 수 없고 그래서는 안 될 영역들은 어떤 영역일까요? 공공요금의 경우,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의 경우, 인간에 대한 평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도서정가제가 책을 단순 상품이 아니라 문화재, 공공재로 바라보는 것처럼 이 논제 역시 일반적인 시장경제 원리로 모든 것의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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