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이병도 '식민사관에 맞선 학자'.. 김구는 축소, 이승만 띄우기
지난 2일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한 일반인들의 교과서 열람이 시작되면서 '우편향' 논란에 휩싸인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도를 넘는 서술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사학자 이병도는 식민사관에 맞선 인물로 미화했다. 대한민국 건국준비활동 항목에서 이승만은 상세히 소개됐지만 김구는 사라졌으며, 을미사변과 맞물려 명성왕후 시해 살인범의 회고록을 실은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 "이병도, 진단학회를 조직해서민족주의적 역사연구에 기여"조선사편수회 친일행적과 상반
▲ 건국준비 항목 김구 이름 전무이승만은 17번이나 언급해 대조무장투쟁보다 외교운동에 편중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과 시민들은 4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090차 정기 수요시위를 열고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 거부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 김창길 기자
■ 이병도가 민족사학자 신채호 반열로
교학사 교과서는 이병도에 대해 진단학회를 조직해 식민사관에 맞선 인물로 서술했다. '민족문화 수호 운동의 전개'(266쪽) 부분에서 "우리 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을 주장하는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 왜곡에 맞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역사 발전을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역사 연구가 활발해졌다"고 기술한 뒤 박은식·신채호·정인보·문일평·백남운 등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어 "이외에 이병도와 손진태 등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는 실증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풍을 세웠고, 1934년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의 역사 연구는 모두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다"고 서술했다. 이병도를 포함해 모두 뭉뚱그려 식민사관에 맞선 것으로 그린 것이다. 진단학회 조직은 중요한 사건만 제시하는 단원 개관의 연대표에도 들어가 있다. 이 연대표에 임시정부 수립은 빠졌다.
이러한 평가는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가 국사학계 태두로 서울대에 있으면서 한국사 전반에 식민사관을 정설로 굳혔다는 재야학계 비판은 물론 기존 역사학계의 평가와도 동떨어진 것이다.
도면회 대전대 교수는 "일제시기 이병도의 논문은 일본인들도 우수성을 인정했다"며 "그러나 일본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일본인 학자들과 경쟁한 것으로, 이병도가 식민사관에 맞섰다고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이병도는 일제가 식민사관을 심기 위한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고, 유림의 친일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평의원까지 지내는 등 논란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라며 "교학사 교과서는 각 분야의 친일작업을 희석시키겠다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쓰여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의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 김구는 18번, 이승만은 82번 거론
독립운동과 건국 과정 전반에서 '이승만 띄우기'도 도드라졌다. 독립운동과 건국준비에서 비중 있는 인물인 김구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적어 대비됐다.
1940년대 독립운동을 다룬 '건국준비활동'이란 주제(290~294쪽)에서 김구의 이름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이승만은 17번 언급됐다. '일제강점과 민족운동의 전개',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세계의 변화' 제목의 5·6단원에서 이승만은 82회 거론된 데 비해 김구는 18회뿐이었다.
전체 독립운동사 서술에서 이승만이 치중했던 외교독립운동을 비중 있게 다뤘고 이승만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서술이 많았다. 반면 간도나 연해주의 독립운동 비중은 크게 줄였다. 이승만의 외교활동은 256~257쪽에서 기술한 뒤 뒤쪽에서도 1.5쪽을 할애했다. 그 사이엔 의열 투쟁을 공부하면서 신채호의 외교독립운동 비판이 현실적이었는지 묻고, 이승만의 활동이 가장 현실적이었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이승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학습활동도 곳곳에서 제시됐다. "하야를 결정하면서 무엇이 이승만 대통령의 가장 큰 근심사였는지 생각해 보자"며 반공을 상기시키고, "국제 정세와 미국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있던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고 묻기도 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교과서 곳곳에서 친일에 대해 비판 없이 면죄부를 주려는 태도가 역력하고, 김구는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띄우려는 점도 뉴라이트 계열에서 펴낸 책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 명성왕후 시해 가담범 회고록 실어
교학사 교과서엔 "민비를 제거"(교과서 표현)한 살인 가담범의 회고록도 실렸다. 교과서는 "당시 시행하는 정책은 모두 민비의 계책이었으며 국왕은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중략) 이 점에 착안하여 근본적으로 화근을 제거코자 도모한 것이다"라며 을미사변에 가담한 일본인 '고바야카와 히데오'의 회고록을 사진과 함께 실었다. 회고록 아래엔 "당시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과격한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학습문제도 실었다. 역사교사들은 "일제 만행의 배경을 담는 위험천만한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와는 달리, 책 뒤의 찾아보기(색인) 목록에서 독립투사인 '안중근' 의사 이름도 빠진 것으로 나타나 논란을 낳고 있다.
<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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