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타고난 것"

2013. 9. 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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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함께하는 교육] 청소년 성소수자 좌담회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고민이 많다. 내가 동성애자인지 어떻게 확신하는지, 주변에 알린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등등. 그 시기를 먼저 겪은 김조광수 감독은 비슷한 이들과 교류하며 자기 긍정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깨달은 김조광수 감독. 이후 그는 커밍아웃을 하고 현재 영화감독과 제작자로 활동중이다. 오는 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와 결혼을 앞둔 그가 지난달 23일, 10대 성소수자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김조 감독을 제외한 참가자 모두 익명을 썼다.

참가자 상근(25)은 현재 대학생이며 게이다. 휘류(18)는 레즈비언이고 고등학교 2학년이다. 바람(19) 또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게이이며 이들 모두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조 감독은 이날 좌담회에서 "동성애는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것"이라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이를 인정하고 당당하게 삶을 즐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얘기했다. 그는 좌담회 뒤 참가자 모두에게 청첩장을 나눠주며 "누구든지 올 수 있다. 행복한 날이니만큼 다 함께 즐겨달라"고 덧붙였다.

김조광수 감독(이하 김조)

난 15살에 게이란 걸 인식은 했는데 이걸 부정하다 15년이 지나서야 스스로 인정하게 됐어. 서른 무렵부터 주변에 커밍아웃하면서 지금은 행복한 게이의 삶을 살고 있어.

상근

처음에 본인이 게이란 걸 부정하다 나중에 인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때 느낌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조

내가 83학번인데 대학 때 학생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어. 어느 날 종로에서 가두시위를 하다 경찰을 피해 탑골공원 근처 골목으로 도망쳤어. 그러다 우연히 극장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게이들이 주로 모이는 곳이었어. 이후 그곳에 가서 마음에 맞는 상대를 만났고 그 형에게서 게이가 정확히 무엇인지, 외국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활발하다는 얘기를 들었어.

이후 책을 찾아보고 공부하며 그동안 내가 잘 몰라서 스스로를 혐오했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면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지. 만약 사춘기 때 자기 꿈을 실현하며 잘 살고 있는 동성애자를 봤으면 10년 넘게 스스로를 혐오하면서 살지 않았을 테니까.(웃음)

상근

전 제 주변 사람이 제가 게이란 걸 거의 다 알아요. 제가 인지 못하는 거까지 합치면 100%라고 봐야죠.

바람

저는 얼마 전 집안에서 아웃팅(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는 행위) 당했어요.

휘류

저는 스스로를 혐오한 적은 없어요. 동성애를 잘 몰라서 안 좋은 시각이란 것도 없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저의 성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막연하게 받아들였어요. 가족들은 아직 모르는데 답답해 죽을 것 같아요.

김조

우리 엄마도 지금은 사람들 앞에서 아들이 자랑스럽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내가 편하자고 부모를 괴롭히는 건 아닐까 고민했고. 내가 처음 얘기했을 때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는 종교적 문제까지 겹쳐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해.

내가 이기적인 게 아니라 내 가족에게도 좋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봐. 부모에게도 자식이 성 소수자라는 걸 받아들일 기회를 준다고. 물론 커밍아웃으로 어려운 관계에 놓인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족이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엄마 주변 사람도 처음엔 '저 사람 아들 호모래' 하며 놀랐지만 지금은 조금씩 바뀌었어. 얼마 전에는 내 결혼식에 가도 되느냐고 물어보더래. (웃음)

김조광수 감독과의 대화스스로 혐오하는 데서 벗어나일단 자기 긍정부터 해야사회가 긍정해주길 바라면서왜 자기 스스로 긍정하지 않나캐나다선 성교육에 동성애 포함비슷한 고민 하는 사람들과나누고 교류하는 게 좋아

바람

요즘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동성애를 다루면서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어요. 얼마 전 감독님 결혼 발표 이후 자습시간에 자체적으로 동성결혼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어요. 친구들은 저를 보더니 "그 사람 아느냐"며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애는 키울 거냐"고 물어봤어요. 자기들은 결혼까지는 괜찮은데 입양은 아닌 거 같다며.

김조

그래도 전보다 아이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네. 커밍아웃이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킨다니까.(웃음)

바람

저 때문에 인식이 그나마 바뀐 것도 있는데 여전히 안 그런 경우도 많죠. 현재 담임선생님한테 비밀을 지켜달라며 커밍아웃했는데, 지금은 2학년 교사들 다 알게 됐어요.

상근

선생님 한 명이 알면 다 아는 거예요. 교무실을 같이 쓰면 모를 수가 없어. 다만, 티를 안 내는 것뿐이지.

김조

예전에 소위 '깨어 있다'는 교사들에게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 우연히 학생의 동성애 성향을 알게 된 교사는 부모랑 해결해야 한다고 아웃팅 시켜버렸지. 왜 남한테 말하면 안 되는지 설명했더니 그제야 '아, 그럴 수도 있겠다'며 이해하더라고. 인식 수준이 그 정도야.

특히 아웃팅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진짜 잘 알아야 해. 내가 커밍아웃을 한 거는 그 사람한테만 알아달라고 한 거지 남들한테 전하라는 게 아니거든. 특히 우리 사회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가득하잖아. 소수자의 입장에서 원치 않게 알려졌을 때 받을 상처나 고통을 생각해 봐야 해.

상근

감독님은 그럼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식하고 나서 바로 커밍아웃하신 거에요?

김조

응. 친구들한테 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누구한테 할까 주변을 찾다가 이성 친구한테 했어. 퀴어 영화(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 같이 보러 다니면서 눈치를 살피고 동성애에 대해 얘기해본 뒤 말했지. 사실 인터뷰 통해서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하는 건 도리어 쉬운데 부모님한테 하는 건 정말 어려워. 나도 부모님한테 제일 늦게 했어.

상근

전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여자 같다고 하고 저도 남자를 좋아하니까 여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고1 때 학교 클럽활동에서 첫사랑을 만나면서 그동안의 고민이 싹 사라졌어요. 내 가슴이 뛰는 걸 부정할 수가 없었던 거죠.

김조

그 친구가 혐오했어?

상근

처음엔 괜찮았는데 학교에 소문이 돌면서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어요. 그러다 지난해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그 친구를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친구가 자기를 부정하는 과정에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김조

어려서 잘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 캐나다나 독일 같은 경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성교육을 하면서 'LGBT'(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모두 지칭하는 단어)는 자기가 정하는 게 아니라 선천적이며 자연스러운 거라고 가르치니까 큰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그게 안 돼서 잘 모르니까 자신을 미워하거나 서로 혐오하게 되지.

휘류

저는 엊그제 학교 가기 전 엄마랑 뉴스를 보는데 '석호필'이라 불리는 외국배우 웬트워스 밀러가 커밍아웃한 내용이 나왔어요. 엄마가 평소 좋아했던 배우라 놀라면서 저더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데 놀라서 얼버무리면서도 떨렸어요.

김조

준비가 안 돼 있으니까 진짜 떨렸겠다.

휘류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특히 서랍에 숨겨둔 성소수자 잡지를 보고 물어보나 싶어서 더 걱정돼요.

김조

그렇게 갑작스럽게 물어봤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생각을 정리해둬. 괜히 위축되지 말고 엄마가 물어봐도 편하게 얘기해. 이를테면 석호필이 러시아 영화제 초청을 받았는데 반 동성애법을 만든 러시아의 태도 때문에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런 점은 좋더라고 얘기할 수 있지.

실제로 맷 데이먼은 마이클 더글러스와 동성애 영화를 찍고 칸영화제에 갔어. 사람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동성애자로 오해받은 적 없느냐고 물었지. 그는 바로 '그런 유치한 질문 하지 마라. 그런 질문 때문에 성소수자 친구들이 얼마나 상처받는지 아느냐, 그 질문에는 대답 안 하겠다'고 했대. 너무 멋있지. 우리의 경우라면 힘들었다고 민망해했을 텐데 말이지. 배우 브래드 핏도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기 전까지 성 소수자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결혼할 수 없다며 앤절리나 졸리랑 동거만 했었어.

휘류

전 여고니까 애들이랑 접촉이 상당히 많아요. 여자들은 스킨십이 자연스러워서 친하면 진짜 뽀뽀도 하거든요. 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티가 나니까 오히려 더 못하고 그래서 힘들어요. 이미 반에서도 의심을 하는 거 같아요.

상근

학교에서 이반검열('이반'은 동성애자 스스로, 이성연애자를 일반이라 하는 데 빗대 자신들을 일컫는 말)은 안 해요?

휘류

그런 걸 하는 학교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해요?

김조

나도 영화를 통해 알았는데 2000년대는 심했다고 하더라.

상근

고등학교 때 여고 다니는 친구들한테 들었는데, 짧은 머리 하면 불려가고 편지 뺏어서 검사하고 손잡으면 벌점 주고 뭐 그랬다던대. 특히 사립여고 중 미션스쿨이 가장 심했대요.

바람

동성애가 이슈화되면서 혹시나 나도 까발려질까 봐 불안해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예요. 제 주변에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저한테만 얘기한 애들이 있어요.

상근

그나마 여기 모인 친구들은 밖으로 나오는 성격이라 운이 좋은 거죠.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애들은 인터넷 찾아보며 안 좋은 인식만 생기게 되고 자기를 긍정하는 게 더 힘들어져요.

직접 모임에 나오기 힘들다면 청소년 성소수자모임 '라틴'이나 관련 커뮤니티에 들어가 자료나 책을 먼저 읽어보세요. 자기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걸 계속 환기했으면 해요. 그렇지 않으며 서른, 마흔이 돼서도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김조

지난날 내가 왜 스스로를 혐오했나 생각해보니 그때 동성애자는 아무나 만나서 아무 장소에서 즐기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어. 게이는 문란하고 바에서 술 판다는 것 말고는 아는 정보가 없어서 스스로를 혐오했어. 하지만 자기를 게이라 부르고 즐거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인권운동도 하고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사는 이들을 보면서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

청소년들은 일단 자기 긍정을 해야 해. 이건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부분이니까. 사회가 긍정해주길 바라면서 왜 자기 스스로는 긍정하지 않지?

그리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커뮤니티 활동하면서 자기랑 비슷한 고민 하는 사람들이랑 나누고 교류하는 게 좋아. 그래서 결혼 축의금으로 LGBT센터를 만들 계획인데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청소년 대상 상담센터야. 청소년 성소수자 부모들도 함께 상담을 진행할 거야. 내 후배들은 나처럼 스스로 혐오하는 시간을 아예 안 갖거나 적게 가졌으면 해. 여러분도 자기 삶을 당당하게 즐기면서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글·사진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1997년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으로 출발해 1998년 단체명을 변경. 특히 2009년부터 청소년자긍심팀을 구성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좀더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 성별 정체성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상담지원.

청소년 성소수자 커뮤니티. 라틴어 'Rainbow Teenager'

의 줄임말. 청소년 성소수자의 권리와 문화기여를 목적으로 스터디 모임과 퀴어퍼레이드 참가 등 다양한 활동 진행.

1994년 결성된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단체.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활동. 커밍아웃 인터뷰 100인 프로젝트,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 사업, 성소수자 인권지지 프로젝트 등 진행.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한 교육활동,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 구축과 서적의 기획 및 출간. 또한 성적소수자의 인권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법 개정운동과 가족 상담 등을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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