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 학생 45% "자살 생각했다"

이서화 기자 2013. 4. 22.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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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언어폭력 가장 심각피해·가해율 소폭 감소에도 체감하는 고통은 더 심해져

지난해 중학교 3학년이던 ㄱ군은 같은 반 친구 ㄴ군의 언어폭력에 시달리다 정신적 충격으로 현재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ㄴ군은 '미운 놈 때리기'란 스마트폰 게임 애플리케이션에 ㄱ군의 사진을 합성한 뒤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을 들어보이며 "직접 때리진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널 때리고 싶다"고 괴롭혔다. ㄱ군은 수차례 "하지 말라"고 했지만 ㄴ군은 "내 휴대폰으로 내가 게임을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막무가내였다. 참다 못한 ㄱ군의 신고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려 ㄴ군이 전학을 갔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탓에 자주 마주쳤고, "나대지 말라"는 등 ㄴ군의 언어폭력은 계속됐다.

초등학교 6학년 ㄷ양은 지난해 자살을 몇 차례 시도했다. 반 친구들이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ㄷ양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5명이 연달아 ㄷ양을 뒤에서 살짝 치고 지나가거나, 지우개 가루를 ㄷ양의 머리에 뿌리곤 "미안, 실수"라며 킥킥거렸다. 실수라는 말에 대꾸하기도 애매하고 교사에게 말해도 아이들이 발뺌해 속수무책이었다. ㄷ양의 부모가 학교 측에 문제 해결을 요구해도 "증거가 없다"며 가해학생들의 서면사과 조치만 취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은 22일 '2012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전국 16개 시·도 초등 4학년~고교 2학년 학생 553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 설문을 진행했다. 청예단은 2001년부터 매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사 결과 지난해 학교폭력 피해율(12.0%)과 가해율(12.6%)은 각각 전년도의 18.3%, 15.7%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피해학생들 중 자살을 생각했다는 비율은 31.4%에서 44.7%로 크게 늘었다. 피해학생 중 4~5명은 자살까지 생각한 것이다.

학교폭력 피해 후 고통을 느꼈다는 응답률도 2011년 33.5%에서 지난해 49.3%로 늘었다. 청예단 관계자는 "학교폭력이 양적으론 줄었지만 학생들이 체감하는 질적인 부분은 더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저연령화도 두드러졌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 1264명 중 초등 저학년(1~3학년) 때 처음 학교폭력을 겪은 학생은 전체의 30.5%로 2011년 26.7%에 비해 증가했다. 초등 고학년(4~6학년) 때 처음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비율도 전년도 46.2%에서 47.8%로 늘어났다.

학교폭력 유형으로는 보이지 않는 '언어폭력'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욕설과 모욕적인 말이 27.3%로 가장 많았고 폭행이 18.0%, 협박이나 위협이 13.9%, 괴롭힘 13.2%, 집단 따돌림 12.5%, 돈이나 물건 갈취 7.6%, 사이버 폭력 4.5% 순이었다. 특히 학교폭력 중 사이버 폭력이 가장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2011년 1.8%에서 2012년 4.7%로 2배 이상 늘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학교폭력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음을 드러냈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화된 이후 교육당국과 경찰의 대책이 쏟아졌지만 상당수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폭력을 당하고도 아무런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학교폭력 피해학생 중 33.8%가 아무런 도움도 요청하지 않았으며 부모나 교사 등에게 도움을 요청한 학생 중 41.8%는 '도움이 효과가 없었다'고 답했다.

< 이서화 기자 tingc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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