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싫었던 한국, 이젠 떠나기 아쉬워요"

맛있는교육 2012. 11. 2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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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국 유학기② 사메르 샘훈(한양대 기계공학과 4)-아버지 강요에 억지로 한국 유학 와-한국말 서툴러 교수님께 반말 하기도

"처음엔 정말 오기 싫었어요.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유럽 쪽 국가로 유학 갈 생각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무조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일 때문에 아버지와 많이 싸웠어요."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사메르 샘훈(Samer Samhoun, 22, 레바논)씨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던 당시 생각만 하면 지금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레바논 소재 프랑스계 국제학교 출신인 그는 당초 고교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졸업이 가까워오자, 아버지가 돌연 한국행을 추천했다.

사업가인 그의 아버지는 아시아 경제권의 성장과 함께 한국과 중동 간 기업 교류가 활발해지리란 점을 일찌감치 예상했다. 중국에서 먼저 유학 생활을 시작한 누나의 사례는 그 결정에 확신을 더했다. 결국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한 샘훈씨는 "긴 여행 다녀오는 셈 친다"는 생각으로 지난 2007년 고교 졸업 직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여러 차례 '곤욕'

한국 유학 생활은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국제학교 출신으로 영어와 불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그에게도 한국어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한국에 와서 첫 8개월간은 한양대 한국어학당에서 어학 연수를 받았어요. 연수를 마치고 학교에 입학해 레벨 테스트를 받았는데 시험지를 본 순간 '아, 포기해야겠구나' 싶더라고요."(웃음)

문제가 요구하는 걸 제대로 파악할 수조차 없었던 그는 첫 번째 레벨 테스트에서 '낙제'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들었다. 결국 기초 과목부터 재수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답답해 죽겠더라고요. 실제로 수학이나 물리 같은 이과 과목은 한국이나 레바논이나 엇비슷해요. 다 아는 내용인데 한국어를 몰라 문제를 못 푸니 죽을 노릇이었죠. 고교생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서툰 우리말 실력 때문에 난감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한번은 존댓말과 반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공 교수에게 "야, 이건 뭐야?"라고 반말로 질문, 동기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다. "친구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군요. 제 경우, 존댓말부터 배운 후 반말을 익혔거든요. 막상 써보니 (길이가 짧은) 반말이 편하더라고요. 은연 중 '반말=편한 말'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외국인에게 유독 폐쇄적인 한국인 '서운'

말이 안 통하니 학교 생활도 쉽지 않았다. 수강신청 절차와 필수 이수 과목 개념조차 낯설기만 했다. 프랑스식 교육에 익숙한 그에게 '학생이 수강할 과목을 직접 고르는' 한국 대학 방식이 친숙할 리 없었다.

"2학년 마칠 때까지 '재밌어 보이는' 교양 과목만 들었어요. 별도 수강 신청 없이도 배정되는 전공 필수 과목만 겨우 챙겨 들었죠. 2학년 끝날 때 쯤 사귄 친구가 제 수강 신청 목록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너 이러다가 졸업 못 한다'고 알려주더군요."

그가 신입생일 때만 해도 눈에 띄는 외국인 유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학교 측도 유학생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전담 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3학년 올라가서야 매 학기 20학점 이상씩 수강하는 한편, 계절학기 과목까지 꼬박꼬박 챙겨 들으며 그간 부족한 학점을 채워나갔다.

샘훈씨는 "그래도 요즘 해외 유학생에게 한국은 여러모로 우리 때보다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학교에서 유학생 멘토링 제도를 도입, 한국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 학교 생활은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이게 다 저 같은 초창기 유학생의 끈질긴 권리 요구 덕분 아닐까요? 요즘 유학생들은 제게 고마워해야 해요."(웃음)

샘훈씨는 한국 생활의 또 다른 어려움으로 '유독 외국인에게 높은 진입 장벽'을 꼽았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외국인을 대하는 시각이 꽤 폐쇄적이에요. 처음 대학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제게 먼저 다가오는 한국 학생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처음 일이 년간은 처지가 비슷한 유학생끼리 몰려 다녔어요."

아랍인에 대한 편견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제가 만난 한국인의 상당수가 '아랍인=석유 재벌'이라고 생각하더군요.(웃음) 물론 아랍인 중엔 부자도 있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많아요. 저만 해도 등록금 고지서 받을 때마다 '한국 대학 등록금은 미쳤어!'라고 불평하는 보통 사람이니까요."(웃음)

◇졸업 전 취업 확정... "한국은 기회의 땅"

샘훈씨는 "처음 몇 년간은 말도 못하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국 생활이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익숙해지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면서 한국 생활을 즐길 여유가 생긴 것.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예요. 세계 각국을 여행해봤지만 한국만큼 치안이 훌륭한 나라는 본 적이 없어요. 밤 10시에 술 마시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행위는 프랑스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탈'이죠." 이 밖에 완성도 높은 대중교통 시스템과 동네마다 자리 잡은 24시간 편의점, 할인마트 등도 샘훈씨가 꼽은 한국의 장점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학교 생활도 재밌어졌다. 교내 연구실에서 밤 새워가며 공부했던 경험조차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친구들과 밤새워 공부하고 수다 떨면서 서로 친해졌어요. 여행지에서 밤새며 노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성적표를 받아들들 때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나 잘 걸' 싶지만요."(웃음)

샘훈씨는 유학 생활 중 모델 활동을 병행했다. 모 외국계 잡지가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란 주제로 화보 촬영을 기획하며 아랍계 모델을 구했는데 친구 추천으로 우연히 데뷔한 것. 그때 일이 계기가 돼 이후 공중파 방송 광고 모델(현대캐피탈)로도 활동했다. "요즘은 공부하느라 바빠서 잘 안 해요. 가끔 재밌는 의뢰가 오면 생각해보고 수락하는 편이죠."

그는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대학을 졸업한다. 2012년 11월 현재 국내 모 건설회사에 지원, 합격 통지를 받은 상태. 이와 별도로 응시한 카이스트 경영전문대학원(KAIST MBA) 과정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 같아선 전공을 살려 MBA 과정을 밟고 싶어요. 하지만 올해 인턴십을 거쳐 프리랜서 자격으로 삼성 에스원 해외영업 파트에서 잠깐 일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실제로 중동으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 늘어 아랍권 인력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예요. 결과적으로 아버지 생각이 옳았던 거죠. 하지만 정들었던 학교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무척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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