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원, 눈물겨운 떡셔틀·상추셔틀

2012. 7. 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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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행정업무 보조하는 본업 외에도

떡·상추 돌리기, 보약 챙기기 등

교장·교감위한 허드렛일 다반사

"교육감 직접고용·호봉제 도입을"9월 투쟁안 93% 찬성으로 가결

"나 오늘 또 떡셔틀이야."

경기 ㄱ초등학교에서 교무보조로 일하는 ㄴ(31)씨가 메신저 창에 대고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직접 돌리지, 왜 나한테 시키냐고." 같은 학교의 한 교사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결혼 답례 떡을 돌려달라고 한 것이다. ㄴ씨는 얼른 대화창을 닫고 1층부터 5층까지 떡을 돌리러 다녔다. 이른바 '떡셔틀'이다.

학교는 인사철인 3월이 되면 축하 떡이 넘쳐난다. 경조사 떡도 수시로 있다. 이 떡들을 돌리는 일은 온전히 ㄴ씨 몫이다. ㄴ씨의 원래 업무는 하루 30~50개의 공문을 처리하고 교사 전출입, 보결 관련 행정처리를 하는 것이지만, 떡 돌리기와 낙엽 줍기, 하루 네차례 교장실에 차 가져가기, 교장의 보약 챙겨주기 같은 허드렛일도 모두 그의 몫이다.

경기 ㄷ초등학교의 교무행정사 ㄹ(42)씨는 '상추셔틀'의 기억을 털어놨다. "지난해 교감 선생님이 학교 텃밭에서 상추·가지·고추 등을 길렀어요. 어느 날 점심시간에 상추를 뜯어와서 씻어오라고 하시더니 방학하기 전까지 두달 동안 매일 상추 씻기를 시키셨어요."

교무보조와 교무행정사는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을 위해 교무실에 배치된 학교 안 비정규직 노동자다. 그러나 이들은 행정업무 외에 '비서' 일도 겸하고 있다. ㄹ씨는 "교장·교감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 가정부처럼 부리기도 해, 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국 1만1000여개 학교에는 교무보조를 비롯해 30여개 업종 13만명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8시간 동안 보통 1000인분이 넘는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급식실 조리사·조리원들의 경우,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주로 비정규직으로만 채용했다. 1년을 일했든 10년을 일했든 급여가 같다. 과학실험보조, 특수교육보조, 사서보조, 전문상담원, 통학차량보조, 전산보조 등 '보조'가 붙은 다른 모든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도 지켜지지 않는다. 매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주말엔 48시간 동안 빈 학교를 지키는 당직 기사들은 주당 128시간을 일하면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평균 73만원을 받는다. 교무보조 등 다른 학교 비정규직과 달리 용역회사에 고용된 이들에게 야근수당 등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정규교육'을 담당하는 비정규직도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영어 공교육 강화를 위해 뽑은 6600명(2011년 3월 현재)의 영어회화 전담 강사들이다. 이들은 한 학교에서 4년 이상 근무할 수 없고 1년에 두차례 평가를 통해 재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불안한 신분인데다, 초·중등교육법에서 '강사'로 규정하고 있어 부당해고 등을 당해도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보호도 받지 못한다.

3만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한 학교비정규직노조 연대회의는 19일 "이런 모든 차별의 철폐를 위해 시·도교육청의 학교 비정규직 직접 고용, 호봉제 도입을 요구한다"며 "우리 요구를 외면한다면 9월부터 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연대회의는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8일까지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투표율 84.9%, 찬성률 92.6%로 '9월 총력투쟁안'이 가결됐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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