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1201명, 5년간 '소득 1兆' 숨겼다

손진석 기자 2016. 9. 1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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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세무조사 결과 보니.. 10억원 벌면 3억은 신고 안해] 소득 감추려 차명계좌 사용하고 할인 내걸며 현금결제 유도 정작 현금영수증 발급은 꺼려

변호사 A씨는 개업 후 전관예우 관행 덕에 고액 사건을 여럿 수임했다. 그는 성공 보수를 친구나 처형 명의의 차명 계좌로 받아 소득을 12억원 줄였다. 또 자신이 고용한 새끼 변호사를 공동 사업자로 허위 등록하는 수법으로 수임료를 분산시켜 추가로 2억원의 소득을 탈루했다. 모두 14억원의 소득을 숨긴 A씨의 꼼수는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발각됐다. 성형외과 원장 B씨는 브로커를 통해 외국인 환자를 대거 유치한 뒤 성형수술비를 직원 명의 차명 계좌로 받아 28억원의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탈세(脫稅)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리지갑인 월급쟁이와 달리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대부분 소득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루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의 소득을 어느 정도 감추고 있을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단서가 될 만한 수치는 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17일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명재 의원(새누리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 사이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1201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은 소득의 30.5%를 신고하지 않고 누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직 1201명이 5년간 소득 1조원 감춰

세무조사를 받은 1201명은 모두 2조4461억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국세청 조사반원들이 뒤져 보니 1인당 8억9000만원씩 모두 1조731억원의 소득을 누락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체 소득 대비 세무조사 후 드러난 탈루 소득의 비율을 뜻하는 소득적출률이 평균 30.5%에 달했다. 10억원을 벌면 7억원만 신고하고 3억원은 숨겼다는 뜻이다. 국세청은 이들에 대해 1인당 4억5000만원씩 모두 5386억원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했다.

정부가 자영업자에 대한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를 강화하고 있지만,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드러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의 누락 소득 금액은 1인당 평균 8억2000만~9억7000만원 수준으로 큰 변화가 없다. 작년에는 7억2000만원으로 줄었지만,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병·의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영향이 컸다. 국세청 관계자는 "탈세 의심이 가는 고소득자를 골라내 조사를 실시한 결과"라며 "모든 개업 의사·변호사가 조사 대상자들만큼 거액을 벌어들이고 수억원씩 소득을 누락시키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세무조사 결과 드러난 소득까지 합쳐 1인당 29억3000만원의 연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드러날까봐 현금영수증 발급 꺼려

일부 고소득 전문직들의 탈세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성형외과 의사 C씨는 환자들로부터 현금 결제를 유도한 뒤 현찰로 들어온 수입 내역을 컴퓨터 본체에 저장하지 않고 전담 직원을 시켜 외장 디스크에만 저장하는 식으로 이중으로 매출을 관리했다가 적발됐다. 임플란트 전문 치과의사 D씨는 병원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아내가 전산 차트를 편집해서 소득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D씨 부부는 탈루한 소득으로 골드바와 부동산을 사들였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금으로 결제하면 할인해주겠다고 유혹하는 수법이 흔하다"고 했다.

특히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은 소득 노출을 막기 위해 현금영수증 발급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가 적발된 사례는 2011년에는 187건에 과태료가 1억7700만원이었지만, 2015년에는 698건에 11억51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10만원 이상의 거래 대금에 대해 고객이 요청하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야 하지만 이를 어기는 전문직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세청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소득적출률을 낮추고 숨긴 소득에 대한 세금 징수율을 높여야 한다"며 "현금영수증 발급 기준을 더 낮추거나 누락한 액수의 50%인 현금영수증 미발급 과태료를 더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세청 조사국 관계자는 "음성적 현금 거래를 통한 소득 탈루를 막기 위해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엄정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며 "자발적인 성실 신고를 늘리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소득적출률

실제 소득 중에서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고 누락한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실제로 10억원을 벌었는데 7억원만 벌었다고 신고했다가 세무조사를 통해 3억원의 누락 소득이 드러난 경우 소득적출률이 30%다. 소득적출률이 높을수록 탈세를 많이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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