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안은 재발의하자]③감정노동자보호법.."고객 갑질하면 업무 중단해도 된다"

정지원 기자 2016. 7. 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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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8월 발의 추진
지난해 인천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고객이 매장직원 두 명을 무릎꿇리고 폭언한 사건이 발생했다. / 이미지=김재일 기자

지난해 10월 인천 한 백화점 귀금속 매장에선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일가족이 매장 직원을 무릎 꿇리고 훈계해 빈축을 샀다. 2014년에는 부천 백화점 주차장에서 손님이 주차안내원을 폭행하고 무릎 꿇린 일이 발생했다. 2013년 모 대기업 상무는 덜 익은 라면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항공기 승무원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서비스업종 근로자를 상대로 한 소비자들의 갑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감정노동자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며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은 모두 16개다. 2012년 10월 심상정의원이 산재보상보험법안을 발의한 이후 의원 6명(심상정, 한명숙, 윤재옥, 이인영, 황주홍, 김기식)이 16개의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김기식 의원이 발의한 법안 이외의 11개 법안은 노동5법에 밀려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됐다.

김기식 전 의원이 발의한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은 지난 3월 통과됐다. 은행법, 보험업법, 상호저축은행법, 여신전문금융업법, 자본시장법​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에 국한돼 적용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노동계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20대 국회에서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성종 감정노동네트워크 실장은 “2014년 12월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단계까지 갔었다. 19대 마지막 회의할 때도 노동부가 모든 의원실에 전달했는데 노동시장 개혁법안 때문에 논의를 못한채 11개 법안이 자동 폐기됐다”며 “20대 국회에서 전범위의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제대로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고객 등의 무리한 요구, 업무와 관련된 폭행·폭언·괴롭힘 등으로 인해 근로자가 건강장해를 입을 경우 사업주의 보건조치의무화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대한 위험에 직면한 경우 업무수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자의 방어권 규정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성종 실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과 협력해 7월 내 감정노동자보호법 초안을 마무리하고 8월 중순 발의를 추진할 계획”이라며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됐던 법안들도 전면 재검토해 필요한 조항이 있는지 살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에만 있는 감정노동자 보호법

외국에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없다. 인권의식이 높다는 유럽도 마찬가지다.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는 앨리 러셀 혹실드 캘리포니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가 처음 만들어냈다. 그는 델타 항공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니 승무원들이 육체적 노동뿐만 아니라 감정이 섞인 노동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관련법을 추진한 사례는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사업(민단부문 유통업종 감정노동 실태조사, 공공부문 가이드라인 연구사업)을 진행한후 서울시 감정노동노동자 보호 조례를 제정했다. 노동부도 19대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 2 법률개정안을 내놨다. 이를 두고 한 노동 전문가는 "정부도 감정노동자 보호가 시급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서비스업종에서 감정노동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직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은 무릎을 꿇은 채 주문을 받는다. 콜센터직원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대면방식 서비스업이라서 폭언이 더욱 심하다”고 말했다.

◇'고객이 왕'이라는 기업이 고객 갑질 부추겨


19대 한명숙·심상정·이인영·장하나·김기식·윤재옥의원실, 국가인권위원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알바노조, 청년유니온 등 27개 기관에서 지난해 공동으로 조사한 감정노동자 의식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고객의 컴플레인으로 인해 ‘남들 앞에서 모욕주기’를 겪은 근로자는 전체의 41.4%, 임금성과등의 불이익을 당한 근로자는 28.8%, 상급자(팀장)등의 괴롭힘을 당한 근로자는 22.9%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감정노동자에게 과잉친절을 바라는 문화는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문화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기업도 책임에서 벗어나긴 어렵다고 비판한다. 과잉친절을 당연시하는 문화 이면에는 고객에게 90도로 인사하기, 고객은 왕이라는 식의 성과주의 경영전략이 깔려있는 탓이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1997년도부터 기업이 성과주의 경영전략을 썼다. 우리나라 업체들이 처음으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가면서 과도한 감정노동을 만들어냈다. 모 대기업은 1994년도에 처음으로 70도로 인사하기 매뉴얼을 시행했다. 그 외에도 6시그마 전략 등 마케팅 전략이 개발됐다”고 말했다.

현행법엔 과태료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규정이 있지만 정부의 의지가 부족해 실제 처벌사례는 미미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20대 국회에서 재발의할 감정노동자보호법안에는 실효성 있는 처벌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원 기자 yuan@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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