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애경 "화학물질은 원래 독성" 가습기 실험도 않고 궤변

CBS노컷뉴스 김효은 기자 입력 2016. 5. 2. 06:03 수정 2016. 5. 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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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희석하지 않으면 큰 독성" 사례 들어 민사재판에 보고서 제출
A씨가 2006년 구입한 애경 가습기메이트 겉면에 '천연 솔잎향의 산림욕 효과'라고 적혀 있다. A씨는 2008년 3살 난 아들이 폐질환을 앓다 숨지자 차마 살균제 통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보관해오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A씨 제공)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검찰 수사망에서 빠져나간 애경이 독성 성분의 시험 조건을 왜곡한 정황이 있는 보고서를 민사재판에 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애경은 또 "화학물질은 원래 고농도로 사용하면 독성이 있다", "살균제에 세균을 죽이는 성분이 포함되지 않을 방법은 없다"는 등의 책임 회피성 주장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2일 CBS노컷뉴스 확인 결과 SK케미칼이 제조해 애경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의 피해자들이 서울중앙지법에 낸 민사소송에서 애경 측은 SK케미칼이 2011년 10월 연구기관 H사에 의뢰한 '노출 평가 시험'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애경 가습기메이트의 주성분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때문에 폐질환 등이 발생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H사는 실제 가정집과 유사한 환경에서 가습기를 틀었을 때 살균제의 농도에 따라 공기 중 노출 정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했다. 하지만, H사는 살균제의 최대 노출치를 권장 사용량의 4배로 한정했다.

애경 측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수돗물 4리터에 가습기메이트 최대 권장 사용량인 20밀리리터를 사용했더니 공기 중 CMIT·MIT 농도가 0.005mg/m³이었다"며 "이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유해성 기준인 0.34mg/m³보다 66배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기 중 노출 시험도 동물 독성 실험과 마찬가지로 권장 사용량을 최소한 10배까지는 설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임종한 인하대 의과대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인체에 대한 안전성을 보장하려면 노출치를 최소한 10배까지는 시험해봐야 한다"면서 "그렇게 해서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야만 사람이 실제 사용했을 때 어느 정도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경 측은 '왜곡' 논란이 있는 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모자라 "화학물질이라는 것은 원래 어느 것이나 고농도로 사용하면 독성이 있는 것"이라고 변론하기까지 했다. 소비자가 권장 사용량을 제대로 지키면 살균제 제품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애경 측은 "우리가 흔히 마시는 술에 포함돼 있는 에탄올도 만일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마시면 식도와 위벽을 자극해 큰 독성을 나타낸다"는 사례를 들었다.

또 연기를 흡입하는 담배의 본질적인 특성상 니코틴과 타르의 체내 흡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판례를 언급하면서 "세균을 죽이는 것이 가습기 살균제의 본질적 특성인 이상 살균 성분 자체가 포함되지 않을 방법은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애경은 "방향제와 향수 등의 용매로 사용되는 에탄올과 액체 모기향의 주성분인 프랄레트린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도 (해당 물질을) 흡입하지 말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강조했다.

살균제 피해자들이 CMIT·MIT의 유해성을 경고한 외국 화학업체의 MSDS를 제시하고 나서자 이를 반박하기 위한 증거로 살충 성분인 프랄레트린의 사례를 갖다붙인 것이다.

특히 애경은 가습기메이트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상 안전인증대상공산품 등이 아니다'는 이유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제품검사를 별도로 진행하지 않은 채 살균제를 시중에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애초에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살균제를 제조·판매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사용해선 안 될 물질을 사용해놓고 '원래 모든 화학물질은 독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애경은 검찰 수사선상에서 빠져있다. 2012년 2월 질병관리본부가 동물 흡입 실험 결과 옥시레킷벤키저 살균제 등의 주성분인 PHMG·PGH와는 달리 CMIT·MIT에서는 폐섬유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 2012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의 살균제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표시한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는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시정조치를 내렸음에도 애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사실상 애경 측에 '면죄부'를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애경은 변론에서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는 폐질환이 가습기메이트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는 논리를 거듭 펴고 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애경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하다 사망한 피해자만 23명, 1·2등급 피해자는 48명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2012년 9월 CMIT·MIT를 유독물로 지정하면서 "흡입하면 매우 유독하다"고 밝혔다. 또 최근에는 EPA 보고서를 통해 문제의 성분이 미국에서는 농약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앞서 EPA는 1998년 'MIT 유해성 평가보고서'에서 독성을 경고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옥시 뿐 아니라 애경도 함께 수사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가습기메이트와 옥시 살균제를 동시에 사용하다 두 돌도 안 된 아들을 잃은 A씨는 "권장 사용량대로 수돗물 2리터에 가습기메이트 10밀리리터를 넣었는데 아이가 호흡곤란을 겪다 결국 사망했다"며 "애경은 CMIT·MIT 성분 표시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는 "다른 제조사들처럼 공평하게 다같이 조사해야지 애경에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CBS노컷뉴스 김효은 기자] afric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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