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에 무너지는 기업투명성(상)] "기업이 밥줄 쥐고 있는데 쓴소리는 무슨".. 눈치보는 회계·신평사

강재웅 2016. 4. 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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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역할 못하는 자본시장 파수꾼.. 갑질하는 기업들증권사가 목표주가 내리자.. 해당 기업 "회사탐방 금지"감사인도 3년마다 교체회계·신용평가 '구멍'가격·보수 기업이 결정.. 눈치껏 잘해야 일감 따내최저감사보수 법제화 절실

제역할 못하는 자본시장 파수꾼.. 갑질하는 기업들
증권사가 목표주가 내리자.. 해당 기업 "회사탐방 금지"
감사인도 3년마다 교체
회계·신용평가 '구멍'
가격·보수 기업이 결정.. 눈치껏 잘해야 일감 따내
최저감사보수 법제화 절실

(기업) 눈치를 전혀 안 본다고는 할 수 없다. 밥줄과 직결돼 있는데 어떻게 쓴소리만 쓸 수 있겠나." (회계법인 관계자)

"무리한 범위가 아닌 이상 기업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안된다'라고 하면 경쟁사로 갈텐데 남 좋은 일 시킬 순 없는 것 아니겠느냐." (신용평가사 관계자)


갑을관계가 기업투명성을 좀먹고 있다. 소위 말하는 기업의 '갑'질은 없지만 '을'의 입장에서 기업 눈치를 보며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신용평가사 고위관계자는 "말을 예쁘게 안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발행사가 신평사를 선택하는 구조"라면서 "눈치껏 잘해준다는 뉘앙스를 발행사에 풍겨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의도 증권가는 하나투어에 대한 부정적 내용이 담긴 기업분석보고서 하나로 떠들썩했다. 이 리포트는 "면세점 사업이 실적 증가에 기여하기까지 애초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대폭 내렸다. 하나투어는 다음날 해당 보고서를 쓴 연구원에게 회사 탐방을 금지하겠다는 식의 통보를 전해왔다. 이후 급기야 국내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합리적 비판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취지의 공동성명서를 통해 유감을 밝혔다.

■일감 수주에 위협받는 독립성

회계사들은 3년에 한번씩 바뀌는 감사인 교체시기에 민감하다. 당국은 한 회계법인이 특정 기업의 감사를 장기간 맡으면 감사인과 피감사인 사이에 담합이 발생할 수 있어 3년이 넘으면 교체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부실을 눈감아주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업계 얘기다.

C회계법인 임원은 "회계법인은 감사인이면서 동시에 기업으로부터 일감을 따내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다"며 "같은 기업에 감사를 재연장받을 수 있으려면 (해당 기업에) 협조를 잘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강성원 회장은 "기업이 감사인을 정하는 자유선임제하에서 공인회계사는 '을'의 위치"라며 "이로 인해 회계감사를 공정하게 진행하지 못할 수 있고 저가수임이라는 악조건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신용평가사는 원래 내부통제로 발행사에 대해 신평사가 기업등급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의뢰받기 전 공식적인 등급평가 발표는 금물로, 이는 평가사 독립성을 위해 정해진 규율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발행사가 3사에 돌아가면서 은연중 어느 등급이 나올지 떠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신평사들 역시 장사를 해야 하니 구색을 맞춰주는 분위기다.

신용평가사 한 고위급 관계자는 "계약 수임을 받고 등급 이야기를 공언하면 안된다"면서도 "혹시나 발행사가 다른 신평사로 갈아탈 수 있으니 그들의(기업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외부감사인 자유선임제 폐지해야

우리나라 회계감사는 강제법률에 의한 의무법률행위이다. 그러나 가격은 완전히 사적자율에 맡겨져 있으며 기업이 전적으로 자유선임하고 가격.보수도 기업이 무제한 자유결정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격도 대부분 최저가선으로 결정되는 형편이다. 서비스가격과 시간 값에 대한 개념이 약한 현실에서 선진국의 10~20% 이하 수준의 헐값 감사보수가 형성돼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신뢰성 있는 회계감사는 물론 분식회계를 숨겨놓은 기업에 대해 소신 있는 반대의견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외부감사인의 자유선임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적어도 이해관계자가 불특정다수로 많은 상장법인의 경우만이라도 강제지정으로 전환돼야 하고, 여기에 수반해 기업과 감사인 간의 가격.보수 분쟁을 없애기 위해 최저감사보수 등도 강제법규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신용평가시장에서는 의무화돼 있는 복수평가가 문제시되고 있다. 두 곳 이상의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평가를 받도록 제도화돼 있지만 발행사의 등급쇼핑이나 등급거품, 신용평가사 평가수수료 담합 등이 해결되지 않아 폐지 논의가 불거지고 있다.

이뿐 아니라 신용평가사에 기업은 명백한 '갑'이다. 기업이 신용등급을 받기 위한 신용평가 약정서에 서명할 때도 기업은 '갑', 신평사는 '을'로 표기한다.

거래과정에서도 유착관계가 생긴다. 장기거래 조건으로 사실상 '봐주기'가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 신용평가사 상무는 "발행사가 신평사를 선택하는 구조이다 보니 갑을관계가 정해져 있다"며 "눈치껏 기업에 잘해준다는 뉘앙스를 발행사에 풍겨야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고위관계자도 "몇 해 전 당국에선 공적기관이 지정한 신용평가사에서 기업들이 신용평가를 받도록 하고, 수수료 부과 체계도 전면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현재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kjw@fnnews.com 강재웅 고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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