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10조 이익에도 '전기료 인하' 어려운 이유

전병역 기자 입력 2016. 4. 9. 17:58 수정 2016. 4. 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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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택·산업용 모두 OECD 평균보다 낮아… “싸게 쓰는 시대 끝났다” 인식할 때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2014년 12월 전남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위험성을 경고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원전은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 그린피스 제공

가계나 기업이나 모두 전기요금을 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른바 ‘전기료 폭탄’을 맞았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지난여름이나 겨울 20만원 안팎의 전기요금을 냈다는 가구도 더러 있다. 하지만 국내 에너지 체계를 감안하면 전기료 인하 요구는 ‘다리부터 뻗고 누울 자리를 만들어달라’는 억지에 가깝다.

먼저 주택용 전기를 보자. 한 인터넷 모임방에 공개된 ㄱ씨 사연은 이렇다. 2014년 12월에 17만원이 나온 전기료가 다음 달엔 24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했다. 거실에 전기장판, 안방 침대와 작은 방에도 전기장판 하나씩, 10년 넘은 냉장고, 전기압력밥솥 등등. 사용량은 600kwh대였다. 3개월 동안 전기료만 50만원이 넘었다고 했다.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ㄴ씨는 지난해 여름 에어컨을 계속 켜뒀다. 아이들이 덥다며 실내온도 25~26도를 유지했다. 그 결과 사용량 600kwh를 넘기며 전기료 17만5000원이 고지서에 찍혀 왔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트는 집과 선풍기, 부채질로 인내하는 집의 전기료 차이를 별로 없게 하는 건 분명 합당치 않다. 마찬가지로 한겨울에 두꺼운 옷과 실내화를 착용하는 집과 반팔, 반바지에 맨발로 지내는 집의 전기료가 크게 차이나는 건 당연하다.

직접적인 논란 대상은 누진제다. 주택용 전기수요는 2000년대 들어서 정체단계에 들어섰다. 비결은 누진제로 평가된다. 전체 6단계 중에 전기요금 누진제가 크게 적용받기 시작하는 것은 4구간(301~400kwh 사용)부터라고 할 수 있다. 요금으로는 4만7260원부터 최대 7만8850원까지다. 4구간은 전체 가구의 약 25%다. 5~6구간인 가구는 전체의 8% 정도에 그친다. 즉 많이 쓰는 가구를 위해 누진제를 낮출 경우 사회적 부담은 결국 3구간(최고 4만4390원) 이하 가구들이 더 나눠 져야 한다.

이 요금체계는 2013년 11월 21일부터 5.4% 인상된 것이다. 원래대로는 ㄴ씨의 전기료가 21만원 넘게 나와야 했다. 그나마 정부가 지난해 7~9월 요금을 한시적으로 내려줘 17만원대로 줄어든 사실은 알고 있을까.

정부는 당시 에어컨 쓰는 가구를 위해 누진제 4구간을 3구간 요금으로 적용토록 낮춰줬다. 4인가구 평균 전력소비량(월 366kwh)이 누진단계 4구간에 위치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4인가구 월평균 전기료가 8368원(14%) 절감되며 전체 647만 가구에서 약 13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에너지시민회의는 “이 조치로 4구간의 최고 요금이 6만8320원으로 13% 낮아졌다”며 “전기 소비를 늘리도록 하는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놓고는 집단소송까지 제기됐다. ‘산업용 특혜 때문에 주택용이 덤터기를 쓴다’는 논리를 편다. 국내 1인당 전기 소비는 급증해 왔다. 이는 주택용보다 산업용 전기수요가 치솟은 때문이다. 국내 전기의 52%는 제조업, 27%는 서비스업 등 82%를 산업용으로 쓰며, 가정용은 13%다.

기업들은 다른 소리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을 앞세운 산업계는 3월 산업용 전기료 인하와 요금체계 개편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정부에 냈다. “장기불황 여파로 국내 기업이 어려운 만큼 2005년 이후 10년간 약 76%나 인상된 전기료를 낮춰 원가절감을 도와달라.” 그동안 추세만 보면 산업용 전기료가 가파르게 상승해온 건 맞다.

산업계가 요금 인하를 요구하며 눈독 들이는 건 바로 한전의 ‘여윳돈’이다. 한전은 2015년 영업이익으로 사상 최대인 11조3000억원을 거뒀다.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 원가부담이 줄어든 덕분이다. 한전은 영업외 이익도 10조원대를 거뒀다. 현대자동차그룹에 강남 삼성동 한전부지 매각 등 부동산을 팔아서 벌었다. ‘웬 떡이냐’며 가계나 기업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빚잔치를 즐기면 그만일까.

한전 조기형 홍보팀장은 “5년 연속 적자를 보다 최근 원가가 낮아져 이익을 냈다고 전기료를 내려달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산업용 전기료는 그동안 산업계가 혜택을 받아왔다가 정상화하는 수준이다”라고 반박했다. 한전의 빚은 개별기준으로 52조원, 연결기준으로는 107조원이나 된다. 그동안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 탓에 쌓인 원가부족액이 2008~13년 31조원에 이른다. 한전 측은 “온실가스 감축비용과 신재생에너지 사업, 송·배전망 확충에 필요한 요금인상 요인이 산적해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우태희 제2차관은 4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기요금 인하를 검토한 바 없다. 오히려 투자해야 할 시점”이라며 “또 전반적인 누진제도 개편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세계적으로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3년 한국의 산업용 전기료를 100이라면 자원이 풍부한 미국(74)과 노르웨이(75) 정도가 더 낮고, 일본은 199로 약 2배, 독일 184, 이탈리아 350으로 3.5배나 된다. OECD 평균은 134다.

국내의 산업용 대비 주택용 전기료 비중은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낮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집계 결과 한국의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료 차이는 22%다. OECD 회원국 평균은 29%다. 미국은 44%, 독일은 56%, 노르웨이는 58%, 프랑스는 34%씩 차이가 난다. 오히려 산업용을 내리는 게 아니라 주택용 요금이 올라갈 여지가 더 큰 게 현실이다.

그동안 정부와 한전의 대응에도 문제는 있다. 부채 107조원을 갚기도 바쁜데 배당금부터 늘렸다. 한전은 1조9900억원을 배당했다. 정부와 산업은행이 절반을, 외국인 주주들이 31%인 6200억원을 챙겼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전기요금 내리기 차원을 넘어 수요·공급 관리가 일차적인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력예비율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해 필요 이상의 과도한 발전설비를 늘렸고, 그에 따른 비용이 전기료 부담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됐다. 전력예비율은 2011년 1월 5.5%에서 2015년 16.3%로 대폭 높아졌다. 전력수요는 1990년대는 연평균 9.9% 정도로 가파르게 늘다가 2000년대 들어 6.1%, 2011~2015년은 2.2% 증가하는 데 머물고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9·15 대정전(블랙아웃) 사태 이후 잘못된 정책 대응 탓으로 보인다. 2007년 말 21조6000억원이던 한전 부채가 이명박 정부 때 발전소를 집중적으로 늘려 2012년 말 95조원으로 급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최근 국내외 전력수급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2011년 대정전 위기 이후 전력 과잉공급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력 소비가 적은 봄·가을의 설비예비율은 40%를 넘어 발전설비가 절반 가까이가 쉬는 꼴이다.

가정의 경우 보일러를 적게 돌리는 대신 전기 난방기로 대체하도록 낮은 심야전기료처럼 잘못된 정책을 폈다. 산업계도 철강업체가 전기로를 증설하는 등 낮은 전기료에 기댄 행태가 늘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총조사를 보면 2001~10년 제조업 전기 소비량이 평균 64% 늘었다. 특히 가열·건조용 전기 소비가 약 4배 급증했다. 유류·가스로 열에너지를 얻지 않고 전기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느라 연간 1조원 넘게 낭비된다는 연구도 있다.

정연제 에너지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여 국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서 발전비용을 고려해 요금을 조정하는 큰 틀을 짜야 할 때”라며 “주택용과 농사용은 아직 원가의 89%, 35% 수준이어서 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주택용은 3~4단계 누진제로 소비자 부담이 과도하게 커진 면도 있어서 누진제는 완화하되, 단가를 올리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가계나 기업이나 싸게 써대던 전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독일에서 보듯 신재생에너지 비용을 더 치러야 한다. 이런 전체적인 틀을 고려하기 전에 내 전기료부터 내려달라는 건 이기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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