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역사는 핑계를 기록하지 않는다

박정훈 논설위원 2016. 2. 5.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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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평가받을 성과 미미.. 집권 3년간 경제 내리막길 대표 브랜드 '창조경제'조차 '창조 죽이기'만 인상에 남겨 朴대통령은 "10년 뒤가 걱정" 국민은 그런 대통령이 더 걱정

객관적 팩트로 말하자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은 결코 합격점을 넘기 힘들다. 집권 3년간 경제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수출과 제조업이 죽 쑤고 내수(內需)는 싸늘해졌으며, 국가 부채와 가계 빚은 위험 수위로 부풀었다. 상인과 자영업자들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청년들이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을 외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래도 박근혜 경제팀은 변명거리가 많다. 외부 여건이 안 좋다는 것이 첫 번째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6%로 추락하자 경제 관료들은 글로벌 환경 탓부터 댔다. 중국 쇼크와 저유가로 수출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변명이 지나친 나머지 자화자찬까지 나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경쟁국과 비교하면 선전한 편"이라고 했다. 전임 최경환 전 부총리는 "악조건 속에서 선방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글로벌 환경이 그렇게 나빴다는 지난해에도 세계의 많은 나라가 우리보다 빨리 성장했다. 우리의 성장률은 전 세계 평균 성장률 3.1%에 훨씬 못 미친다. 작년뿐 아니다. 박근혜 정부 3년 내내 세계 평균 성장률을 밑돌았다. 남들보다 빨리 성장해도 모자랄 판에 중간조차도 못한 것이다.

박근혜 경제팀은 스스로 내건 목표 달성에도 실패했다. 3년 동안 매년 세운 성장률 목표치를 단 한 번도 넘어선 적이 없다. 지난해엔 3.8% 성장하겠다고 의욕을 부렸지만 2%대의 처참한 결과로 끝났다. 정부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핑계도 대고 있다. 그러나 쉽게 잡을 수 있었던 전염병의 초기 제압에 실패한 게 이 정부다. 정부의 무능함이 사태를 확산시켰고, 경제를 더 얼어붙게 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어느 한때 경제 환경이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가 독특한 것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남 탓'에 능하다는 것이다. 저성장은 환경 탓, 경제 활력이 꺼진 것은 국회 탓이라 하며 책임을 돌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작년 9월 이후 20여 차례에 걸쳐 국회를 공개 비판했다. 국회와 야당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며 반복해서 공격했다. 각료들도 법만 통과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말하고 다녔다.

국회와의 관계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불운한 것이 사실이다. 사상 최고로 무책임하다는 국회에 발목 잡혀 생고생하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선 답답하기 그지없는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절실하다면서도 야당을 설득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정부 뜻대로 '국회 탓 마케팅'은 성공을 거둔 듯하다. 국회가 경제·민생 법안을 처리하지 않아 경제가 망가진다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원샷법'과 노동개혁법 등이 꼭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법들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명백한 과장 광고다. 원샷법이 생긴다고 당장 기업이 살아나진 않고, 노동법이 통과된다고 일자리가 무더기로 생기진 않는다. 이런 법들은 약(藥)으로 치면 건강 보조제다. 중장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금세 원기를 가져다줄 수는 없다. 법이 없어서 3년간 경제가 죽 쑤었다는 변명은 성립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원샷법이 통과됐으니 핑곗거리도 하나 사라지게 됐다. 이젠 박근혜 경제팀이 책임을 미룰 시간도 없다. 남 탓하는 식으로는 남은 2년도 좋아질 수 없다. 역사는 변명과 핑계를 기록하지 않는다. 핑계 댄다고 국민이 봐주지도 않는다. 2년 뒤 임기를 마치면 박근혜 경제의 성적표는 온전히 결과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그동안 박근혜 경제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4대 개혁이다,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이다 나름 열심히는 했다. 그러나 그 결과 무엇이 좋아졌는지 실감 나는 게 없다. 일자리가 생기지도, 경기가 좋아지지도, 규제가 확 풀리지도 않았다. 국민 입장에선 먹고살기 더 힘들어졌다. 그런데 국회 탓, 환경 탓한다고 이해해 줄 리가 없다. 박근혜 정부로선 등골이 서늘해져야 정상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민과 역사 앞에서 어떤 결과물로 평가받을지 고민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대표 브랜드로 내세운 창조경제의 성과조차 초라하기만 하다. 지난 3년간 대한민국 경제에 어떤 창조적 혁신이 있었는지 아무리 더듬어 봐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도리어 온라인 중고차 경매 업체를 폐업시키는 식의 '창조경제 죽이기'가 더 기억에 남는다.

정부는 재벌까지 끌어들여 전국 17개 창조혁신센터를 세우고 요란하게 선전했다. 하지만 내실은 허망할 정도다. 이곳에서 이뤄지는 기업 지원 건수는 센터당 하루 평균 0.12건, 경영 상담은 0.7건에 불과하다. 이것으로 평가를 받을 셈인가.

박 대통령은 신년 인사회에서 "10년 뒤가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10년 뒤보다 먼저 두려워할 것은 2년 뒤 내려질 국민의 평가다. 당장 내일이 캄캄한 국민은 10년 뒤가 걱정된다는 대통령이 더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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