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타임즈, "독재자를 용서하는 한국인들"

뉴스프로 입력 2015. 12. 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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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을 경찰이 경호하는 저택에서 보내는 학살자… 그에게 어울리는 다른 단어 있나”

[미디어오늘 뉴스프로]

이 글은 미국 소재 비영리 외신번역전문 언론기관 뉴스프로의 번역 기사를 번역자의 양해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원문 주소는 여기입니다. https://thenewspro.org/?p=15867

한국인은 용서와 관용의 민족인가?

수백명의 자국민을 무참히 사살한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은 독재자를 예전에는 정치적 사면으로 그리고 지금은 무관심이라는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국인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20년이 되면 2억2천9백만 달러의 추징금을 못 받을 수도 있고, 84살의 고령임을 고려할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 독재자 전두환에게 보여주는 한국인들의 무관심에 경종을 울리는 기사를 LA 타임스가 지난 29일자로 보도했다.

신문은 독재자 박정희의 뒤를 이어 쿠데타로 대한민국을 독재의 수렁으로 더 깊이 묻어버렸고,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수백만달러를 자식들의 이름으로 은닉하였으며, 1980년 광주대학살 발포명령을 포함한 대통령으로서 저지른 악행 등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독재자 전두환이 지금은 조용하고 너무나도 살기좋은 동네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경호를 받으며 호위호식하는 삶을 비판했다.

독재자 전두환은 아직도 호화로운 주택에서 살면서 고가의 골프를 치러 다니고, 자식들을 통해 은닉한 재산의 일부가 한국정부로 귀속되고 추가 조사가 진행됨에도 여전히 돈이 없다고 항변하는 독재자 전두환의 모습 또한 보도했다.

신문은 자국민을 학살했던 독재자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한 한국인들의 인터뷰와 국민의 세금으로 독재자를 경호하는 한국의 모습, 독재자의 은닉 재산을 오히려 미국정부가 조사하여 한국정부에 반환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독재자를 강력히 비판하는 외국인의 인터뷰를 교차하여 보여줌으로써 한국사회의 이해할수 없는 모순된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LA타임스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lat.ms/1XCCqEp

 

 
 
 
 
 
 
 
 

South Korea’s ex-dictator Chun Doo-hwan tries to keep low profile in his twilight years

한국의 전 독재자 전두환이 노년기에 들어 세간의 이목을 피하려 하다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Chun Doo-hwan is arrested in 1995.

In one of the stately homes in this leafy part of town, a disgraced former president is living out his twilight years. Chun Doo-hwan was the face of the repressive government that led this country throughout much of the 1980s; these days he mostly stays behind the walls of his police-protected compound.

녹음이 우거진 서울의 한 동네에 있는 대저택에서 불명예를 안은 전직 대통령이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전두환은 1980년대의 대부분에 걸쳐 한국을 지배했던 탄압적 정부의 상징이었지만 요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경찰이 경호하는 저택 내에서 보낸다.

It’s no wonder that Chun, 84, came to this neighborhood, called Yeonhui, seeking seclusion. It has plenty of stand-alone houses in a country where most people live in apartments. With its narrow streets and abundant pine trees, it is also one of the calmer corners of the capital. On a recent afternoon, the streets around the compound had few cars or pedestrians, a rarity in this noisy, densely packed city of more than 10 million.

84세의 전두환이 은둔을 목적으로 연희동이라는 이름의 이 동네로 온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에서 연희동은 단독 주택이 많은 지역이다. 또한 좁은 골목길과 소나무가 많은 이곳은 서울에서 더욱 조용한 곳 중 하나다. 최근 한 오후, 그 주택 주변의 길은 차나 보행자가 거의 없이 1,0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시끄럽고 인구 밀도 높은 서울에서 매우 드문 모습을 보여주었다.

Nevertheless, Chun still finds himself in the headlines as officials in South Korea and the U.S. work to get back the millions of dollars he procured in kickbacks from major companies while he ruled from 1979 to 1988. This month, U.S. prosecutors returned to South Korea $1.1 million in seized assets connected to Chun. That amount is a drop in an ocean of ill-gotten spoils that Chun had amassed during his presidency.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임기였던 1979년부터 1988년 사이에 전두환이 대기업에서 뇌물을 받고 은닉한 수백만 달러를 환수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의 법무부가 공조하는 가운데 전두환은 여전히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달 미국 법무부는 전두환과 관련되어 압수된 자금 110만 달러를 한국에 반환했다. 그 금액은 전두환이 대통령 임기 중 부정하게 축적한 약탈품 중 극히 적은 액수다.

In 1996, a South Korean court found him guilty of having stashed away huge sums in slush funds and ordered him to pay back $229 million in criminal restitution. A task force dedicated to collecting the money was due to disband in 2013, but that year, the South Korean parliament extended its mandate until 2020.

한국 법원은 1996년 거액을 비자금으로 축적한 혐의로 전 씨를 유죄 판결하고 2억2천9백만 달러의 추징금 납부를 명했다. 추징금 환수를 책임지는 전담반은 본래 2013년 해산될 예정이었으나 같은 해 국회에서 그 권한을 2020년까지 연장했다.

Chun insists that his opulent digs don’t reflect his financial situation. A few years ago, with most of the fine still unpaid, he pleaded poverty, saying that he had less than $300 to his name. Given his lifestyle and the size of the fortune he amassed, that claim provoked ridicule. Political pop artist Lee Ha made a mocking mug shot of Chun, depicting him in prison garb holding a check for 290,000 Korean won, all the money he claimed to possess.

전두환은 자신의 호화로운 주택이 자기 재정 상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몇 년 전 추징금 대부분을 미납했을 당시 그는 가난을 호소하며 수중에 300달러도 채 안 되는 돈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의 생활 방식이나 축적한 재산의 규모를 고려할 때 이러한 주장은 조소를 유발할 뿐이었다. 팝아티스트 이하 씨는 전 씨가 죄수복을 입고 전재산이라 주장한 29만 원짜리 수표를 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상반신 포스터를 만들었다.

Chun is sometimes spotted at expensive golf courses, and in 2012, he was photographed at one of Seoul’s ritziest hotels during his granddaughter’s wedding.

전 씨는 종종 고가 골프장에서 목격됐고 2012년에는 서울 시내 최고급 호텔 중 한 곳에서 열린 손녀 결혼식에 참석한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In the summer of 2013, prosecutors raided Chun’s home, seizing cash, artwork and other valuables. They also searched properties owned by Chun’s son and daughter, on suspicion that he has concealed some of his assets in their names. (This month’s return by U.S. prosecutors included proceeds from a Newport Beach house Chun’s son had sold.)

검찰은 2013년 여름 전 씨의 자택을 급습, 현금과 미술품 등 금품을 압수했다. 또한 자녀들의 이름으로 재산을 은닉했을 가능성을 의심해 전 씨의 아들과 딸의 재산에 대한 조사 역시 착수했다. (전 씨 아들이 뉴포트 비치 연안의 자택을 매각해 얻은 이익 역시 美 검찰이 이번 달에 환수한 추징금에 포함됐다.)

Chun seized power in a coup after the 1979 assassination of dictator Park Chung-hee. It was a chaotic time, with South Korea’s economy booming but its politics still authoritarian. Contending that strict controls on civic and political rights were necessary to keep order, Chun cracked down on public gatherings and imprisoned dissidents, making him a feared leader.

전두환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그 당시 경제는 부흥하고 있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독재였던 혼란의 시기였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의 정치적 권익을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는 대중 집회를 진압하고 반대 세력을 투옥하며 공포의 지도자가 되었다.

He nonetheless enjoyed U.S. support for much of his rule. “Stability in Seoul was a central U.S. objective, at times an overriding one,” wrote Don Oberdorfer in “The Two Koreas,” a contemporary history. “American officials were leery of undermining Chun and thereby destabilizing the country with unpredictable results.”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자신의 통치 기간 대부분에 걸쳐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돈 오버도퍼는 “두 개의 한국”이라는 근현대사에서 “한국의 안정이 미국의 중요한 목표였고, 때로는 최우선의 목표였다”고 서술했다. 그는 “미국 관료들은 전 씨를 약화시켜 한국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부를까 봐 극도로 조심했다”고 기술했다.

In 1988 Chun gave in to public pressure and left office, paving the way for South Korea’s first democratic election. In doing so, he became the first South Korean president to give up office in a peaceful manner.

1988년 전두환은 민중의 압력을 받아 퇴진하며 한국의 첫 민주주의 선거를 위한 길을 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포기한 첫 번째 한국 대통령이 되었다.

Chun, though, is mainly remembered for presidential misdeeds, including the orchestration of the 1980 Gwangju massacre. He ordered troops to fire on student protesters in the southern city who were calling for him to step down. Hundreds were killed or injured.

그러나 전두환은 1980년 광주대학살 시행을 포함한 대통령으로서 저지른 악행으로 주로 기억된다. 그는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 시위대들에게 발포하도록 군에 명령을 내렸다. 수백 명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For his actions in Gwangju and the coup he led, Chun was sentenced to death in 1996. The following year he and Roh Tae-woo, another former military dictator, were pardoned and released from custody. Kim Young-sam, president at the time, said the pardons were intended to nurture national reconciliation.

광주에서 그가 저지른 행위와 그가 이끈 쿠데타 때문에 전두환은 1996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다음 해에 전 씨와 또 다른 전 군부 독재자 노태우는 사면을 받고 교도소에서 석방됐다.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은 사면은 국민적 화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To this day, news outlets on both sides of the country’s political divide are critical of Chun and his tenure.

오늘날까지도 정치적으로 양분된 국내 언론 매체 모두가 전 씨와 그의 재임 기간에 대해 비판적이다.

“It’s hard to find a good word for the butcher of Gwangju,” said Aidan Foster-Carter, honorary senior research fellow in modern Korea at Leeds University in England.

영국 리즈 대학교 근대 한국학 명예 선임연구원 에이든 포스터-카터는 “광주 학살자에게 어울리는 좋은 단어를 찾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Some South Koreans are less than thrilled that a former president who sent in the troops to attack his people now lives under police protection, with taxpayers footing the bill. Seoul Mayor Park Won-soon has spoken about dispensing with Chun’s police guard, but three officers continue to stand sentinel outside the gated compound, not in police uniform, but dressed head to toe in black, with no identifying insignia. They shoo away anyone who lingers too long in front of Chun’s place.

일부 한국인들은 자국민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던 전직 대통령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고 납세자들이 그 비용을 대고 있다는 사실에 그다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전 씨의 경찰 경비를 철수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세 명의 경찰관들이 경찰관 제복이 아니라 신분을 알 수 있는 표식도 없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출입문 밖에서 계속 보초를 서고 있다. 그들은 전 씨의 집 앞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는 사람들을 쫓아낸다.

When asked why no one is allowed to stand around or take photos, their only response is, “It’s policy.”

왜 주변에 서 있거나 사진 촬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그들의 유일한 답변은 “규칙이다”라는 것이다.

At a nearby store, one middle-aged woman shopping for flowers said of Chun, “He’s just another neighbor.”

근처 가게에서 꽃을 사는 한 중년의 여성은 전 씨에 대해 “그는 이웃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His name still seems to conjure anxiety in neighborhood residents old enough to have lived through his iron-fisted rule, when criticism could have landed one in jail. Another middle-aged woman, sweeping up leaves outside the gates of her home, giggled sheepishly when his name was mentioned. “He’s very old now,” she said.

전 씨의 이름은, 비판만 해도 감옥에 갇혔던 전 씨의 철권 통치시대를 살았던 세대의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안을 자아내는 듯하다. 자신의 집 앞에서 낙엽을 쓸고 있는 또 다른 중년 여성은 전 씨의 이름이 언급되자 겁먹은 듯 웃었다. 그 여성은 “그도 이젠 많이 늙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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