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정권, 손기정 선수에게도 빨간 줄..연좌제 고통"
손기정 외손자 "간첩단으로 엮으려다 말았지만 주홍글씨 남아"
손기정기념재단, 독일측에 손기정 우승 명패 국적 병기 요청키로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냄으로써 민족적 영웅이 된 고(故) 손기정 선수와 가족들이 1970년대 이후 상당기간 공안기관의 감시를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손 선수의 외손자이자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인 이준승(48)씨는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정권은) 손기정 선수에게도 빨간 줄을 그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는 재일교포 뭐만 대도 엮으면 엮는 시기였다"면서 "집안의 아픈 이야기이나 할아버지도 간첩단으로 엮일 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유학 중이었던 손기정 선생의 아들 손정인(72)씨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소개로 한 재일교포에게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이 교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쪽 사람들도 도와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1970년대만 해도 민단과 조총련 구분이 잘 안 돼 있었다"면서 "이분이 외삼촌에게 서울 시내 한 일간지 편집장에게 편지 전달을 부탁했고, 외삼촌은 할아버지를 통해 편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손 선생은 일본에 가는 길에 편집장이 쓴 답장을 전해주기도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를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으로 부풀리려 했으나 손 선생이 연루돼 있다는 것을 알고 수사를 중단했다는 것이 이씨의 증언이다.
이씨는 "외삼촌은 중앙정보부 분소에서 며칠간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지만 (중앙정보부는) 주홍글씨를 남겨뒀다"면서 "저희 집안에 '연좌제'가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촌은 일본 민단에서만 생활했고, 민단 중앙본부 국장으로 일하면서 1988년 서울 올림픽때 재일교포 모금으로 경기장을 짓는 등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했지만 주홍글씨는 지워지지 않았다"고 담담히 되새겼다.
그는 "제 개인적으로도 학사장교 임용에서 한 차례 이유없이 떨어진 적이 있다"면서 "할아버지가 현충원에 안장되실 때 영정을 들면서 '음지에서는 그들이 힘이 있을지 몰라도 양지에선 손기정이다. 그들은 우리 가족에게 연좌제란 걸 걸었지만 국민은 손기정에게 연좌제를 걸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누굴 원망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근현대사에서 있을 수도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면서도 "손기정 선수까지도 연좌제가 걸린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14일부터 19박 20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특별손님으로 초대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 손기정 선생의 발자취를 되짚는 여정에 나선다.
그는 종착지인 베를린에서 독일 올림픽위원회측에 베를린올림픽스타디움 성화대 옆에 설치된 우승자 명패에 손기정 선수가 한국인이란 사실을 병기해 줄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이씨는 "명패에는 'Son, Japan'이라고 쓰여 있는데 옆에 괄호를 치고 'Korean'이라고 함께 적어달라고 할 것"이라면서 "단 한 단어에 불과하지만 이는 일제강점의 역사와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를 세계인에게 계속 전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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