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든 고교생 2천여명 "마음이 썩어 문드러집니다"

2014. 5. 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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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안산 지역 고교생들 애도 행진

"세월호 참사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질까 두려워요"

"이념 대립·세대 갈등으로 우리 마음 왜곡 마세요"

"촛불이 하나하나 꺼질 때마다 친구들이 하나둘 잊혀질까봐 두렵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들을 잊지 말아 주세요."

9일 저녁 8시,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던 경기도 안산 문화광장에 2000여개의 촛불이 어둠을 밝혔다. 교복을 입은 안산의 고교생 2000여명이 촛불을 켰다. 애초 예상했던 참석자 400여명보다 훨씬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왼쪽 팔에는 노란색 리본을 달았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바람이 된' 안산 단원고 친구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자유발언 순서에서 무대에 오른 한 남학생이 '그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데 이어 자유발언에 나선 다른 학생들도 '잊으면 이런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안산 경안고 학생회장 우숭민(18·3학년)군은 "우리는 하늘로 간 단원고 친구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언론과 사회가 우리의 이 마음을 정치적 이념대립이나 세대간 갈등으로 왜곡하지 말아 달라"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학생은 "사고 뒤 어른들이 좀더 노력해줬다면 저희의 눈물이 좀 덜 나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달 브라질 월드컵 경기가 시작되면 세월호 사고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까봐 무섭다. 대구 지하철 사고 때도 그랬다. 저희가 잊으면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될 것이다. 제 친구들이 빛나는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른 남학생은 "저희의 슬픔은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 초석으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분노한다. 우왕좌왕한 해경과 앵무새 언론, 무능한 정부의 모습을 보았다"고 비판했다. 촛불은 오후 8시53분 꺼졌다. 학생들은 촛불을 끄며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외쳤다.

사회를 보던 학생이 무대에서 "조심해서 나가라"고 안내하던 중 갑자기 무대 위로 한 40대 남성이 뛰어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자신을 단원고 2학년 6반 희생자 학생의 삼촌이라고 소개했다. "아까 청와대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소식을 듣고 한번 와봤습니다. 여러분들께 감사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습니다." 이 남성은 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날 일부 유가족들은 촛불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학생들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안산 문화광장 주변에 쳐져 있던 줄에 걸었다.

촛불이 켜지기 전인 오후 6시30분, 학생 250여명은 세월호 사고 정부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에 모였다. 학생들은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적은 노란색 도화지를 손에 들고 여섯명씩 열을 지어 안산 문화광장으로 향했다. 어두운 표정이었고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숨진 친구들과 '동행'한다는 의미의 추모 행진이었다. 교사와 부모, 경찰 등 50여명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함께 걸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길을 내줬다.

학생들은 1시간 남짓 2㎞를 걸어 저녁 7시37분께 안산 문화광장에 도착했다. 이때만 해도 안산 문화광장에는 학생 400여명밖에 없었지만, 이후 순식간에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여분 만에 2000여명의 학생들이 안산 문화광장을 빼곡이 메웠다. 곧 촛불이 안산 문화광장을 밝혔고, 친구들을 위한 촛불 추모 문화제가 시작됐다.

9일까지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46만명을 넘어섰다. 전국 시·도에 차려진 합동분향소를 찾은 사람들도 8일 밤 9시 현재 115만여명으로 집계됐다.

안산/김일우 김기성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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