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회 이상 접속 강요 '컴퓨터게임'이 화근

대구 | 박태우 기자 2011. 12. 29.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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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싶으면 빨리 시작해라. 지금 샤워하고 잠깨라 그리고 바로 갯임(게임해라). 니 저녁에 일(집안일) 더하고 돈 무조건 받고 (새벽) 2시까지 갯임."

지난 20일 또래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ㄷ중 권모군(14·2학년)이 가해자들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의 일부다. 경찰 조사결과 가해자들은 숨진 권군에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자메시지로 컴퓨터 게임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군과 가해자 서모군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이들은 지난 3월부터 방과후에 권군 집을 드나들며 컴퓨터 게임을 즐겼다. 권군 부모는 경북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기 때문에 귀가시간이 늦었다. 서군은 게임실력이 좋은 권군에게 아이디를 알려주며 자신의 게임(메이플 스토리) 레벨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마음이 여린 권군은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서군의 캐릭터 레벨은 권군의 도움으로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고민을 나눌 가족이나 친구가 줄면서 요즘 청소년들은 혼자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인터넷이나 컴퓨터게임에 쉽게 중독되고 있다. 서울 총신대 근처 PC방에서 고교생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하지만 지난 7월 게임아이디가 해킹당하면서 서군은 "왜 해킹당했느냐. 당초대로 복원하라"면서 권군을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권군은 해킹의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양 죄인처럼 지냈다. 서군은 또 다른 가해자 우모군(14) 등을 끌어들여 권군에게 본격적인 협박과 상해를 일삼았다.

새벽 1~2시에도 수시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게임을 하도록 강요했다. 문자메시지 내용도 갈수록 과격하고 험악해졌다. 이들은 "무조건 해라. 닌 오늘 개(개처럼) 때려 준다"고 협박했다. 가해 학생들은 지난 9월14일에는 오전 1시부터 2시 사이에 15차례나 권군에게 게임을 독촉했다.

경찰은 서군의 게임 아이디 접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지난 3월부터 이달 초까지 모두 845차례 접속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루 평균 3회 이상 접속한 셈이다. 서군은 게임 강요와 함께 잔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기도 했다. 단소로 때리고 방바닥의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게 하기도 했다. 투신 전날인 19일 저녁에도 시킨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권군을 다그치며 폭행했다.

권군은 갖은 괴롭힘에 시달려 속앓이를 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다. 권군은 유서에서 부모님이나 선생님,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적었다. 권군은 이 같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혼자서 참아내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지난 20일 오전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7층에서 뛰어내렸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극단적인 선택을 불러온 것으로 보고 있다. 최윤경 계명대 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가 게임을 통해 캐릭터 레벨을 올려 또래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지존의 욕구에 피해자가 희생된 느낌이 든다"면서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게임보다 더 즐거운 취미나 운동·여가활동을 개발 보급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메이플 스토리는 게임 캐릭터가 몬스터(괴물)를 잡으면 레벨이 올라가는 게임으로 동시 접속자가 최대 62만명에 이를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 대구 | 박태우 기자 taewoo@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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