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신고 시민, 공권력에 세 번 울었다

구교형 기자 2010. 8. 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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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송사 고통 김모씨 사연도박 혐의자 도망갔다고..지구대 강제연행 폭행 당해때린 경찰관 고소했더니..검찰이 오히려 무고죄 기소무죄판결 후 손배청구하니..항소심 "소멸시효 끝났다"

일용직 노동자 김모씨(57)는 2005년 2월 도박 현장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단속나온 경찰관들은 도박 혐의자들이 사라졌다며 그를 지구대로 강제 연행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던 김씨는 다른 사건으로 조사받던 피의자와 말다툼을 했다. 이어 다툼을 제지하던 경찰관과도 승강이를 벌였다. 그러자 경찰관들이 김씨를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김씨는 7분 동안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튿날 김씨의 피멍든 눈과 손목, 심한 허리 통증을 확인한 의사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친구는 관할 경찰서에 민원을 제기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지구대장과 경찰관들이 병실로 찾아왔다. 위로금 30만원을 건네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그 사이 폭행에 가담했던 경찰관들은 짧은 시간의 교양교육으로 면죄부를 받았다.

두 달간의 입원치료를 마쳤지만 김씨는 계속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다른 병원에서 컴퓨터단층(CT) 촬영을 했다. 검사 결과 허리등뼈(요추) 곳곳에 압박골절의 상해가 나타났다. 김씨는 폭행한 경찰관들을 고소했다. 그러나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오히려 김씨를 무고죄로 기소했다. 1심에서 징역 10월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상고심 끝에 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경찰관들이 폭행 사실을 자백하고, 검사가 오판하지 않았다면 평생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온 그의 생계는 위협받지 않아도 됐다.

2008년 3월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김씨는 재판을 하면서 병세가 악화돼 아무일도 못했다. 김씨 가족은 그의 부인이 식당 주방일을 하며 번 돈으로 근근이 연명했다. 병원에서 추가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소송을 하면서 진 빚만 2000만원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1심에서 소송 관계서류를 주고받는 데만 9개월이 걸렸다. 공판에서 정부 측 대리인은 "경찰관들은 말다툼하는 김씨를 제지했을 뿐 폭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 김씨가 폭행을 당했더라도 사건을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주장을 폈다. 그렇게 또 2년이 흘렀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경찰이 소란을 제지하기 위해 위력 행사가 불가피했더라도 김씨가 상해를 입었다면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가 김씨에게 벌지 못한 수입과 치료비 1700여만원, 위자료 600만원 등 총 23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소멸시효 주장에 대해서는 김씨가 무고죄로 형사재판 중이어서 소송을 내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5개월 만에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면서도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씨가 당시 폭행한 경찰관들을 고소하면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데 법률적 장애가 없었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달리 김씨의 정당한 권리행사가 불가능했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결국 5년여 동안 병원과 법정을 오갔던 김씨만 피해자가 됐다. 폭행을 한 경찰관도, 무고죄로 기소한 검사도, 민·형사사건을 판결한 판사 등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는 4일 "너무 억울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날 대법원에는 마지막 판결을 요구하는 상고장이 제출됐다. 김씨의 변호를 맡았던 장철진 변호사는 "개인의 인생이 거대한 국가권력에 의해 송두리째 망가졌다"며 "국가가 개인의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지는 못할망정 5년여에 걸친 민·형사 재판으로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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