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말조심 해야혀"..백령도 '까나리' 대신 '침묵'만

2010. 4. 1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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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CBS사회부 박지환 최인수 기자]

"천안함이 '홍합여'라는 암초에 걸렸다고 말한 그 노인네 있잖아. 기무사 조사를 받았다는구만. 하여튼 말조심 해야혀. 백령도에서는…".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한반도가 두 동강 난 이후 '침묵의 섬'이다.북방한계선(NLL)에 잡음이 불거질 때마다 생업인 어업과 관광 모두 지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주민들에게 '군(軍) 얘기'는 쉬쉬할 수밖에 없는 금기의 영역이다.

사건을 넘어 사태로까지 번진 '천안함 침몰 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주민들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신문이나 방송에 이름이 나가면 안된다"며 한사코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GPS에도 표시되지 않은 암초가 있다"고 언론에 밝힌 이모(73)씨가 군과 관의 추궁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진 뒤부터 피해의식은 한층 더 심해졌다.

▲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나" 느는 건 담배뿐천안함의 함수가 침몰한 해역이 내려다보이는 백령도 장촌포구. 이곳 해안가를 끼고 갯바위를 돌아가면 비밀스러운 어민들의 아지트가 있다. 소문은 빠르지만 외지인들의 귀는 막힌 곳이다.

지난 2일 갯바위 틈에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은 모닥불을 지핀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 주민은 "워째 이런 큰일이 다 일어난디야…"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주민은 사고 당일 밤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6·25때도 이렇게 많은 군함을 본 적이 없지, 처음에는 겁나 죽을 뻔했다니까"라고 말했다.

잠시 뒤 소쿠리를 든 할머니 셋이 "원, 이래갖고 어디 굴 좀 쪼갔어?"라며 혀를 차더니 동석했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뒤 한동안 막혔던 해안가 출입이 허용되자, 굴을 캐 생계를 꾸려가는 할머니들은 물이 빠지는 반나절동안 한 소쿠리 가득 굴을 담아왔다. "장에 내다 팔면 2만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사고해역 주변에 잠수해 해삼이나 멍게 등을 잡는 해남들은 일손을 놓은 채 푸념만 할 뿐이었다. 백령도는 군 초소에 걸린 깃발 색에 의해 조업과 해안가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이다.

누구보다 큰 피해를 보는 건 뱃사람들이었다. 어민 장주봉(54)씨는 "4월 중순이면 까나리 잡으러 나가야돼. 그런데 큰 배(해군 함정)들이 다니면 그물이 다 찢어져 버리잖아"라며 사고해역을 바라봤다.

그는 "그래도 우리는 아무 말 못하지. 사람이 저렇게나 많이 변을 당했다는데 미안해서 우리 생각만 할 수도 없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6.25 이후 외지인이 이렇게 많은 건 첨이여"관광객의 발길은 뚝 끊겼지만 민박이나 식당을 하는 주민들은 그리 울상을 짓진 않았다. '천안함 미스터리'를 풀기위해 찾아든 기자들이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현지 군이 파악한 취재진만 220명. 읍내 모텔 방은 꽉 찼고, 방이 4개짜리 한 민박집에는 거실까지 기자 16명명이 득실거렸다.

렌터카는 동이 났다. 백령도에 있는 총 8대의 택시들은 취재진을 실어 나르느라 분주했다.00모텔, 00식당이라는 광고문구가 적힌 차량이 취재차로 변신했고, 미처 차량을 구하지 못한 취재진들의 '히치하이킹'도 속출했다. 혈혈단신로 섬을 찾은 한 신문사 기자는 4륜 바이크로 백령도를 누비기도 했다.

통화량이 급증하면서 가뜩이나 사정이 좋지 않은 휴대전화는 먹통이 되곤 했다. 읍내에 있는 단 하나의 PC방에는 느려 터진 인터넷망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송고하려는 기자들로 가득찼다.

▲ 군 당국 정보 통제로 '강요된 침묵'도 섬 뒤엎어백령도에 '자발적 침묵'만 흐르는 건 아니다. 군이 갈수록 모든 정보를 통제하면서 '강요된 침묵'이 섬을 뒤엎고 있다.

군 당국은 사건이 장기화되자 실종자 수색, 천안함 인양작업 전반에 대한 정보 흐름을 서울 합동참모본부로 단일화했다.

백령도에 특파된 해군 장교들은 현장상황이 합참에 보고된 이후에나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등 정보를 철저히 차단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벌어진 수색 작업은 물론, 최근의 인양 작업도 기상여건에 따라 매일 한 차례만 해군이 허가한 '취재지원선'에 기자들을 태운 채 공개됐다.

그마저도 승선 인원이 제한돼 '가위바위보'로 살아남은 몇몇 기자들만이 사고 해역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사정이 이러니, 현장기사가 안 나온다는 데스크들의 호된 질타를 받은 기자들과 안내하는 해군 장교들 사이에 옥신각신하는 일도 잦았다.

사고 해역에 닿지 못한 기자들은 전망대에서 이른바 '뻗치기'를 하며 고성능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와 망원경을 동원해 작업 현장을 지켜보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 사이 천안함 침몰원인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들이 불거졌다. 해명이 나오는가 하면 곧바로 또다른 의문들이 꼬리를 물곤 했다.

9살 때 백령도에서 6.25 전쟁을 겪었다는 한 주민은 "어뢰인지 기뢰인지 다른 원인인지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천안함 사고가 남북 문제로 번지더라도 이곳 사람들은 그동안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야지 어쩌겠느냐"며, 다시 불안한 표정으로 말문을 닫았다.appl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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