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는 없다" 얼굴없는 범인 심리 꿰뚫어

2009. 2. 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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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티끌만한 흔적 실마리로 '범행 재구성'

ㆍ범인의 심리적 약점 건드려 자백 유도

엽기적인 연쇄 살인이 일어날 때마다 주목받는 경찰 프로파일러(범죄분석요원)의 주업무는 '발견'이다. 프로파일러는 모두의 눈에 보이는, 그러나 쉽게 알아볼 수 없는 흔적을 통해 범행 현장을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전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범인의 윤곽을 그리기도 하고, 범인이 숨기고 있는 범행 동기를 밝혀내기도 한다.

◇ 범인의 모습은 현장에 있다='차량을 소유하고 있으며 호감 가는 인상을 가진 30대 남성'. 2007년 경기 서남부에서 여성 4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을 때 경찰이 만든 범인의 프로필이다. 이 내용은 지난달 검거된 경기 서남부 부녀자 납치·살인 사건의 범인 강호순씨(39)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경찰은 피해자의 직업과 연령대, 사건 발생 시간, 장소 등으로 "동일범이 첫 범죄 성공 이후 자신감을 얻은 뒤 연쇄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얼굴 없는 범인'이라 해도 흔적을 100% 지울 수는 없다. 프로파일러는 그 작은 흔적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수집된 흔적은 자료화돼 고스란히 저장된다. 이 자료는 다음 사건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범죄정보지원계 소속 권일용 경위는 "범죄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어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전국을 돌며 이상 범죄자 수백명을 만나 면담하고 자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링은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 수사를 한층 쉽게 만든다. 범죄유형을 정리해놓은 'SCAS(Scientific Crime Analysis System·과학적 범죄분석 시스템)'가 유용하게 쓰인다. 또 프로파일러의 업무 영역에는 용의자만 포함돼 있지 않다. 피해자의 유형을 분석해 범인의 취향을 알아내기도 하고 목격자들이 여러 명일 때 수사가치가 있는 목격자와 진술을 가려내기도 한다.

◇ 사건 재구성을 통해 범행동기를 파악하라=2007년 12월25일 경기 안양시에서 초등학교 여학생 2명이 실종됐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인력을 투입해 탐문과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두 어린이의 생사 여부는 물론 사건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 결국 실종됐던 아이들은 이듬해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실종 당일 인근 렌터카 업체에서 대여된 차량을 통해 범인 정성현씨(40)를 검거했다. 그러나 정씨는 범행을 부인하며 입을 다물었다. 증거는 있었지만 범행동기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가 투입됐다. 범행의 재구성을 통해 동기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권 경위는 실종사건이 벌어진 곳이 인구밀집 지역이란 점, 또 밀집 지역에서도 과감하게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통해 정씨가 약물 등으로 인한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또 토막 살해 등 잔인한 살해수법으로 보아 범인은 폐쇄적이면서 폭발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고 분석했다.

분석을 마친 권 경위는 정씨를 직접 만나 심문에 들어갔다. 정씨는 처음에는 "교통사고였다"고 우겼다. 또 논리에 맞지도 않는 거짓말을 중간중간 섞었다.

이에 권 경위를 비롯한 프로파일러들은 새로운 심문 전략을 세웠다. 정씨에게 어머니 얘기를 이끌어내며 인간적으로 접근했다. 말문이 트인 정씨는 그동안의 가족사를 줄줄이 털어놨고 마침내 "술 마시고 본드를 흡입한 상태에서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만난 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성추행한 뒤 죽였다"고 실토했다.

2004년 유영철, 2006년 정남규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완강하게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은 프로파일러가 투입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정확한 분석을 통해 범인의 '심리적 약점'을 건드려 이뤄낸 성과였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곽순기 계장은 " '무동기 범죄' '묻지마 범죄'는 사실 잘못된 표현"이라며 "어떤 범죄에도 흔적과 동기는 있게 마련이고 이를 찾아내는 것이 프로파일러의 일"이라고 말했다.

<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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