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역사의 물줄기 바꾸는 헌재의 '손'

2008. 11. 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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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기각ㆍ행정수도 위헌 이어 종부세 사망선고…대형 이슈마다 심판자役'편의주의'논란도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이 크게 술렁거렸다. 최근 간통죄에 대한 합헌 결정으로 주목받았던 헌법재판소는 이날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종합부동산세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 최고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사실상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사망선고와 다름없었다. 가구별 합산에 대한 위헌 결정과 장기 거주 1주택자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은 종부세를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이날 결정은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는 참여정부에서 실용정부로의 전환기에, 헌재가 역사의 커다란 줄기를 작성하는 데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느 때부터인가 헌재가 역사적 순간의 심판자로 나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보혁(保革)ㆍ신구(新舊) 간 갈등은 헌재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헌재는 2004년 5월 14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의결된 대통령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해 사법기관이 최종 결정을 내린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2004년 10월 21일에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관습헌법"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려 또 다른 갈등의 계기를 제공한 적도 있었다. 같은 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해서는 "양심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기본권이기는 하지만 국가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무리한 입법적 실험(대체복무제)을 요구할 수는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려 고조되는 대결 양상의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하지만 잇단 대형 이슈에 대한 헌재의 결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반가울 수만은 없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정치적 혹은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산고의 과정을 회피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를 모두 헌재로 떠넘기려는 편의주의가 대세로 자리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역사의 줄기를 단 9명의 재판관에게 일임하는 것은 적잖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이미 헌재는 종부세 결정 선고 과정에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재 사전 접촉 발언으로 최고사법기관으로서의 중립성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정권의 변화에 따라 중립성이 흔들리는 듯한 모양새는 자칫 국민의 사법 불신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헌재의 명판결을 기대하고, 또 그에 따라 역사의 흐름이 바뀌어가는 순간을 지켜보는 눈이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지나친 '헌재의존증'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정순식 기자(sun@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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