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못버리는 대학도서관

2007. 8. 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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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들이 헌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어 종이가 낡고 활자 및 디자인 등이 구식이어서 대출해가는 학생이 거의 없는 책이 서울시내 대학 도서관 자료실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도서관 평가에서 장서량이 가장 중요한 항목이기 때문에 이들 도서를 폐기처분하지 못하고 골머리만 썩이는 실정이다.

7일 성균관대 중앙도서관 2층에 위치한 서고에는 곰팡이가 슬고 누렇게 변색된 헌책들이 가득했다. 1966년 출간된 '볼테르 선집' 등 외국 서적과 60년대 중·후반에 나온 각종 논문은 오랫동안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듯 뿌옇게 먼지가 앉아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집은 89년 11월이 마지막 대출이었다. 도서관 3층 어문학자료실에도 86년에 나온 '정통한국문학대계'라는 한국소설선집 수십권이 10수년째 대출이 이뤄지지 않은 채 비좁은 책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의 경우 72년 출간된 '중국의 고전 100선'을 비롯해 '알퐁스 도데의 월요이야기'(80년판) '중종실록'(85년판) 등 세로쓰기로 조판된 책들이 여전히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들은 모두 20년 동안 한 번도 대출되지 않았다. 서울대가 2005년 실시한 도서관 대출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46만220건의 대출건수 가운데 90년 이전에 출간된 서적의 대출은 겨우 2만1600건(2.6%)에 불과했다.

서울시내 대학 도서관에는 적게는 수천권에서 많게는 5만권 이상 폐기 대상 헌책이 있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 94년 이전 발행됐거나 2000년 이후 이용 횟수가 10회 미만인 책을 추려내 폐기할 계획인데, 무려 3만5000여권이 1차 선별됐다.

이처럼 애물단지가 된 헌책들이 도서관 공간을 많이 잠식하며 적지 않은 관리비를 축내고 있는데도 대학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마냥 보관하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실시하는 도서관 평가에서 '학생 1인당 도서 및 비도서 자료수' '최근 3년간 도서구입 단가' 등 장서량이 차지하는 점수가 전체 15점 만점에 7.5점으로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중앙도서관 학술지원팀 이성배 차장은 "청계천에서 헌책을 잔뜩 사와 책장을 채우는 학교도 있다"고 전했다. 한양대 중앙도서관 신남호 사서는 "규모가 작은 대학들은 큰 대학들이 버린 책을 가져와 도서관 서고를 채우기도 한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대학 도서관 관계자들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 이용률이 적음에도 보존가치 때문에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도서들을 한 곳에 모으는 '공동보관소'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한국도서관협회 이용훈 부장은 "관련 규정을 정비하고 장서폐기선정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책의 저수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동보관소 설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대교협의 도서관 평가도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지훈 이도경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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