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기' 조장하는 정부, 그치지 않는 자연·국민 탓

2007. 3. 2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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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염형철 기자]

▲ (왼쪽) 수돗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주민들을 상대로 물을 파는 필리핀 청년. 20리터 한 통에 약 150원 하는 물 값은 수돗물 가격의 세 배다. (오른쪽) 하수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오염된 필리핀의 하천. 이런 하천들을 통해 수인성 질병들이 번성해 주민들을 위협한다(2005년 필리핀에서 촬영).
ⓒ2007 염형철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환경정상회의(UNCSD)의 결의에 따라, UN이 제정·선포하고 세계가 함께 기념하는 날이다.

역대 최대의 국제회의라 불리는 리우회의의 이러한 결정은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가 여전히 물 문제이며,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의 3분의 2 이상이 물을 통해 발생하거나 전염되고 있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12억 인구가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20억의 인구가 하수를 위생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며, 어린이들이 8초에 한 명꼴로 수인성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서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유엔(UN)의 새천년발전목표(MDG) 8개 중 하나인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자'는 계획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물의 날'은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개발도상국의 물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탄생했다. 물 관리가 허술한 개도국 정부에 관심을 촉구하고, 선진국에 재정과 기술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세계가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물의 순환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보전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물의 날'은 묘하게 변질됐다. 행사는 넘치지만 어려운 개도국을 돕자는 말은 없고, 물 관리부서들의 정책 홍보와 예산 타령이 이를 대체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의 물 이용현황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기회가 되지 못하고 '한국은 UN이 정한 물 부족국가다', '한국 사람들은 물 낭비가 심하다', '한국의 수돗물 값이 싸다', '가뭄과 홍수를 막기 위해 댐을 건설해야 한다', '한국에선 물 관리가 어렵다'는 등 비과학적 주장들만 어지럽다.

하지만 이렇게 왜곡되고 과장된 신화들은 위기를 부풀리고 불안을 조장할 뿐, 현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정책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 물의 날을 맞아 한국 사회에서 횡행하는 물에 대한 유령들을 신문해 진실을 알아보고, 이런 부적절한 신화들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이들의 의도를 분석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유엔, '한국=물 부족국가'로 규정한 적 없다... '물 낭비 국민'으로 몰지 마라

1인당 물 이용가능량, 물 풍요국,물 스트레스국, 물 빈곤국

이 개념들은 미국 PAI에서 사용한 것으로, 강우의 유출량을 인구수로 나눠 1인당 물 사용 가능량이 1700톤 이상이면 물 풍부국, 1000톤 이상~1700톤 미만이면 물 스트레스국, 1000톤 미만이면 물 빈곤국으로 나누고 있다(한국은 1인당 1만5212톤, 731억톤/4800만명).

하지만 강으로 흘러드는 물을 인구수로 나눈 값인 1인당 물 이용가능량은 국토 면적, 인구밀도, 강우량만 반영할 뿐 수도 보급률, 수질, 물 이용효율, 운영기술 등을 평가할 수 없는 허술한 개념이다.

이 지표대로라면 수질오염이나 미흡한 시설투자 때문에 수인성 질병이 만연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이나 북한 등은 물 풍요국이 되고, 영국이나 덴마크 등 물 문제가 비교적 적은 나라들은 물 스트레스국이 된다.

또한 정부 주장대로라면 인구가 4253만명 이하로 감소하는 2049년에 한국은 물 풍요국이 되고, 최근 꾸준히 증가 추세인 강수량이 연 1400㎜(현재 1300㎜)를 넘으면 한국에선 물 문제가 해소된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첫째, '한국은 UN이 정한 물 부족국가'라는 주장은 가장 오래되고 황당한 신화다. 하지만 UN은 '한국이 물 부족국가'라고 지정하기는커녕 이러한 개념을 사용한 적조차 없다.

도리어 유네스코(UNESCO) 등 유엔 기구들이 주도한 세계 물 포럼에서 발표한 각국의 물 빈곤지수(WPI, World Poverty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물 사정은 비교적 양호하다(2006년, 147개국 중 43위).

반면 정부가 UN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는 미국의 한 사설 인구연구소(PAI, Population Action Institute)에서 인구 폭발을 경고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인구 증가에 따라 줄어드는 1인당 이용 가능한 물, 국토, 에너지량 등'을 표시한 단순한 지표일 뿐이다.

즉 인구가 폭증하는 제3세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만든 지표를, 인구가 안정 혹은 감소 추세인 OECD 국가 한국에 적용하면서 UN까지 끌어들인 코미디라 할 수 있다.

둘째, '한국 사람들은 물을 낭비한다'는 것도 통계의 의도적 오독이다. 건교부와 환경부는 한국에서 수도시설의 국민 1인당 물 공급량이 하루 395리터로, 유럽보다 많고 일본과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물 공급량은 국민들이 직접 사용하는 물의 양과 다르다. 중간에서 누수 또는 손실되는 양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물 사용량(유수량)은 공공용을 포함해 1인당 하루 281리터에 불과하며, 시민이 직접 쓰는 생활용수 사용량은 1인당 하루 175리터에 불과하다. 또한 누수에 대한 비판이 늘면서 최근엔 누수율도 크게 줄어들어, 물 공급량조차 351리터(2004년)로 감소했다. 결국 이런 주장은 줄줄 새는 물 공급망 부실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긴 것이고, 정부가 국민을 몰지각한 물 낭비자로 몰아붙인 어이없는 선전이라 할 수 있다.

▲ 불안한 농촌지역 간이상수도. 아직도 농촌 지역 인구 400만 이상이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식수를 이용하고 있다. 경남 고성 탄광 이타이이타이병 논란, 이천시 방사성물질 과다 노출 간이상수도 사건 등이 계속 터지고 있다.
ⓒ2007 백명수 수돗물시민회의 국장

댐은 넘쳐나지만 홍수·가뭄 피해 줄지 않는 까닭

셋째, '한국의 수돗물 값이 싸다'는 것도 진리가 아니다. 한국의 소비자가 직접 지불하는 수돗물 비용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는 수돗물 가격 체계 차이에서 오는 착시현상일 뿐이다.

즉 다른 나라의 경우 수돗물 생산비용의 대부분을 수도요금에 직접 포함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상수도 공급에 필요한 댐, 취수 및 정수 시설, 관로 건설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국비와 지방비로 지출하고, 시설 운영비만 수돗물 값으로 책정해 징수한다.

따라서 한국 국민들은 수도요금의 전부를 직접 납부하지는 않지만, 다른 항목으로 지출한 세금으로 보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싼 수도료 고지서를 보내는 물 정책 담당자들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

도리어 이렇게 왜곡된 가격체계 때문에 물 낭비가 조장되고, 수혜자들이 적정한 부담을 회피하고, 중수도(상수도와 하수도의 중간에 있다는 뜻으로 한 번 사용한 수돗물을 정원수나 화장실 용수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다시 처리하는 시설) 이용 등 대안적 정책들은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다.

또한 온갖 지원이 집중된 도시의 물 값은 싸고,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한 농촌지역의 수돗물 가격은 하늘 높이 치솟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영월군의 수돗물 값은 과천시의 3.8배에 이르고, 섬 지역에 설치된 해수 담수화 시설이 비싼 운용비 때문에 방치되고, 지자체들이 중앙정부 예산으로 엄청난 규모의 정수장과 댐을 짓고 놀리는 것은 모두 잘못된 수돗물 가격체계에서 유래한다.

넷째, 건교부는 홍수와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다목적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해 홍수 피해 지역과 2001년 가뭄 피해지역을 살펴보면 이 주장을 수긍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지난해 홍수 당시 인명피해(63명)의 대부분은 산사태(20명)와 계곡급류(30명)로 발생했고, 재산피해가 크게 발생했던 서울 양평동 제방붕괴나 고양시 지하철역사 침수 원인은 부실한 시설 관리였다.

큰 강 중류에 다목적 댐을 막아봐야 상류 계곡을 지키거나 도시의 안전불감증을 치료할 수 없고, 홍수 피해를 줄이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100년 만의 가뭄이 한창이던 2001년 정부는 12개의 다목적 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가뭄 때문에 농사를 망친 곳들은 수리시설이 부족한 산간의 농경지들이 많았고,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던 곳들은 대부분 물이 귀한 도서 연안지역이었다.

도리어 해마다 홍수 피해가 반복되고 봄이면 가뭄 난리를 겪는 것은 정부가 대규모 시설 건설에만 집중하며 농촌지역, 도서 지역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탓이다. 지역 환경을 고려하고 주민의 경험과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댐과 제방을 쌓고 정수장과 하수처리장을 짓는 데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1만8000여개의 댐을 지어(하천 3.6km마다 댐을 세운 셈이다) 만리장성의 10배가 넘는 3만8622km의 제방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데도, 갈수록 홍수피해는 늘고 봄마다 가뭄 보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 2004년, 홍수에 무너진 제방. 낙동강은 특히 하천 경사가 완만하고 주변에 범람원이 넓게 형성돼 있었는데, 이를 간척해 농경지로 만들면서 상습적인 홍수위험지역이 됐다.
ⓒ2007 염형철

기획·조장된 물 위기, 정부·수자원공사·토목 회사·학자·언론 책임

한국의 물맛이 좋은 이유

지하수위는 산의 지형을 따르기 때문에 지표의 하천 수위보다 높이 형성되고, 이것이 지구 중력의 영향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기저유출이라 한다.

비가 오지 않는 하천에 흐르는 물은 높은 산들이 품고 있는 지하수가 평상시에 흘러나온 것이다. 또한 한국은 석회암이나 황토지대가 아니라서, 하천수를 직접 음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한국의 물 관리가 어렵다'고 한다. 강우가 여름에 집중되고, 산지가 많아 홍수가 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우가 집중되는 몬순 기후가 어디 한국에만 있나? 또 산지가 많은 탓에 그나마 봄철에도 물이 있다거나, 노년기 화강암 지역이라 맑고 깨끗한 물을 직접 마실 수 있다는 말은 왜 안 하나?

그러면 정부는 국토의 3분의 1이 사막 등 불모지인 중국의 물 관리가 쉽다고 할 건가? 아니면 허리케인과 태풍의 진로에 자리 잡은 미국이나 일본이, 또는 6개국을 경유하는 라인강을 끼고 있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이 편하다고 할 텐가?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아랍 국가들, 또는 최소한의 상수도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유리하다고 할 건가?

나라마다 특징이 있고 유·불리가 함께 있는 것이지, 한국의 물 환경이 절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왜곡된 주장을 하고, 이를 통해 정부의 물 정책이 그나마 성공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참으로 민망하다.

수십 년 동안 쏟아 부은 수백조원의 예산은 거론하지 않고, 홍수피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국민이 1%가 안 되는 현실은 외면한 채, 한국의 기후와 지형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너무도 뻔뻔한 일이다.

물론 그동안 정부의 물 정책은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를 지원할 수 있는 사회기반시설을 확보하고, 원시적인 수인성 질병들을 추방하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개발이 미진하고 사회수준이 낙후한 개도국이 아니다. 물 정책 평가 역시 '시설 건설' 자체가 아니라 '건설된 시설들의 효율성, 적합성 그리고 환경적·사회적 영향 평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가 막연한 신화들을 통해 물 정책의 실패 원인을 국민과 자연환경에 돌리고, 이를 이용해 정책수립과 집행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나 엘니뇨 등을 자주 인용하면서 사태의 원인과 책임을 모호하게 하거나, 경제개발에 우호적인 국민 여론을 이용해 토목사업을 주장하는 따위의 언론플레이에 열중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결국 우리 사회의 '물 위기'는 현실의 위기가 아니라, 기획되고 조장된 가공의 위기 쪽에 가깝다. 도리어 가장 큰 원인은 현실을 왜곡하고 물 정책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정부의 안일과 이들과 연관된 수자원공사, 토목 회사, 학자, 언론에 있다. 물 관리에 대한 입법, 집행, 감사 및 평가까지 이들이 모든 기능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가 위기의 실체다.

22일은 '물의 고마움을 알고 물 환경을 잘 보전하자'는 '세계 물의 날'이다. 물로 먹고 사는 집단의 이익을 넘어, 물이 필요한 사람들의 처지와 물을 빼앗긴 생태계의 위기를 생각하는 하루가 됐으면 한다.

▲ 2004년, 평화의댐 전경. 1987년과 2002년에 걸쳐 등장한 '북한 물 폭탄 위협론'으로 결국 세워진 평화의 댐. 금강산댐이 터지기 전에는 아무런 용처가 없다.
ⓒ2007 염형철

/염형철 기자

덧붙이는 글환경연합 홈페이지에 관련글이 게재돼 있습니다.기자소개 : 염형철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이며, 물에 대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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