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58>

2006. 7. 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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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난 야쿠자 조직에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폭력을 싫어했다. 물론 평생 레슬러로 살았던 나 역시 폭력적 이미지로 남아 있을는지 모른다. 일본서 활동하다가 한국에 오니 "김일은 야쿠자 조직원의 일원이었다"란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던 적도 있었다.

스승과 야쿠자의 관계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아도 깊이 있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마치 스승과 야쿠자 간에 말 못할 깊은 내막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며 괜한 오해도 한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만 얘기하겠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기억에 대해 "그건 사실이 아닌데"라고 해도 할 수 없다. 내가 아는 동성회 오야붕 정건영은 폭력적 인물만은 아니었다. 정건영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스승과 거의 말을 트고 지냈던 그를 난 "형님" 내지 "회장님"이라 불렀다.

정건영은 일본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조선에서 태어났던 것으로 안다. 정건영은 굳이 자신이 조선인 핏줄임을 숨기지 않았다. 정건영은 내게 일본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한국에서 학교도 다녔던 적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래서인지 한국말도 곧잘 했다.

그는 '긴자 호랑이'란 별명이 말해 주듯 체격이 좋았다. 내 키가 185㎝였는데 거의 비슷해 보였다. 정이 많았고 배짱 하나만큼은 알아 줬던 정건영이 야쿠자로 알려진 것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를 굳이 표현하면 '우익 인사'·'정의의 맨'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한국의 체육 발전을 위해서도 무척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본과 끊임없는 체육 교류를 주선해 줬다.

정건영이 동성회를 만든 것은 일본서 살았던 조선인의 피치 못할 운명이라 본다. 정건영이 동성회를 조직한 것은 20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1945년 제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일본서 떠돌던 조선인들이 똘똘 뭉쳐 도쿄를 중심으로 조직을 만들었다.

태평양전쟁이 끝날 당시 일본에는 300만 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징병이나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이중에서 200만 명 정도는 한국으로 귀국하였지만 100만 명은 그대로 일본에 잔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들이 일본 사회에서 당했던 차별적 대우는 상상을 초월했다. 징병으로 끌려온 이들은 대부분 20대 젊은 나이였다.

이들은 일본 사회에서 차별적 대우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선 조직 결성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때 정건영이 이들을 규합해 긴자에서 동성회란 조직을 만들었던 것으로 안다.

스승도 그들의 삶을 알기에 만나자는 정건영의 제의를 뿌리치지 못했다. 하지만 스승은 어디까지나 레슬링 흥행을 위한 전제 조건의 만남이었다. 이처럼 스승은 확실히 선을 긋고 정건영과 만났다.

정건영은 언젠가 스승을 찾아와 아버지 생신 때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스승은 거절했다. 그것은 공적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조직원들이 몰려드는 곳에 스승이 참가하면 스승이 조선인 주먹들과 연관 있다는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그것을 서운해 할 정건영이 아니었다. 정건영은 스승에게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스승도 정건영의 그런 통 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후 스승과 정건영은 레슬링 흥행을 위해 서로 돕는 관계로 발전했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 지방 흥행에는 정건영이 앞장섰다. 그리고 스승은 집권 자민당의 우익 정객 오노 반보쿠를 프로레슬링협회 커미셔너로 앞세우면서 더욱 흥행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나아가 오사카·교토 등 관서 지방의 레슬링 흥행에는 야마구치구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이는 스승의 레슬링 동업자 나가타 사다오가 연결시켰다. 나가타는 다오카 가즈오 야마구치구미 회장과 형제의 연을 맺은 사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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