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 버스사고 '사라진 영상 5초' 미스터리

박은하 기자 2014. 3. 3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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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밤 갑작스러운 질주 끝에 연쇄 추돌사고를 낸 송파상운 3318번 시내버스의 블랙박스 영상과 디지털운행기록계(타코그래프)가 공개됐다. 경찰은 1차 추돌사고의 원인을 버스기사 염모씨(60)의 졸음운전으로 결론내렸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차사고 직전 5초 가량의 블랙박스 영상 복원에 실패해 정확한 사고확대 원인 규명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9일 3318번 시내버스의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하며 송파 버스사고 관련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1차 추돌 사고의 원인은 염씨의 졸음운전"이라면서도 "운전자 과실이나 사고 이후 기기 파손 여부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 버스기사 1차 사고 직전 졸음운전…이날 18시간 근무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던 3318번 버스는 19일 오후 11시 43분쯤 택시 정류장 쪽으로 차선을 이탈하다 앞의 택시를 들이받는 '1차 추돌사고'를 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염씨는 19일 오후 9시 55분쯤 강일동 강동차고지에서 출발해 20분 후인 10시 15분께부터 졸기 시작했다. 경찰은 염씨가 1차 사고가 일어나기 1시간 26분 전부터 졸기 시작해 총 27회의 졸음과 관련한 행동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염씨는 송파구 삼성아파트 앞과 오금역 사거리에서의 2차례 신호위반, 정지선으로부터 약 10m 뒤에 정지한 점 등도 졸음운전의 행동반응으로 파악됐다. 염씨가 고개를 운전대까지 숙였다가 일어나거나 졸음을 깨려고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는 등의 모습도 내부 영상에 포착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염씨의 졸음운쟁은 무리한 운행 일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염씨는 사고 3일 전인 주말 마라톤 풀코스를 4시간 35분에 완주했으며 그 다음 날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이틀 연속으로 오전 근무를 했다. 사고 당일에는 오전 5시 36분부터 근무를 시작해 오후 11시 43분까지 15시간 20분 동안 운전대를 잡았다. 본래 오전, 오후 한 차례씩 근무하기로 돼 있으나 근무를 바꿔달라는 동료의 부탁에 휴식 시간 포함 하루 18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은 것이었다.

윤병현 송파경찰서 교통과장은 "정상적인 상태면 인지부터 제동까지 1∼1.4초가 걸리는데 염씨는 1차 추돌 직전 택시가 이미 차선을 바꿔 3318번 버스 앞에 있음에도 이를 3∼4초 뒤에 발견했다"며 졸음운전이 1차 추돌의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원인 모를 폭주 상태에서 우회전…급가속 원인은?

하지만 경찰은 1차 사고 이후 버스기사가 버스를 멈추지 않고 갑작스러운 질주 끝에 2차 사고로 이어진 과정은 설명하지 못했다. 연쇄 추돌사고의 피해를 키운 것은 2차 사고였다. 3318번 버스는 석촌호수 사거리 근처에서 1차사고를 낸 뒤 멈추지 않고 질주하다 경로를 이탈해 잠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뒤 신호대기 중이었던 30-1번 노선버스를 들이받아 이 버스 맨 뒷 좌석에 앉았던 이모씨(20)와 장모씨(19)가 염씨와 함께 숨졌다.

3318변 버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급가속했으며 염씨는 충돌을 피하려 애썼으나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시내버스 규정 속도인 시속 26㎞ 안팎으로 달리다 1차 사고 1분 전부터 10~9㎞대로 서행하다 다시 속도를 올리는 중 시속 22㎞상태에서 1차 사고를 냈다. 사고 직후 버스의 속력은 무섭게 올라가 1분 만에 시속 70㎞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자 염씨는 정해진 경로를 가지 않고 급격히 핸들을 돌려 버스를 우회전시켰으며 이후 한 차례 펜스에 부딛친 후 운행기록계의 기록이 끊겼다.

송파경찰서 제공

블랙박스 영상에는 1차사고 이후 버스의 속력이 올라가는 동안 염씨가 입술을 깨물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승객 한 명이 다가가 염씨에게 "멈추라"고 했지만 염씨는 "어어"라고 내뱉으며 운전을 지속했다. 승객들은 "염씨가 사고를 피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1차 추돌사고 이후 버스는 직진하지 않고 행인과 앞 차량을 좌우로 움직이다 택시와 승합차 등 5대를 스치다 사고를 냈다.

2차사고 직전까지 브레이크 작동 여부는 파악되지 않았다. 구장회 도로교통관리공단 서울지부 사고조사 연구원은 "염씨가 운전대를 움직이는 것 외에는 잠실역 사거리에서의 우회전 이후에 브레이크 작동 등 다른 방어조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CCTV 상 나와 있다"고 말했다. 도로에도 스키드마크(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의 흔적)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염씨의 무리한 운행이 사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공식 브리핑 자료에서 "염씨가 극도의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에서 1차 사고를 일으킨 후 그로 인한 당혹감으로 가속페달을 제동장치로 착각하고 밟았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운전자 과실 VS 1차추돌 후 기기이상…"수사 계속 될 것"

국과수는 2차사고 5초 전 블랙박스 영상 복원에는 실패했다. 따라서 사고 직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부검 결과 염씨의 사인은 2차 사고 당시 충격으로 인한 가슴뼈 골절과 팔머리동맥 등의 파열에 의한 흉강 내 대량 출혈로, 수사 당국은 염씨의 발작이나 뇌졸증 등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 상태다. 이로써 사고의 원인은 운전자 염씨의 피로와 당혹감에 의한 부주의 운전이거나, 1차사고 이후 발생한 기기결함일 가능성으로 좁혀졌다.

사고를 낸 버스는 현대 뉴슈퍼에어로시티 초저상SE 기종으로, 아직 버스 제조사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사고 하루 전날 운전점검과 21일 시행된 국과수 1차 조사 결과에서 버스에 대한 이상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위성항법장치(GPS)가 1차사고 직후 꺼진 것으로 확인돼 사고 이후 버스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2010년 전방위 추돌을 낸 인천대교 연쇄 추돌사고를 낸 버스도 같은 기종이다.

경찰은 "염씨가 장시간 운전으로 과로·피로가 누적돼 사고 당시 인지·지각 능력이 떨어졌을 것"이라면서 "사고 버스 운전자의 과로 및 졸음 운전에 대한 회사측 관계자의 관리·감독 소홀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해 형사입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량에 기기 결함이 없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며 "1차 사고 이후 2차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엔진 가속이나 브레이크 작동 여부 등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보강 수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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