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나눔이 시대착오적이라는 현수막.. 그 배경은?

김형욱 2015. 7. 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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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골고루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

요즘 서울 강남 일대를 다니다 보면 묘한 글귀가 종종 눈에 띕니다. 주요 사거리마다 이런 글귀의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나눔’은 예나 지금이나 미담 아닌가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나눔이 시대착오적일 건 또 뭔가요. 사연이 궁금해집니다.

현수막 전체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울시는 골고루 나누어 사용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대한민국 경쟁력 강화의 지름길인 영동대로 세계화 개발을 막지 말라.’ 강남구 범구민 비상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입니다.

그 배경에는 현대차그룹의 공공기여금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부지를 샀습니다. 또 신사옥 개발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시 측에 1조7000억원의 공공기여금을 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사용처입니다. 액수가 큰 탓인지 너도나도 관심입니다.

현대차그룹과의 협상 주체이던 서울시는 시 소유인 잠실운동장 개선사업에 쓰기로 했습니다. 당사자 격인 강남구는 한전부지 주변 영동대로에 들어설 교통 인프라 통합 개발을 위해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남구를 뺀 나머지 자치구 대부분은 강남·북 지역균형 발전에 쓰자는 제안을 합니다. 법적 갈등으로까지 번질 조짐입니다.

이 글을 올린 분들의 심경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공기여금을 다른 지역에 사용하는 건 유례가 없습니다. 삼성동에 100여 층이 넘는 건물이 생기면 당장 교통난을 비롯한 각종 불편이 생깁니다. 그러나 정작 이들 당사자는 협상 테이블에도 못 가고 구 측의 몫을 받아내지 못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심경은 이해하지만 글귀가 너무 공격적이란 건 아쉽습니다. 복지 정책이나 공공기여금 사용 방식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나눔’은 예나 지금이나 권장해야 할 미덕입니다. 시대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글귀를 본 아이들이 오해할까 걱정입니다.

비대위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습니다. 한 주민은 “점잖고 세련되게 얘기했을 때 계속 무시를 당하니 우리도 계속 (공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나누는 것만큼 ‘잘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죠. 하루빨리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좋은 결론이 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서울시 강남구 주요 사거리마다 내걸린 강남구 범구민 비상대책위원회의 현수막. 김형욱 기자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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