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유행한 '풍자·비판 유인물' 재등장

박은하 기자 2014. 12. 2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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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비난 전단·낙서.. 유포자 '명예훼손' 적용 못해
경찰, 사건 강력계 배당 수사

서울 도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익명의 유인물과 낙서가 잇달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표현의 자유가 후퇴하고 '종북'으로 상징되는 냉전 이데올로기가 강화되면서 1970~1980년대 저항의 한 방식이던 유인물 살포가 되살아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빌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손바닥 크기의 전단 400여장이 발견됐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이름의 전단에는 2002년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의 방북기 발언이 적혔다. 박 대통령은 방북기에 "김정일 위원장은 우리 정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탈북자 문제는 북한의 경제난 때문인 만큼 도와줘야"라고 썼다. 전단 하단에는 박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는 사진에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라는 글귀가 있다. 또 다른 전단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종북'이라고 쓰여 있다.

26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 뿌려진 손바닥 크기의 전단지. | 배장현 기자

마포경찰서는 해당 사건을 강력1계에 배당하고 유포자를 찾고 있다. 주정식 형사과장은 "유포자에게 명예훼손 혐의 적용을 검토했으나 (과거 박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거나 썼던 내용이라) 명예훼손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고 밝혔다. 주 과장은 "주인이 있는 건물 내에서 유인물을 살포했다면 현주건조물 침입죄에 해당할 수 있고, 길거리에서 뿌렸다면 경범죄인 무단쓰레기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지난 25일 서울 명동 등지에서는 '나라 꼴이 엉망이다'라는 구절과 박 대통령과 국정농단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씨의 이름 초성을 섞어 쓴 페인트 낙서가 발견됐다. 남대문경찰서는 용의자를 찾으면 공공기물파손죄를 적용해 수사할 방침이다. 앞서 지난 10월 박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전단을 뿌린 팝아티스트 이하씨가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현주건조물 침입죄·모욕죄로 조사받았다.

정치평론가 유창선씨는 "유신정권이나 5공 시절 의사표현의 통로가 막혀 유인물이나 담벼락 낙서로 표출한 저항이 다시 나타난 것"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용인받아야 할 수준의 비판을 수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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