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분 사이에.." 구룡마을 주민 '안전대책 없어 화재 무방비' 분통

김지훈 2014. 11. 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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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신발이고 뭐고 하나도 건지지 못했어요.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렇게 다 타버렸어요."

10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주민들은 폴리스라인을 따라 삼삼오오 모여 전날 발생한 화재로 사라진 마을을 멍하니 바라봤다.

더 이상 연기는 피어오르지 않았지만 매케한 냄새는 여전히 코를 찔렀다. 소방관들이 잔불을 정리하기 위해 타다 만 잔해 더미를 들출 때마다 희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렸다.구룡마을 7B지구와 8지구 곳곳에 심어져 있던 나무들은 검게 그을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주민들이 살던 집터에는 엿가락처럼 휜 철골들이 뒤엉켜있었다.지난 9일 오후 1시53분께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B지구에서 시작된 불은 강풍을 만나면서 피해를 키웠다. 지구 내 가건물주택에서 시작된 불길은 삽시간에 인근 8지구까지 집어삼켰다.판자를 덧대 지은 집이 대다수인 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불길이 빠르게 번진 탓이다. 마을 곳곳에 방치된 가스통까지 폭발하면서 마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어머니와 함께 8지구 가장자리에 살았다는 박모(27)씨는 "우리집은 최초 발화지점과 거리가 꽤 있었기 때문에 대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었다"며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렇게 다 타버려 신발이고 뭐고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고 허무해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서성이던 7B지구 주민 양모(51·여)씨는 "발화지점과 한참 떨어진 곳에 사는 데도 아무것도 가져나오지 못했다"며 "추워 죽겠는데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어 신발도 못 가져나오고 있다"고 호소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관리 당국의 안전 관리 소홀로 피해가 더 커졌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구룡마을은 지난 1990년 한 해에만 3차례 화재로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을 비롯해 2009년 이후 10여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한 상습 화재 발생 구역이다.8지구 주민 김모(58·여)씨는 "몇년 전만 해도 골목 사이사이에 소방기기들이 설치돼 있었는데 지금은 다 철거돼 거의 남아있지 않다"며 "어차피 허물 곳이라는 생각에 안전 대책을 손 놓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구룡마을 자치회장 이영만(52)씨는 "초기에 진압을 했어야 했는데 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초기 진압이 늦어져 피해가 더 커졌다. 헬기도 2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투입됐다"며 "우리 마을에 불이 나면 항상 이런 식"이라고 고개를 떨궜다.

그러면서 "마을 특성상 전기누전이 많고 연탄불로 인한 화재 발생 우려가 크다"며 "그런데도 화재 예방 대책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룡마을 주민 김모(40·여)는 "가건물이다 보니 몇 집만 타고 끝날 일이 커져버렸다"며 "사실상 개발이 무산된 상태에서 살았는데 이마저도 불에 사라져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지 걱정이 앞선다"고 울먹였다.

한편 지난 9일 오후 1시53분께 시작된 이날 화재는 오후 3시34분께까지 마을 900㎡와 무허가 주택 16개동 63세대를 태우고서야 겨우 큰 불길이 잡혔다.

불이 나자 구룡마을 주민과 인근 주민 136명은 개포중학교 강당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7B지역 주민 주모(71)씨는 잔해 더미 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jikim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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