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참사' 15년.."화성엔 국화 한 송이 놓고 펑펑 울 곳이 없어"

박은하 기자 2014. 6. 3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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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참담한 인재 반복돼도 그때뿐, 곧 무관심해져"
"세월호 유가족 고통도 이제부터일 텐데.." 동병의 눈물

8m 높이의 하얀 위령탑에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6월 일어난 참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육각형 모양으로 만든 위령탑 기단 위에 아이들 사진 13장이 나란히 올라왔다. 별모양 종이 왕관을 쓴 사진 속 여섯 살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손을 맞잡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이 30일 서울 마천동 어린이안전교육관에서 연 '씨랜드 화재 희생 어린이 15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30여명의 부모들은 15년 전 얼굴 그대로인 아이들 사진 앞에서 흐느꼈다.

"아이야, 잘 있었니…"

씨랜드 화재참사 유가족들이 15주기 추모식이 열린 30일 오전 서울 마천동 어린이안전교육관 추모비 앞에 놓인 희생 어린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며 헌화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는 1999년 6월30일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서신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불이 나 3층에 묵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등 23명이 숨진 사건이다.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불법을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났다. 사고로 여섯 살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씨는 올림픽 금메달 등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했다. 김씨는 "국민 생명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며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김씨의 절규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부각된 국민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본질과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씨랜드 참사 유가족도 '세월호'를 '씨랜드'의 판박이로 여겼다. 추모 묵념 이후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상임대표가 발언대에 올랐다. 쌍둥이 딸을 화마에 떠나보낸 고 대표는 "(씨랜드 참사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선 안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월호 참사 등 참담한 인재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헌화가 시작되자 유가족들은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이형민군 어머니 신현숙씨(49)는 '형민아 사랑해'라고 적힌 리본을 단 분홍색 들국화 바구니를 위령탑 앞에 내려놓고 오열한 뒤 한동안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이들의 고통과 슬픔에 세월호가 포개졌다. 형민군 아버지 이동병씨(52)는 "아내가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집에 형민이 흔적이 그대로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족 고통도 지금부터일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충북 청원에서 떡방앗간을 하는 권용현씨(49)는 "참사로 자녀를 잃은 가족은 그때부터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겪은 모든 과정을 300여명의 세월호 희생자 유족이 겪는다고 생각하니 무척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반도체 관련 사업을 했던 권씨는 아들 형수군의 죽음 이후 7년간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아들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는 그의 표정에 희미한 미소가 돌았다. "형수는 매우 개구쟁이였죠. 새 차를 샀는데 신난다며 차를 발로 차고 흙발로 카시트에 올라가 뛰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옅은 미소는 이내 사라졌다. 그는 "(아이가 죽은) 화성에 국화 한 송이 놓고 펑펑 울 곳 하나 없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아이들 유해를 강원 주문진에서 4㎞ 떨어진 바다에 뿌렸다. 추모식이 끝나면 주문진에 함께 가지만 올해는 세월호 참사를 고려해 생략했다. 유족들 대화에서 씁쓸한 소리가 들려왔다. "추모제에 간다고 직장에서 이해하고 날짜 빼주는 것도 한 10년까지지. 이후는 눈치 보여." "(세월호도) 1년 지나면 무관심해질 거예요. 벌써 진도 수색 뺀다고 하지 않나요."

<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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