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월호 참사'에 대해 물었더니.. 도망간 선장보다 구조 무능 정부에 더 큰 분노

박은하·조형국 기자 2014. 5. 2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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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주민 700명 심리조사.. '앵그리맘'이 10대보다 충격 커
세월호 트라우마 연령대별 차이.. 어떻게 극복할까

고등학교 1학년 딸을 둔 직장인 강희숙씨(44)는 하루 종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떠올라 괴롭다. 강씨는 21일 "딸을 볼 때마다 세월호 사고가 생각난다. 매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씨는 " '어느 날 내가 아이를 잃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이 아이를 누가 챙겨줄까' 생각한다"며 "세월호 사고를 잊으려고 안 보던 소설책까지 다시 손에 잡았지만 잊는 것은 순간일 뿐, 곧 슬픔이 몰려왔다"고 했다. 강씨는 "지금은 그저 살아만 있어주면 고맙고 교복 입고 지나가는 학생들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 미안하고 안아주고 싶고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신채영씨(34)는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된 뉴스를 보지 않는다. 신씨는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침 출근길에 세월호 사고 소식뿐인 뉴스를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신씨는 "남자친구와 데이트할 때도 죄책감이 들었으며, 주위의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기울이다가는 도무지 일상을 영위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21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과 시민, 자원봉사자들이 방파제를 향해 걷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 30대 잊기 위해 일부러 회피하고 40대 자꾸 떠올리며 괴로워해중·고생 자녀 40대 "내 일" 자녀 어린 경우 "미래 캄캄"공동체 내 폭넓은 대화 필요… 심리 지원 체계 마련돼야

한국피해자지원협회 안산지역심리지원단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수도권 지역주민 700명(안산시민 212명)을 대상으로 심리검사와 상담을 진행한 결과 세월호 침몰사고의 충격이 10대와 20대보다 30대 이상의 연령대에서 더 크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21일 밝혔다. 30대는 전 연령층 중 가장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40대는 희생자들과 비슷한 또래의 자녀가 있어 큰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0~40대의 분노는 최근 앵그리맘 등의 유모차 시위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또 도망간 선장보다 무능한 정부의 대처에 더 분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충격과 괴로움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658명이 답했다. '어린 학생들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괴로움'이라는 응답자(복수응답)가 401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했다. '구조대책에서 무능하고 믿을 수 없는 정부'라는 응답자는 299명으로 '피해자 가족들의 상실감에 대한 안타까움'(212명)보다 많았다. '선장과 선원 등에 대한 분노'라고 대답한 사람은 169명이었다.

연구를 진행한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40대는 세월호 사건을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인식해 자꾸 떠올리고 괴로워 하는 반면 미혼자가 많고 자녀가 어리거나 앞으로 자녀를 가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많은 30대의 경우 잊기 위해 일부러 회피하는 등 혼란이 크다"며 "공동체 내에서의 폭넓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에서 심리상담을 한 최정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상담심리학 교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회피로 연결된다. 기본적으로 직접적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회피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일상에서도 슬픔을 토로할 수 있도록 심리지원이 체계화될 필요가 있다"며 "꼭 의사 앞에서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슬픔을 토로하고 나눌 수 있는 공동체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산 통합재난심리지원단에서 활동한 권오열 박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라며 "슬픔은 무한하게 참는 것이 아니라 치료와 지원을 받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가족 간에 문제에 대해 솔직히 얘기하고 특히 10대가 있는 집에서는 어른들의 잘못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또 "우선 국가적 차원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트라우마 고위험군을 국가가 나서 파악하고 지원을 체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역사회 차원에서는 신경정신과 병원, 청소년복지관, 건강가정지원센터, 종교 등 산재한 심리지원 기관이 유기적이고 통합적 체계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박난숙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심리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지역사회 등에서 배려하고 보살피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표정이 어두운 사람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작은 것들이 굉장히 큰 효과를 낸다"고 밝혔다.

< 박은하·조형국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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