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핵심' 갑판·기관부 70% 비정규직.. 위급상황 대응 취약

강진구·목포 | 배명재·이종섭 기자 2014. 4.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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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노동' 참화 불씨 키웠나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선장과 핵심 승무원을 대거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면서 이미 '대참화'의 불씨를 키워온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과 기민한 사고 대응에 취약한 구조였던 것이다.

경향신문이 18일 세월호의 승무원 명단을 확인한 결과 위기 발생 시 현장을 지휘해야 할 선장부터 선박 안전관리의 핵심 보직인 갑판부 선원까지 전체 승무원의 절반 이상이 1년~6개월의 계약직이었다. 1분1초가 아쉬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할 선원들이 이미 출항 전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직책과 맘이 쪼개져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일사불란한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 운항 선장도 '1년 계약직'… 정규직 직원이 퇴선 명령근로계약서도 없이 승선도… 부당한 계약조건·차별 깊어

경향신문이 침몰 직전 탈출한 세월호의 승무원들과 한 대화에서도 국내 최대 규모의 여객선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 속은 곯아 있었다. 조타수 오모씨 등은 '부당한 고용계약' '너무 젊은 정규직과 나이 많은 비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등으로 온갖 파행이 빚어진 세월호의 이면을 털어놨다. 2011년 9월 여수 앞바다에서 화재가 난 여객선 설봉호에서 조타수로 일하다 뱃일을 그만둔 오씨는 지난해 7월 청해진해운에 입사했다. 6개월 근무한 뒤 1년씩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이었으나 지난해 말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계약갱신이 거절될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상시적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처지였던 것이다.

오씨 등에 따르면 세월호에는 비정규직이 전체 승무원 29명 중 15명이나 됐다. 갑판부 선원의 경우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이었다. 평상시 소방훈련, 구명정훈련 등을 지휘하고 위기 발생 시 선내에서 인명구조 상황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장이 1년 계약직이었고 선장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조타수 3명도 모두 6개월~1년의 계약직이었다. 오씨는 "선원법상 10일마다 한 번씩 승무원들의 안전 훈련을 지휘하고 객실 내 각종 안전수칙을 점검하며 수백명의 목숨을 붙들고 가야 하는 여객선 선장을 1년 계약직으로 뽑는 것은 애당초 안전을 포기한 처사"라고 말했다.

기관부도 10명 중 8명이나 비정규직이었다. 심지어 기관부 직원 중에는 출항 당일 채용돼 근로계약서도 없이 승선한 조기장 전모씨(61)도 있었다. 그는 " '출항 1시간 전까지 오면 임금 330만원에 계약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급히 부산에서 올라왔으나 '오늘 계약이 불가능하니 일단 제주도에 갔다온 뒤 계약하자'는 황당한 제의를 받고 근로계약서도 없이 승선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핵심 부서인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중 비정규직이 12명(70.5%)을 차지한 것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관계는 평소 물과 기름이나 다름없었다. 직원들은 얼굴은 알지만 서로 이름도 모르고 지낸다고 했다. 더구나 계약직 사원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다. 6개월 계약직으로 입사한 오씨는 연차수당 얘기를 꺼냈다가 계약갱신이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 매월 5일간 유급휴가를 주도록 돼 있는데도 4일만 주고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에 항의했다가 거꾸로 사측으로부터 해고의 위협을 당했다는 것이다.

60세 정년으로 규정된 취업규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56세만 넘으면 대부분 계약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이 든 선원들은 자신들보다 나이 어린 정규직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오씨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계속되다 보니 직원 모두가 정신적으로 피로해졌고 교묘한 노동착취, 기강해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은 사고에 치밀한 대응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1분1초가 급박한 사고 순간 60대 계약직 직원인 선장을 대신해 40대 정규직 선원이 '퇴선명령'을 내리고 선장과 선원들이 여기저기서 먼저 배를 탈출한 이유도 평소 지휘·근무체계가 일정 부분 무너져 있던 현실이 작용된 것으로 해석된다. 승객들의 안전보다 인건비 절감을 우선하다 보니 아르바이트 인력도 3명이나 채용했다.

선원법 시행규칙을 보면 선장은 해원 4분의 1 이상이 교체된 때에는 출항한 24시간 이내 선내 비상훈련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파견법상 선원은 절대적인 파견금지 업종이다. 대형 여객선 항해 시는 그만큼 선원들의 고용안정과 유기적인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6개월마다 한 번씩 절반 가까이가 물갈이되는 취약한 인적구조 속에 세월호는 이미 출항 전부터 내부 통제능력에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목포해양대 박성현 교수(해양운송시스템학부)는 "위험한 뱃길을 가야 하는 선박은 모든 선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조직구조를 가져야 한다"면서 "선사 측이 비정상적인 경영을 바로잡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큰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 강진구·목포 | 배명재·이종섭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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