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어느 청년 편의점주의 죽음

거제 | 박순봉 기자 2013. 3. 1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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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 담보로 빚내 창업, 적자에도 24시간 운영 강제불공정계약 시달리다 자살.. 휴대폰엔 사채 독촉 문자

지난 1월15일 오후. 거제도에도 눈이 쌓인 추운 날이었다.

문이 잠긴 아들의 편의점 문 앞에 섰을 때 김미숙씨(55·가명)는 불안했다. '연중무휴, 24시간 운영'이기 때문에 아들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편의점에는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하지만 이날은 날이 밝았지만 간판 조명까지 꺼진 편의점은 어두웠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어야 할 아들이 이날 아침에는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문을 한번 따보시죠. 점주님의 가게이기 때문에 저희는 손을 댈 수 없습니다." 편의점 본사 직원이 재촉했다. 어머니는 열쇠공을 불러 문을 열었다.

"으아악."

본사 직원의 비명에 카운터를 살피던 어머니는 몸이 굳었다. 냉장고 뒤쪽을 둘러보던 본사 직원이 튕겨지듯 나와 덜덜 떨며 말했다.

"냉장고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아드님 같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김씨의 남편은 부도를 맞아 1억원의 빚과 빚쟁이들을 남겨두고 집을 떠났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아들 임영민씨(31·가명)는 편의점,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재수를 해 대구대 생물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졸업을 한다 해도 취업할 곳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취업이 확실하다는 3년제 거제대 조선과에 다시 입학했다. 졸업 후 삼성중공업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1년간 일했다. 이후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에 계약직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2년 뒤 회사가 2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하자 스스로 나왔다. 당시 그는 가족들에게 "애들도 있고 나이도 많은 형님들은 회사에 남아 있어아죠. 나는 젊어서 일자리를 또 구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휴대폰 판매점 등에서 일하며 수차례 기업들에 원서를 냈지만 낙방소식에 임씨는 지쳐갔다.

"네가 아르바이트해봤던 편의점이든 PC방이든 휴대폰 가게든 해볼래. 아파트 담보로 돈 빌려보자."

보다못한 임씨의 어머니는 제안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많이 해봤으니까 잘할 자신은 있는데…." 임씨는 자기 인생의 '동아줄'을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3개월은 순이익 350만원, 그 다음부터는 월 600만원 보장합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편의점 본사 직원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여기는 조선소가 있어 유동인구가 엄청납니다. 사모님 안 하시면 제가 하렵니다."

편의점 부지 앞을 가리키며 본사 직원이 덧붙인 말이 쐐기를 박았다.

"그래 그 정도 수입이면 빚도 6개월이면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고, 우리 아들 장가도 가고. 되겠네." 모자는 기대에 찼다.

2011년 8월 본사 직원은 노트북을 들고와 작은 글씨로 수십페이지에 이르는 계약서를 화면에 띄웠다. 임씨의 어머니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부산에 가고 없던 날이었다. '전국에 편의점이 이렇게 많은데 이상한 계약조건으로 사람을 곤욕 치르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계약서 여러 곳에 서명을 하며 생각했다. 집을 담보로 3000만원을 빌려 상품구입비와 가맹비 등 창업자금을 냈다. 편의점 계약 해지 시 내야 하는 위약금 5000만원에 대해서는 여동생이 연대보증을 섰다.

그러나 가족들의 희망은 3개월이 지나자 걱정으로 바뀌었다. 본사가 약속했던 순이익도, 많아질 거라는 유동인구도 없었다. 편의점 앞 조선소들은 수주를 하지 못해 떠나기 시작했다. 인근 주택에는 밤에도 불이 거의 켜지지 않았다. 야간에는 거의 장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24시간 운영이 계약상 강제내용이었다. 그는 인건비를 줄이려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15시간을 일했다.

임씨의 하루 매출은 70만원 정도였다. 한 달 기준 2100만원을 벌지만 부가가치세를 제하고 본사에 35%를 떼어 주면 1240만원 정도가 남는다. 여기에 평균 마진율 26%를 곱하면 320만원 정도가 남지만 인건비, 월세, 전기료, 시설유지보수비 등을 제하면 적자가 된다.

현금 매출을 본사로 보내는 '일매출 송금제'는 그를 사채로 내몰았다. 매일매일 매출만큼 본사에 현금을 보내지 않으면 미수금에 대한 이자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편의점주에게는 현금이 없다. 아르바이트생 임금을 주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야 했다. 10여곳의 대부업체에서 몇십만원에서 몇백만원까지 사채를 빌렸다. 그는 돈을 빌려가면서도 본사로 보내는 송금도, 아르바이트생 임금도 밀린 적이 없었다.

편의점 운영이 점점 악화돼 갔지만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5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그만두면 위약금 5000만원과 창업비용 등을 모두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는 적자 영업마저도 용인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에는 본사로부터 계약해지 예고통보를 받았다. 재고 손실 100만원 정도가 발생했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임씨는 지난 1월14일 편의점 내 음료 냉장고 뒤 좁은 구석에 주저앉았다. 번개탄을 피우고 수면유도제를 탄 양주를 마셨다. 그리고 엎드려 쓰러진 뒤 그의 희망을 담았던 편의점에서 세상을 떠났다. 유족들이 경찰로부터 받은 그의 휴대폰은 초기화돼 있었다.

"고객님 연체 1일입니다. 은행 마감 전까지 부탁드리며…."

"입금하지 않을 시 독촉장 발송될 수 있습니다."

유족들이 우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으로는 대부업체의 독촉문자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거제 |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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