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남영동 본 이근안 "칠성판은 2명에만, 사실은 자서전에.."

곽희양 기자 2012. 12. 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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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와 전화 인터뷰

경향신문은 유신과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고문기술자인 이근안씨(74)의 얘기가 나오는 영화 < 남영동 1985 > 의 개봉 소식이 알려진 지난 10월부터 인터뷰를 위해 이씨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이씨는 올 1월 목사직을 박탈당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이씨의 서울 동대문구 자택과 그가 자주 가 머문다는 경기 가평군의 한 기도원 근방을 샅샅이 추적했으나 이씨를 만날 수 없었다. 그의 지인들을 통해서도 만남이나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씨는 끝내 거부했다.

이씨는 14일 <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 이라는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12일 경향신문에 공중전화를 통해 연락해왔다.

2006년 징역 7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이근안 전 경감. | 경향신문 자료사진

▲ 목사직 박탈 후 생활고에 퇴직, 경찰들이 성금"김근태, 그릇이 큰 사람… 고문 후유증은 의문"

이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3월부터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목사로서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만 쓰려 했는데, < 남영동 1985 > 영화가 나온다 해서 방향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씨는 "영화에 사실과 다른 과장이 너무 많아 계획보다 일찍 자서전을 탈고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자신이 한 고문행위가 과장돼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 '칠성판'(원래는 관에 시신을 넣을 때 바닥에 까는 장례용품을 말한다. 고문 피해자들에게는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용으로 사용된 나무판을 지칭하는 용어다)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딱 두 사람에게만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고문도) 면도기 같은 것에 들어가는 건전지로 위협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또 "영화에서는 물고문이라고 해서 호스로 물을 막 퍼붓던데, 사실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호흡을 곤란하게 한 것인데 얼토당토않게 연출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그는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 사건만 해도 27년 전 사건인데 그 멍에를 혼자 지고 살아야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상사도 나를 버리고, 조직에서도 버림받고, 국가도 날 버린 게 아니냐. 씹다 버린 껌처럼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고문을 즐겨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상대가 괴로워하니까 나도 괴로웠다"고 했다.

이씨는 퇴직 경찰들의 모임인 경우회와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사의 지원으로 회고록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한 교회 김모 목사(65)의 도움으로 지난 3월 경기 가평의 기도원 근처에 방을 마련했다.

지난 4일 만난 가평군 기도원 관계자는 "이씨가 자신의 뜻과 다르게 사람들로부터 시달림을 많이 받아 자서전을 출간할 때까지는 언론과의 만남을 피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이 자신을 만나려 한다는 것을 안 이씨는 지난달에도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당시 자서전에 대해 "피눈물 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영리를 위해 (고문을) 한 게 아니다. 다 국가 일을 한 것"이라며 "오죽하면 내가 목사가 됐겠느냐"고 짧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씨가 목사직에서 면직된 뒤 아내가 폐지를 주어 번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우회 회원을 중심으로 이씨를 위한 성금도 모았다. 모금활동을 주도한 경우회 회원 박모씨(75)는 "십시일반으로 10만원, 20만원씩 성금을 모아 총 3000만원가량을 이씨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4월 모금해준 이들에 대한 감사편지에서 자신의 사과를 받아준 김근태 전 고문에 대해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도 파킨슨병으로 사망했다는데 고문 후유증일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적었다.

이씨는 당뇨 합병증 때문에 요즘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씨의 아내는 뇌졸중을 앓고 있다.

이근안씨(74)는 1970년 경찰에 입문한 뒤 1988년까지 대공분야에서 일하며 '고문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1979년 남민전 사건, 1981년 전노련 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씨 간첩조작 사건, 1986년 반제동맹 사건 등에서 많은 야당 인사와 민주화운동가들을 고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공분야에서는 "이근안이 없으면 수사가 안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박중령' '불곰' '반달곰'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씨는 '관절뽑기' '볼펜심 꽂기' 등 각종 고문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청룡봉사상, 근정훈장, 옥조근정훈장 등 총 16차례의 표창을 받았다.

이씨의 악행은 그에게 고문당하고 수감됐던 야당 인사와 민주화운동가들이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석방돼 폭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1988년 경기경찰청 대공분실장을 끝으로 경찰직을 그만둔 뒤 전국에 공개 수배됐다. 10년10개월 동안 숨어 지내다 1998년 10월 자수한 뒤 2000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2006년 11월 여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할 당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그 시대엔 애국인 줄 알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역적이다"라고 했다.

이씨는 2008년 10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한 분파에 소속돼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난해 11월 그에게 고문당한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사망 이후 여론의 비판이 제기되면서 올 1월 목사직을 박탈당했다.

<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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