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학생인권조례 막고는 UN엔 조례 자랑

류인하 기자 2012. 8. 2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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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이중 플레이' 도마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한국인권상황보고서에 "지방교육청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학생들의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기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는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1월 공포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무효화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정부가 안으로는 학생인권조례 시행을 막으면서 밖으로는 인권증진 사례로 자랑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 셈이다.

경향신문은 22일 외교통상부가 이달 초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를 위한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 보고서 9쪽 '학생들의 집회·결사와 표현의 자유' 항목에는 "학생들의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명확하게 규정한 법은 없지만 이를 제한하는 법도 없다. 다수의 지방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으며, 해당 조례들은 모두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어떤 조례는 집회의 자유도 보장하고 있다"고 돼 있다.

유엔인권이사회 정부보고서에는…

정부가 이달 초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한국인권상황 보고서'의 일부. 밑줄 친 부분을 보면 "지방교육청들이 학생들의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정부는 서울시교육청이 공포한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에 반대해 법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오는 10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국가별인권상황 정기검토 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 회의는 유엔인권이사회가 유엔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검토해 인권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권고하는 모임이다. 해당 국가가 제출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그 나라의 인권상황을 점검한다. 한국 정부는 2008년 처음으로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한국은 국가보안법 개정과 주요 인권협약 비준, 사형제도 폐지 등 33개 사항에 대한 개정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 보고서 내용과는 달리 정부는 학생인권조례를 무효화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26일 서울시교육청이 공포한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무효확인 소송을 대법원에 냈다. 교과부 장관은 또 지난 6월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지역 초·중·고교에 발송한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따른 학생 생활지도 안내' 공문에 대해서도 정지명령을 내렸다. 정부가 학생인권조례의 시행을 막고 있는 것이다.

2010년 5월 한국을 방문한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촉진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며 "한국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제사회로부터 표현의 자유가 후퇴했다는 지적을 수차례 받은 정부로서는 이번 유엔인권이사회의 평가 결과가 마지막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을 좋게 보이기 위해 정부 반대로 효력이 정지된 학생인권조례 내용을 보고서에 담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인권보고서 제출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가가 어떤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의미가 크다"며 "그러나 정부는 국내 인권단체의 다양한 비판을 수용하고 이를 반영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함에도 두 차례의 형식적인 간담회만 했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교과부에서 소송을 하는 것과 별개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것은 사실이고, 앞으로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다"며 "학생인권에 대해 교육기관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측면을 언급한 것이지 사실 왜곡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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