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모자라 에어컨 낙숫물 끓여 먹으며 버텨"

2009. 8. 8.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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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비 해고자의 도장공장 농성 77일]6월 8일 살생부 발표 "나만 살수는 없다" 잔류화장실은 드럼통으로 해결… 협상땐 웃음꽃도"페인트 굳으면 큰 일" 동료들의 애사심도 엿봐

6일 오후 10시 경찰이 준비한 버스를 타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공장을 나와 평택역에 도착한 김상현(44ㆍ가명)씨가 집으로 향했다. 속옷 5벌과 양말, 세면도구만 챙기고 부인에게 "10일 정도면 끝날 거야"라고 말하고 나온 지 꼭 77일 만의 귀가였다. 땟국에 찌든 몸으로 집에 도착한 김씨는 부인을 바라보며 한동안 눈물만 흘렸다.

김씨는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이른바 '사측 직원'이다. 노사 대립 못지않게 해고대상자와 비해고자 간 노노(勞勞) 갈등도 극심했던 이번 파업사태에서 그는 비해고자로서 끝까지 농성장에 남았다. 김씨는 이런 직원이 20~30명 가량 된다고 했다.

5월 21일 노조가 처음 도장2공장 문을 걸어 잠글 당시 농성에 참가했던 이는 1,100여명. 하지만 회사가 5월 31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6월 8일 974명의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농성장 분위기는 차츰 어수선해졌다.

400~500명 가량 되는 비해고자들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하나 둘씩 공장 밖으로 나간 것이다. 그는 그러나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얼굴을 보며 출근하던 직원들 중에 누구는 남고 누구는 해고된다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며 "나만 살아보겠다고 차마 공장을 먼저 나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600여명의 농성자들은 이후 "파국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결국엔 잘 될 것"이라는 희망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10~20명씩 한 조로 편성돼 경찰 진입에 대비한 옥상 보초 근무를 돌아가며 서고, 공장 안에 머물 때는 가족들과 통화하거나 소주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래는 생활이었다.

농성장 상황은 그러나 7월 20일 사측이 단수조치를 취하면서 급속하게 나빠졌다. 도장2공장에 붙어있는 복지동에서 나오는 지하수로 겨우 밥은 지어 먹었지만 몸을 씻을 수는 없었다. "하루에 1인당 500㎖ 생수 2병씩 받았는데, 휴지에 물을 조금씩 묻혀 최루액을 닦았어요. 빨래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속옷은 5일 정도 입어야 했습니다."(정민석씨)

더 큰 문제는 용변이었다. 김씨는 "드럼통 위에 나무판자를 놓고 천으로 가린 간이화장실 두 곳을 만들었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며 "소변은 공장 하수구 등에서 해결하다 보니 공장 전체에 악취가 심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식수난은 더욱 심각해져 농성자들은 빗물과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다 끓여 먹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그간 묵묵히 참았던 아내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나오면 안되냐"며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집을 떠난 지 두 달, 부인과 아이들이 눈에 밟히는 상황에서 김씨도 마음이 흔들렸지만, 결국 '잔류'를 택했다.

그는 "비해고자 신분으로 남아있던 20~30명 직원들에게 다른 직원들이 정말 큰 고마움을 표했는데, 그 때 공장을 나가는 건 너무 큰 배신을 하는 것 같았다"며 "평소 아이들에게 신의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아이들에게 떳떳하고 싶다는 마음을 아내에게 전하니 못마땅해 하면서도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노사협상이 재개되면서 침울하던 공장 내부엔 잠시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일 사측이 최종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전기마저 끊어버리자 공장 내 분위기는 크게 동요했다. 김씨는 "가족과의 전화통화로 마음을 달래던 농성자들이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 연락을 못하게 되자 더욱 마음이 흔들렸다"고 전했다.

몸과 마음이 크게 지친 대부분의 농성자들은 결국 "이제 그만 할 때가 됐다. 우리 입장을 최대한 전달했으니까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일부는'결사 항전'을 주장하며 반대했다.

아예 "한 번 사는 인생 끝까지 가보자", "불이나 확 질러 버리자"는 극단적인 말들도 나왔다. 김씨는 "밤샘토론을 벌인 끝에 '그만 끝내자'는 의견이 대부분을 차지해 노조집행부도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해고대상자들과는 다른 처지였지만, 그는 농성이 막바지로 몰리는 와중에서도 모두가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전기가 끊어지면 페인트가 굳게 되는데, 이럴 경우 회사 정상화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며 "사측이 공장 내 전기를 끊었지만, 농성자 모두가 힘을 모아 비상발전기 2대를 고쳐 가동하면서 페인트를 지켜냈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들도 "도장공장 내 페인트가 예상외로 잘 보존돼 있어 빨리 조업이 가능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태무 기자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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