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 유대감이 더 강해진다?
영화 마지막 부분 파편을 붙잡고 차가운 바다 위에 떠 있던 잭이 로즈의 손을 놓고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가라앉는 배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은 사람들, 승객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를 들려준 악사들과 함께 영화 속 슬픈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영화를 봤던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사람들 중에선 이런 슬픈 영화가 주는 '울림'을 느끼기 위해 영화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보는 경우가 많다. 꼭 외국영화가 아니더라도 대표적인 국내 멜로 영화로 손꼽히는 '봄날은 간다'(2001), '클래식'(2003),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등은 등장인물들 간의 '애절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최근 영국 연구팀은 사람들이 왜 슬픈 영화(혹은 드라마) 등을 여러 번 반복해 보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빈 던바 심리학 교수 연구팀은 '도대체 왜 우리는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슬픈 소설과 영화를 감상하는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앞선 여러 연구에서는 춤추기나 웃기, 노래부르기 등 '즐거운' 단체 활동을 하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돼 고통에 대한 내성을 높여주고 활동에 참여한 사람들 간 유대감을 높여준다는 것이 확인됐다.
1975년 발견된 엔도르핀은 모르핀보다 100배 이상 강력한 '마약'으로 불린다. 엔도르핀(endorphine)이란 단어도 뇌 속에 존재하는 내인성 모르핀(endogenous morphine)의 줄임말이다. 엔도르핀은 포유류의 뇌나 뇌하수체에서 추출되는 신경전달물질로 고통을 조절하는 작용을 한다.
영장류들이 털 고르기를 할 때도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던바 교수는 "영장류에서도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을 볼 때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엔도르핀 분비'는 (진화의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나타난 특징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했을 때도 즐거운 활동을 했을 때처럼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유대감이 강해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던바 교수 연구팀은 169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해 베니딕트 컴버배치와 톰 하디 주연의 '스튜어트: 어 라이프 백워즈(2007, BBC)'라는 드라마를 보여줬다. 노숙자 도움센터에서 일하던 알렉산더(베니딕트 컴버배치 분)가 우연히 노숙자 스튜어트(톰 하디 분)를 만나 겪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알렉산더가 어릴 때부터 성적 학대를 받은 약물중독자이며 감옥에도 다녀온 스튜어트의 진짜 삶과 그가 입은 상처를 알게 되면서 책으로 집필할 결심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드라마는 스튜어트의 비극적 선택으로 막을 내린다.
연구팀은 스튜어트 어 라이프 백워즈를 본 실험 참가자들과 비교를 위해 대조군 68명에게는 상대적으로 차분한 내용인 런던자연사박물관을 다룬 내용 등 BBC의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모든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영상을 보기 전후로 두 가지를 체크했다. 하나는 참가자들 간의 소속감·친밀함(belongings)이었다. 다른 하나는 로만 체어(다리를 걸고 상체를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운동하는 운동기구)를 통해 어려운 자세로 버티며 다리 근육에 나타나는 고통을 얼마나 잘 견디는지를 체크하는 것이었다.
참가자들 중 드라마를 본 사람은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보다 18% 더 오래 버텼다. 연구팀은 드라마를 본 참가자들의 사회적 유대감이 대조군(다큐를 본 사람들)에 비해 높다는 것도 발견했다. 슬픈 영상을 본 사람들 사이에서 결속감이 더 높아진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결과가 사람들이 강렬한 공연물을 접했을 때 유대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이유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던바 교수는 "공연계에서 오래된 속담 중 '사람들이 개개인의 자격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가 끝나고 나면 추종자·애호자가 되어서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우리의 연구결과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고 설명했다.
[이영욱 과학기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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