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불길 속 울린 초인종..이웃 구하고 숨진 청년

윤진 2016. 9. 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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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을 구하려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한 20대 청년이 있습니다.

다들 잠든 새벽 시간 자신이 살던 빌라에 불이 나자 초인종을 누르며 이웃들을 깨워 대피시켰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유독가스에 중독돼 쓰러지면서 바깥으로 나가지 못 했습니다.

가족과 이웃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고 안치범 씨는 의식을 되찾지 못 하고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안치범 씨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알려지자 애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뉴스따라잡기>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9일 새벽.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녹취>인근 주민(음성변조) : “어떤 남자가 나와서 불났어요. 불났어요. 그러고 여기다 대고 소리 지르는 걸 들어서 잠에서 깼어요.”

<녹취>인근 주민(음성변조) : “소리 듣고 깜짝 놀라서 나갔더니 이렇게 타고 있더라고요. 창문도 불붙은 창문도 밑으로 다 떨어지고 완전 아수라장이어서…….”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5층짜리 빌라 안에는 모두 16명이 잠들어 있었고, 대부분 불이 난 것조차 몰랐습니다.

<녹취>빌라 주민(음성변조) : “자고 있는데 거기서 소리가 나서 불난 것 같아서 밖에 나왔거든요. 방 안에 하얀 연기가 가득해서…….”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위층으로 계속 번졌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주민들 대부분 일찍 건물 안에서 빠져나와 무사할 수 있었는데요.

단 한 사람, 4층 주민인 28살 안치범 씨만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안 씨는 제일 먼저 119에 화재 신고를 한 주민이었습니다.

<녹취>소방서 관계자(음성변조) : “(4시) 20분에 신고를 한 거로 알고 있거든요. 신고하신 건 그분 당사자가 맞는다고 하거든요.”

제일 처음 화재 사실을 알았다는 건데 왜 탈출을 못 한 걸까?

건물 바깥에 설치된 CCTV 화면입니다.

안 씨가 신고 직후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안 씨가 건물 위를 한 번 올려다 보더니, 불길이 번지고 있는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잠들어 미처 대피하지 못 한 이웃들을 깨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녹취>오정환(빌라 주민) : “자고 있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나서 일어났고요. 그리고 대문 쪽을 보니까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어서…….”

안 씨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이웃들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소방대원들도 도착해 주민들의 탈출을 도왔습니다.

<녹취>빌라 주민(음성변조) : “이게(불길이) 번지고 있어서 안 잡히더라고요. 내려갔죠.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소방차가 오더라고요.”

<녹취>인근 주민(음성변조) : “사람들이 다 대피를 옥상으로 하고 그 밑에 사는 사람들은 다 나온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이웃들을 깨운 안치범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 씨가 발견된 곳은 5층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이었습니다.

귀와 코가 그을렸고 두 손엔 화상을 입은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녹취>장례지도사(음성변조) : “아직도 이게 재 묻은 게 이렇게 남아 있어요. 진짜 안타까워서 제가 사진을 찍었는데…….”

빌라 방화 용의자로 20대 김모 씨가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경찰은 김 씨가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화가 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녹취>경찰 관계자(음성변조) : “여자친구 얘기가 이제 헤어지자. 헤어지자 그러니까 그 부분에서 화가 나지 않았나…….”

안치범 씨 덕분에 다른 주민들은 한 명만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 다들 무사했는데요.

안 씨는 뇌사 상태로 11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결국 그제 새벽, 세상을 떠났습니다.

<녹취>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 “내가 가슴을 쓸어주면서 잘했다고, 잘했다고. 엄마와 아빠가 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보내줬어요. 운명하는 순간에.”

안 씨가 이 빌라에서 살게 된 건 성우의 꿈을 이루기위해서였습니다.

학원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나간 게 불과 두 달 전.

안 씨가 숨을 거두던 날은, 성우 공채시험 원서 접수 마감일이었습니다.

<녹취>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 “나는 성우가 진짜 잘 맞고 하는 게 너무 즐거워.”그렇게 얘기했어요. 준비하면서도 본인이 되게 행복해했던 거 같아요. 올해는 꼭 열심히 해서 해보겠다고 그래서 학원 옆에다가 방을 하나 해놓고 왔다갔다하면서 편하게 열심히 해본다고 해서 두 달밖에 안 됐어요. 나간 지.”

아들의 죽음을 실감할 수 없다는 어머니.

문득 한 달 전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녹취>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 “재난 현장이 나오길래 아들한테 “너는 저렇게 남의 목숨 살리느라고 자기 목숨 버리면 안 돼.”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런 소리를 듣고 소리를 높여서 “엄마, 그렇게 살면 안 돼. 우리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자기가 더 역정을 냈었던 일이 있었어요.”

평소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원 봉사를 해 온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남을 구하려고 자신을 희생한 아들이 처음엔 원망스러웠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녹취>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 “처음엔 아들을 너무 원망했어요. 그런 일 한 걸. (그런데) 많은 사람이 용감하다고 그러고 잘했다고 그러니까 그게 마음에 위안이 되더라고요.”

안 씨의 행동이 알려지자, 빌라 주민을 비롯한 이웃들은 애석함을 감추지 못 했습니다.

<녹취>빌라 주민(음성변조) : “안타깝기도 하고 대단한 일을 하신 것 같기도 하고…….”

<녹취>인근 주민(음성변조) : “본인이 그렇게 다 깨우고 본인은 저세상으로 가고 그게 얼마나 안타까워요.”

각박한 세상, 따뜻한 이웃 사랑 정신을 몸소 보여주고 간 안치범 씨, 유족들은 안 씨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사자 인정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윤진기자 (j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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