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시화호에 시베리아 흰두루미

박수택 기자 2016. 4. 2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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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조류의 안식처 습지..개발 바람에 위기


호수나 강가에서 흔히 보는 왜가리, 백로보다 몸집이 두 세 배는 되어 보이는 새가 시화호 습지에 나타났다. 지난 3월 중순부터다. 키가 1m20cm쯤 되니 사람으로 치면 건강한 초등학생쯤 되는 키다. 부리가 시작되는 부분과 눈 주위 얼굴과 긴 다리, 발이 붉은 빛이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다. 다리가 검은 색인 두루미나 재두루미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어른 새라면 이름 그대로 온 몸이 흰색일 텐데 몸통과 목 깃털에 누르께한 색이 남았으니 지난 해 여름에 알에서 깨어나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 새다. 역시 사람으로 치면 미성년 중고생쯤, 제 한 몸 스스로 가리기엔 모자라고 혼자 살아가기엔 벅찬 나이다. 사람이라면 그럴 테지만 자연에서 살아가는 야생의 조류는 다르다. 
2016년 4월 초에 시화호에서 발견된 시베리아흰두루미
발목 깊이 물이 들어찬 습지에서 몸 바닥을 부리로 쪼고 진흙을 파헤쳐 먹이를 찾는다. 풀뿌리, 물고기, 갯지렁이로 보이는 먹이를 찾아내 배를 채우더니 방향을 바꿔 성큼성큼 갈대숲으로 들어가 기지개 켜듯 긴 목을 쭉 편다. 제 키보다 더 높은 갈대 위를 쪼기도 하고, 몸을 낮춰 앞쪽을 쪼기도 한다.
▲ 2016년 4월 초에 시화호에서 발견된 시베리아 흰두루미 (해당 영상 보러가기)
 
갈대에 엉겨있는 거미줄에서 거미나 걸려든 날벌레를 쪼는 모양새다. 습지 생태계 먹이 사슬에서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거의 맨 위를 차지한다. 사람이 다가가기 어렵고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습지 갈대밭, 물가가 외톨이 시베리아 흰두루미에겐 쉼터요 생명을 부지하는 공간이다.

4월 중순 이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한 달 가량 건강하고 활기차게 지내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안산시 자연보호 담당 최종인 씨는 안부를 전했다.
 
지구에서 남은 두루미류 15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건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이렇게 3종이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이름처럼 시베리아가 고향이고, 이란이나 인도 북서부, 중국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따금 드물게 발견된다.

2016년 4월 초에 시화호에서 발견된 시베리아흰두루미

시화호에서 이 새가 발견되기는 지난 2012년 이후 올 봄이 4년 만이라고 최종인 씨는 말한다. 4년 전엔 2,3일 잠깐 보이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본 큐슈 남서쪽 이즈미(出水)에서 재두루미, 흑두루미 무리에 섞여 겨울을 나고 시베리아로 북상하는 길에 일행을 잃었거나 떨어져 나와 시화호 습지에 일시 머물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국립생물자원관 조류 전문가 박진영 박사는 설명한다.
 
시베리아 흰두루미는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와 마찬가지로 갈수록 수가 줄어들어서 세계를 통틀어 3천500에서 4천 마리라고 알려져 있다. 심각한 멸종위기 상태에 처한 종으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적색목록(Red List)'에서 '위급(CR;Critically Endangered)' 단계로 분류했다.

2016년 4월 초에 시화호에서 발견된 시베리아흰두루미

'야생에서 절멸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도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했다. 그만큼 전 세계가 나서서 지켜주지 않으면 영영 지구에서 자취를 감출 운명이다. 부모와 일행을 잃고 홀로 떨어진 어린 시베리아 흰두루미에게 올봄 시화호 습지는 훌륭한 미아보호소 역할을 했다. 언제까지 시화호 습지가 자연의 생명을 품어 줄 수 있을까?

시화호 북쪽 물가 습지대는 진작 메워 새롭게 산업단지가 들어섰고, 호수 동쪽 상류 습지대엔 한창 화성시가 고층 아파트 단지로 개발 중이다. 거센 개발 바람 앞에 자연의 생명은 촛불 신세다. 귀한 자연의 손님을 받아줄 아량이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박수택 기자eco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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