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경제 성적 자화자찬 遺憾

손진석 경제부 기자 2016. 10. 2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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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든다는 경고음이 갈수록 커진다. 경제 관료들도 심상치 않다는데, 그러면서도 이내 반론을 편다. 반론의 단골 메뉴는 크기(경제 규모)와 등급(국가 신용 등급) 성적표가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들어보면 그들의 방어 논리가 현실의 삶과 동떨어졌다는 느낌만 든다.

첫째로 크기. 정부 말대로 경제 규모(달러 가치)가 2013년 14위에서 13위, 11위로 작년까지 매년 계단을 오른 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해서 순위가 올랐을까. 2014년 경제 규모 10위는 러시아였다. 그때 러시아는 우리보다 44%나 덩치가 컸다. 하지만 작년에는 국제 유가(油價)가 추락하면서 우리보다 근소하게 뒤졌다. 한 해 사이 러시아 경제 규모가 40% 넘게 쪼그라든 것이다. 경제 규모란 게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러시아와 함께 원자재 수출국인 호주를 한꺼번에 제친 것도 비슷한 이유다. 뒤집어보면 원자재 값이 회복되면 러시아·호주는 가만 앉아서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성장 엔진인 제조업이 식어가는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경제 규모는 집의 크기일 뿐이다. 그 집 식솔이 몇 명인지, 어느 수준으로 밥술 뜨고 사는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둘째로 등급. 지금 국가 신용 등급은 역대 최고치다.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들과 나란히 있으니 모양새가 봐줄 만하다. 하지만 신용 등급은 '빚 갚는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일 뿐, 종합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수단이 아니다. 일본은 워낙 나랏빚이 많은 탓에 신용 등급은 우리보다 아래 구간에 머문다. 그래도 일본에 대한 전 세계 투자자의 신뢰는 여전하다. 글로벌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엔화의 인기는 치솟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진다. 지금 우리는 신용 등급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그건 재정·통화정책을 가동할 여력이 있는데도 수수방관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불이 났는데도 서둘러 물을 뿌리지 않고 그저 물을 많이 받아뒀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켜만 본다는 얘기다.

우리는 제법 성장한 나라에서 살고 있고, 국민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세계 몇 위' 같은 수치에 더는 감흥하기 어렵다. 경제를 올림픽 메달 숫자를 집계하는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피부로 느끼는 삶의 현장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 현장엔 달마다 갚아야 하는 대출 이자 걱정하고, 취직이 어려워 피눈물 흘리는 아들딸 뒷바라지에 허리 휘는 서민이 넘쳐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경제 규모와 신용 등급을 자랑한 바로 다음 날, 한국은행은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소득 성장률이 -0.3%로 5년 만에 가장 낮다고 발표했다. 현실을 꼬집는 느낌이다. 박 대통령이 내년 마지막 예산안 시정연설에서는 올해와 다른 숫자로 자랑한다면 좋겠다. 젊은이들 일자리를 얼마나 늘렸는지, 그리고 서민층 가계 빚 부담은 얼마나 줄였는지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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